도를 넘는 북한의 대남 적대 행동
최근 북한의 대남 망발과 적대행동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 20주년(6.15)과 첫 북·미 정상회담 2주년(6.12)을 맞는 뜻깊은 시기에 이런 일이 벌어져서 더욱 당혹스럽고 유감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탈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불쾌감과 대남 보복 조치 경고를 담은 성명 발표(6.4)가 신호탄이었다.
대남사업을 담당하는 통일전선부가 자기들도 휴전선 부근에서 "남측이 몹시 피로해 할 일판"을 준비하고 있다고 예고(6.5 대변인 담화)하고, 대남사업 총화회의(6.8)를 통해 향후 대남사업 방향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하며"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죄값을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을 심의했다고 발표했다.
나아가 대내 언론매체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이 일반주민에게도 알려지면서 탈북자 규탄과 대남적개심 고취를 위한 군중 집회가 각지에서 열리는 가운데, 김여정 제1부부장은 "죄값을 받아내기 위한 보복 계획은 국론으로 굳어졌다"면서, 향후 군사적 조치도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이를 받아 △금강산·개성지구에 연대급 부대의 재주둔 △9.19 군사합의로 DMZ에서 철수한 민경초소의 복원 △제1호 전투근무체계 격상과 접경지 군사훈련 재개 △대남전단 살포를 위한 접경지 전선개방 등 4개 군사행동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고(6.17), 당 중앙군사위원회 승인을 얻어 시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북한은 이미 정상 간 직통전화를 포함한 남북 통신수단 폐쇄(6.9), 남북연락사무소 건물 폭파(6.16) 등 행동에 나섰으며, 대남 살포용으로 제작된 전단 사진도 공개하였다. 나아가 1994년에 있었던 "서울 불바다 발언"을 상기시키거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무기 개발의 재개 움직임을 슬며시 노출시키면서 강도 높은 추가 조치를 암시하고 있다.
무력감에 빠진 북한의 분노조절 장애
북한의 이러한 앞뒤 안 가리는 신경질적 행태는 다소 당황스럽고 느닷없어 보인다. 물론 작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노딜'(No deal) 이후 대내외 환경이 북한에게 좌절감을 주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북한 지도부의 불안과 초조감이 이제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기는 했다.
계속되는 대북제재로 북한 경제는 악화일로에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이 어려울 정도로 국내정치 위기에 봉착한 데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계적인 대유행까지 겹치면서 북·미 대화 재개나 상황 타개의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북한 지도부가 느끼는 무력감은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상황 타개의 관건인 미국과의 대화를 단념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내부적 불만이나 분노를 해소하는 대상으로 남측을 선택했고, 그 첫 단계의 구실로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문제를 걸고 넘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그 행동이 상식보다 거칠고 무례한 것은 젊은 북한 지도자가 가진 장점인 과감함보다 경륜 부족에서 오는 무모함이 작용한 탓이라 볼 수 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물론 그의 여동생에게 장악되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당·정·군 간부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도 짚지 않을 수 없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아동의 폭력적 분노(떼쓰기) 표출의 배경으로 욕구 좌절, 불편과 고통에 대한 인내력 부재, 자력 상황 타개에 대한 무력감 등을 든다. 그리고 분노조절 장애를 겪는 사람은 모든 문제의 탓을 대상을 가리지 않고 외부로 돌리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 능력을 상실한다고 한다.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조성 노력을 신뢰하는 많은 국민에게는 북한의 느닷없는 대남 적대행동이 현상적으로 분노조절 장애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 성명과 비난을 살펴보면 북한의 잘못된 문제 인식 외에도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식에서 벗어난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한의 잘못된 문제 인식과 우리의 접근방법
북한의 최근 대남 발언과 비난을 단순하게 요약하면 △탈북자단체 대북 전단 살포의 중지 △한·미 워킹그룹 역할에 대한 반감 △남북문제에 대한 남측의 자주적 자세에 대한 요청 등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문제에는 북한의 잘못된 인식이나 우리의 편향된 관점이 섞여 있다.
첫째, 휴전선 인근 지역은 마른 수풀에서 작은 불씨가 큰 산불을 내듯 안보 차원에서 매우 민감한 지역이다. 이곳에서의 대북 전단 살포는 그 목적 실현에 대한 아무 보장도 없이 지역주민의 안위와 안보 상황에 부담과 위험을 줄 뿐이다.
표현의 자유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상황에는 안보가 우선이다. 이와 관련한 2016년 3월 표현의 자유보다 국민의 생명이 우선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2016.3 대법원은 휴전선 부근에서의 대북전단 살포가 표현의 자유 실현을 위한 방법이지만 국민의 생명에 급박하고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제지할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 '2015다247394') 안보 상황을 고려하여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유권에 대한 국가보안법의 제약을 감내해 온 우리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북한도 우리의 전단 살포 단속을 자신들의 요구나 비위를 맞추는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북한 인권 문제에 눈감는 행동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둘째, 한·미 워킹그룹의 역할에 대해 북한은 늘 불만이 있었다. 최근 김여정 제1부부장은 대남 적대행동의 전면에 나서서 "남북관계가 파탄이 난 것은 바로 한·미 워킹그룹 때문이다"라고 콕 집어 지목하기도 했다.(6.17)
북한은 2018년 11월에 출범한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 간에 필요한 사업을 하는데 미국의 승인을 받는 구조이며 사사건건 남북관계 발목을 잡아 왔다고 인식한다. 우리 내부에서도 대북사업 민간단체 중심으로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불만은 북한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북·미합의 이행구도의 전반적 불균형과 관련이 있다.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북한의 안보불안을 해소하는 한·미 군사연습 중지 및 첨단무기도입 금지 조치를 맞교환하기로 합의하였다. 안보와 안보의 교환구도이다.
하지만 대북 제재 해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맞바꿀 정도의 등가성이 없다.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북한의 비핵화 조치 없이는 대북 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할 수도 없다. 따라서 제재 해제에 앞서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시작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한미 동맹이 안보상의 대북 보상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한·미 워킹그룹은 북한의 비핵화와 맞바꿀 안보상의 상응조치보다는 현 여건에서 큰 폭의 조치가 불가능한 남북 협력사업의 제재 적용 문제에 대해서, 그것마저도 소극적인 미국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논의를 해 왔다.
물론 한국 정부로서는 제재 위반 여부의 유권해석 권한을 미 행정부가 갖고 있기 때문에, 남북 협력사업이 미국 제재에 위반되는 것을 막기 위한 사전협의의 역할도 한·미 워킹그룹에 기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미 워킹그룹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과 상응조치에 따른 한·미 간의 공동 대응과 역할 분담 등 보다 큰 그림을 협의했어야 했다.
만일 그런 방향으로 한·미 워킹그룹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현재 여러 가지 이유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불협화음를 내고 있는 주한미군 주둔비용 협상이나 전작권 문제와 관련된 준비와 협상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큰 틀에서 다루어질 가능성을 열어 놓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측이 대미 사대주의에 빠져서 민족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북한의 인식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핵문제를 야기하여 한반도 문제를 국제 문제화시킨 것은 북한이다. 한반도 문제에 당사자 해결원칙을 철저히 관철하자면 북한의 비핵화가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산가족 문제해결 등 인도적 차원의 사업은 제재의 범위 밖에 있으며 올림픽 등 국제 평화 행사는 사안별로 제재 면제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분야에서조차 남북협력을 거부하면서 민족문제의 자주적 해결 운운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북한은 남측이 국제사회에 등을 돌려 유엔안보리 결의를 무시하는 것을 자주적 행동이라고 강변하기 전에, 비핵화 문제를 들고 미국에 매달리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니라는 변명부터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바란다면 유엔안보리 결의를 해소할 초보적인 조치부터 취하는 것이 옳다.
또한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관계로 보는 것은 남북정상이 만나 합의한 4.27 판문점선언에 위배되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2019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남북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사실상의 불가침에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8년 9월 김정은 위원장이 능라도 5.1경기장에 모인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감사를 표하고 뜨겁고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부탁한 것은 분명히 적대관계의 수괴를 대하는 행동일 수가 없다.
남북관계가 적대관계로 돌아가기에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다. 실제로 8000만 민족의 안전과 번영을 바라는 민족 구성원이라면 남북관계가 다시 적대관계로 돌아서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호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북한이 남북 대화와 협력을 중단하는 것은 절대로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상호 신뢰는 대화와 협력의 결과이지 전제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은 적대관계가 완전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해소되어서가 아니라 적대적 성격이 남아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상호 대화와 협력을 이어 온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남과 북 어느 한쪽이 적대적 행동으로 가면 한반도 전체의 긴장이 상승하고 국제적 개입의 공간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북한이 일시적 분노로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할 경우 잃을 것은 많고 얻을 것은 없다는 사실은 이미 자명하다. 북한은 적대관계를 선택하기 전에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신중하게 앞뒤를 가려 숙고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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