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비핵화' 백기 투항 요구하면서 北 변화 기대하나

[박병일의 Flash Talk] "북한의 변화가 일방적이고 몰상식한지 생각해 봐야…"

이혼 위기에 몰린 부부들의 사정과 이유를 조명한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을 가끔 즐겨봤다. 다음의 이야기는 가상이지만, 만약 프로그램이 종영되지 않았다면 실제로 등장했을 법한 사연이 아닐까?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부부가 있었는데, 이 부부의 가장 큰 문제는 홀어머니가 사사건건 부부의 생활을 간섭하고 심지어 며느리를 오랜 기간 적대시함으로써 이혼의 벼랑으로 내몰렸던 바, 이에 남편은 부인에게 이런저런 약속을 하면서 사과하고 어머니를 변화시켜 볼 테니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였으며, 부인은 이런 남편을 한 번만 더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은 여전히 어머니의 눈치만 볼뿐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함께 살아보고자 노력했으나, 기다리다 지친 부인은 결국 남편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깨닫고는 이혼 선언을 하게 되었던 바, 드라마에서는 이 며느리가 이혼 수속을 그대로 진행해야 하는지, 아니면 남편에게 조금 더 시간을 줘서 개선 방안을 찾도록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고 가정해보자.

사연을 재구성하여 드라마화(化) 하였을 법한 이 부부 이야기가 남·북한 및 미국의 관계와 여러모로 닮았다. 미국과 북한 간에는 오랜 기간 상호 불신과 반목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며, 지금도 미국이 주도한 경제 봉쇄로 북한은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은 북한을 극도로 적대시하던 이명박·박근혜 전(前) 정권과 달리,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평화가 곧 경제'라는 기치 아래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였다. 한편 현 정부 집권기에 남북은 판문점과 평양에서 총 세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지난 2018년 4월에 있었던 제1차 남북정상 회담에서 세간의 이목을 가장 집중시켰던 하이라이트는 두 정상 간 도보다리 산책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신경제 구상을 담은 USB를 김정은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하였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향후 있을 한반도의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며 많은 약속을 하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탈북민 대북전단을 보고 분노하던 북한은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발언과 담화를 통해 경고 수위를 점차 높이더니, 남북협력의 상징과도 같았던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예기치 않은 행동을 하였다. 이에 우리 정부와 국방부는 일방적인 폭파에 강력한 유감을 표하면서, 사리 분별 못 하는 언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이를 감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북한이 군사 행동에 나설 경우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강하게 경고하였다. 국민들도 북한의 대응에 크게 실망하면서 북한은 신뢰할 파트너가 못 된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북한의 변화가 일방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몰상식한지는 좀 더 면밀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미국과 한국에 했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시켜 폐쇄했으며, 이의 입구를 봉인했고,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 200구를 돌려보냈음은 물론,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를 중단하였다. 그에 반해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위해 한 일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마치 며느리에 대한 적대감을 거두지 않는 시어머니처럼 미국은 북한의 무조건적인 비핵화만을 요구하고 있고, 한국은 그런 미국의 눈치만 볼뿐, 북한이 기대했던 그 어떤 액션도 취하고 있지 않기에, 한국에게 시간을 더 줘봐야 기대할 것이 없다고 북한이 생각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만일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면 아들이 어머니에 대한 눈치보기를 그만둬야 하듯이, 북한과의 협력에 있어서 한국도 미국이 이를 승인해주기만을 기다려서는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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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한국외대 경영학과에서 국제경영을 가르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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