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여의도 문법과 다른 정치양식을 보여라

[장석준 칼럼] 제21대 국회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지난주에 제21대 총선이 있었고, 더불어민주당과 그 위성정당이 놀라운 승리를 거뒀다. 촛불항쟁 이후 전국 선거를 실시할 때마다 반복된 미래통합당 세력 심판 투표를 완결하는 결과였다.

이 와중에 정의당은 정당투표에서 10%에 조금 못 미치는 지지를 얻었다. 원내교섭단체라는 야무진 꿈에 비하면 참담한 결과이지만, 민주노동당의 13% 득표 이후에 진보 독자파 성향이 가장 강하면서 규모가 큰 지지층을 결집했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라 하겠다.

본래 이 지면에서는 이런 총선 결과를 음미해보려 했다. 특히 정의당이 비판 받아야 할 점들을 정리하려 했다. 그러나 막상 밑그림을 그려 보니, 이미 이 지면에서 한 번 이상 개진한 주장들을 지루하게 반복하는 격이 될 듯했다.

필자는 정의당이 국회 개혁(정치 개혁)과 사회 개혁을 반드시 함께 추진해야만 정치 개혁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보수 야당' 결집 막고 '극우 세력' 고립시키기", <프레시안> 2017. 12. 19). 또한 다당 정치로 나아가는 선거제도 개혁을 성사시키려면 정의당이 '부동산 약자 정당'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다당 정치의 효능을 입증해야 한다고 충고했다("가난한 자가 돈 벌어 부동산 부자에 바치는 세상", <프레시안> 2018. 1. 30). 그러나 정의당은 어느 시점부터인가 다른 개혁 의제는 앞장서서 제기하지 않으면서 오직 선거 제도 협상에만 매달렸다.

작년 이른바 조국 사태 때는 민주개혁파와 사회개혁파의 동맹이었던 촛불연합이 와해됐으며 정의당은 단호히 사회개혁파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조국 대전이 아니라 촛불연합의 대분열", <프레시안> 2019. 8. 28). 그러나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사회개혁파의 입이 되어야 할 역사적 임무를 받아 안지 못하고 '민주당 2중대'라는 많은 이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다져주는 결정을 내렸다.

다만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이 위성정당 창당을 본격 추진한 시점부터는 일체의 위성정당 시도에 반대하며 리버럴 정당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정의당이 민주당 아류에서 벗어나 '제6공화국'을 넘어서는 정치적 주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필자의 주문과 모처럼 일치하는 결단이었다("정의당, '민주당 아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프레시안> 2019. 11. 26). 10%에 가까운 정당투표 득표는 이 막판 결단을 상당수 대중이 의미 있다고 평가해준 결과라 본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의 "당신의투표가 역사를 만듭니다, 내가만드는 대한민국 투표로 시작됩니다" 선거 홍보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사회 개혁은 기대하기 힘들 21대 국회

큰 흐름에서 보면,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이 보여준 성과와 한계는 이제껏 필자가 이 지면에서 제시한 이런 진단들과 대개 겹친다. 그래서 총선 결과가 나온 지 이미 1주일 가까이 지난 이 시점에는 향후 전망과 과제를 주로 말하고 싶다. 여당이 압도적 다수를 점한 국회에서 6석짜리 진보정당이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따져보려 한다.

우선 짚어야 할 것은 180석이나 차지한 여당이 이 의석으로 무엇을 하려 할지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180석이면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제약 조건조차 문제가 되지 않으니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에 나와 있는 개혁의 약속들을 모조리 법안으로 통과시킬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헌법 개정안 통과도 불가능하지 않을 정도이니 개헌에 나설 때라 생각할 수도 있다. 박지원 의원 같은 정치 고수도 정부-여당이 개헌을 추진할 것이라 전망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실제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검찰 개혁도, 개헌도 급한 과제가 아니며 코로나 위기에 따른 일자리 사수에 집중해야 한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게 진심일 것이다. 언론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런 판단의 근저에는 제17대 국회(2004-2008)와 열린우리당의 부정적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아니다.

여당이 가장 주목하는 점은 아마도 촛불항쟁으로 뒤바뀐 대한민국의 선거 주기일 것이다. 대통령선거까지 불과 1년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달력상으로는 2년 남았지만, 늦어도 2021년 말부터 대선 국면이 시작될 테니 내용상으로는 1년 반밖에 안 남았다. 지금 여당에게 지상 과제는 얼마 남지 않은 이 대선에서 무난히 승리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여당으로서는 한숨 놓게 만드는 요소도 있는가 하면 그 반대 요소도 있다.

우선 대선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최강 경쟁 상대인 미래통합당이 혼란에 빠져 있다는 점은 여당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 요인이다. 미래통합당의 잠재 대선 주자들은 하나같이 낡아빠진 인물인데다 모두 이번 총선에서 상처를 입었다. 여당이 어떤 후보를 내놓든 별로 힘들이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상대들이다. 미래통합당으로서는 극우파의 미래를 책임질 전혀 새로운 인물을 내세우지 않고는 희망이 없을 텐데, 1년 반은 그런 인물을 찾아 띄우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불안 요인들도 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더불어민주당과 그 위성정당의 압도적 승리는 상당 부분 선거제도 효과다. 실제 득표 수치를 보면, 미래통합당과 그 위성정당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상대다. 대선에서 의미 있는 제3후보라도 나온다면, 현재 더불어민주당 블록이 누리는 우위는 쉽게 흔들릴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전대미문의 전 세계적 위기가 있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은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한 덕분에 큰 힘을 받았지만, 역으로 대유행 이후의 경제사회 위기에 맞서 그만큼 성과를 못 내면 그 힘이 고스란히 타격으로 돌변해 돌아올 수도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1996년에 외환위기가 시작되자 김영삼 정부와 그 집권당이 맞이한 운명을 잊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예측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여당은 20대 국회 후반기와 마찬가지로 21대 국회 전반기에도 관리형 통치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설령 개혁이라 이름붙인 행위에 나서더라도 검찰 문제처럼 자기 정파의 이해와 직결된 사안에만 손을 대고 나머지 사안, 특히 사회 개혁에는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균열이 새롭게 부각되고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대립이 돌출하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려 할 것이다. 가령 정부-여당에게 악몽으로 기억되는 최저임금 인상 같은 일이 반복돼선 안 되는 것이다.

개헌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 블록이 그토록 원하는 대통령 연임제를 관철하기 위해 원 포인트 개헌을 시도할 수는 있다. 절반에서 무려 30석이 초과하는 여대야소 국회는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헌이라는 말에 정말 값하는 개헌, 그러니까 제6공화국 헌법을 녹색사회국가를 지향하는 제7공화국 헌법으로 바꾸는 정도의 개헌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개헌안을 꺼낸다면, 한국의 시민사회가 다시 들썩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의 많은 이들에게 이는 대선 앞두고 괜히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짓일 따름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여당이 관리형 통치를 선택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그것은 압도적 여대야소 국회의 역설이다. 이미 제17대 국회 경험이 있다. 이번만큼은 아니어도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확보하자 한나라당은 장외 투쟁으로 일관했다. 의사당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자 그 상황을 승복한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싸웠다. 이렇게 되면 180석의 다수당조차 정치 위기에 몰린 양 보이게 된다.

이런 위험을 스스로 잘 알기에 이인영 원내대표 등이 나서서 벌써 '협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협치의 주 대상은 물론 정의당이나 민생당이 아니라 100석 넘는 야당, 미래통합당 블록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개혁을 과연 얼마나 기대할 수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집을 다시 꺼내볼 시간이라는 박용진 의원의 발언은 모르긴 해도 여당 주류에게는 가장 반갑지 않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정의당, 여의도 문법과 다른 정치양식을 보여라

21대 국회는 정말 장외 정치 시대라는 역설적 결과를 불러들일까? 방향타는 물론 미래통합당 블록이 쥐고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들이 어떻게 나올지 장담할 수 없다. 의석 분포로만 보면, 장외 정치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쉬운 조건이다. 하지만 미래통합당 블록이 장외 정치를 선택하기 힘들게 하는 조건들 또한 적지 않다.

일단 그러기에는 미래통합당 블록 내 지도력이 너무 취약하다.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장외 대결 정치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원내에 박근혜 의원, 원외에 이명박 서울시장이라는 강력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에게는 지금 이 정도 구심이 없다. 게다가 미래통합당은 황교안 대표 체제에서 줄곧 장외 정치에 몰두하다 이번 총선에서 참패를 겪었다. 따라서 다시 의사당 바깥으로 나가기 쉽지 않다.

미래통합당의 행보가 이렇게 안개에 싸여 있지만, 여의도 정치만으로 언론 정치 면을 채울 수 없는 이유는 다른 곳에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블록 자체가 그러하다. 중요한 잠재 대선 주자 중 상당수가 원외에 있다. 대구에서 낙선했지만 이 때문에 가장 높은 정치적 평가를 받은 김부겸 의원이 원외이고, 코로나19 위기 와중에 두각을 나타낸 이재명 지사 또한 원외다. 박원순 시장과 달리 이들은 국회 안에 자기 계파 의원조차 거의 없다. 이들이 대권에 도전하는 한, 여의도 정치로 환원되지 않는 대중 정치가 실체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의당이 있다. 미래통합당은 장외 정치를 벌일지 말지 선택할 수 있고 더불어민주당 내 대선 주자들에게도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지만, 정의당은 그렇지 않다. 20대 국회의 6석 정의당과 달리 21대 국회의 6석 정의당에게는 원내 협상과 표결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성과를 낼 여지가 '전혀' 없다. 의석 분포가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선거법 협상에만 매진했던 20대 국회 후반기 같은 원내 정당 체질은 이제 사치다.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에게 원내외를 넘나드는 정치 행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아니, 정의당의 원내 상황 때문만이 아니다. 정의당이 마땅히 대변하고 함께 싸워야 할 사람들 때문에도 그렇다. 대통령 공약집 속 약속들이 실현되느냐 마느냐가 생존과 직결된 사람들 ―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일가족 자살 보도에서만 눈에 띄는 이들, 요즘은 '폐지 수집'뿐만 아니라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으로 상징되는 빈곤 노인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도 일상적으로 죽음에 노출돼 있던 산업 재해 현장의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이런 이들의 대열은 늘어나기만 한다. 이들은 집권당의 전략적 포석과 이에 따른 처분을 넓은 마음으로 기다릴 시간이 없다.

이번 총선으로 시작된 정치 지형에서 정의당이 가야 할 길은, 그래서 '사회운동 정당' 혹은 '캠페인 정당'이다. 미래통합당식의 '장외 정치'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겠지만, 어쨌든 여의도 정치와는 확실히 다른 정치 양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원내 활동과 현장, 거리, 광장의 투쟁을 결합해야 하고, 사회 개혁을 바라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과 유기적 연계를 맺어 함께 성장해가야 한다.

가령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사회운동 진영이 '사회대개혁운동본부' 혹은 더 적극적으로 '제7공화국 건설운동본부'를 결성하면 어떨까. 이를 통해 그간 정부-여당이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핑계를 대며 미루기만 하던 사회 개혁의 실현을 요구하는 것이다.

무엇을 요구할지는 이미 구체적으로 정리돼 있다.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선거운동 기간 중에 새 국회에 제안하는 15개 복지 공약을 발표했다. 정의당 공약과도 많이 중첩되는 중요한 내용들이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포함한 정의당 노동 공약을 더하고 코로나19 위기에 맞서는 경제사회 대책과 그린뉴딜 비전까지 합치면, 긴급한 개혁 과제 목록이 얼추 완성된다. 사실 더 이상의 신종 정책은 필요하지 않다. 부족했던 것은 다만 이들 과제를 질릴 만큼 줄기차게 외치는 정치 세력이었다.

일단 21대 국회 전반기만 염두에 둔다면, 대선까지의 시간을 정부-여당의 의도와는 다르게 구부려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정부-여당이 바라는, 총선 결과를 관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총선의 성과를 넘어 그 다음으로 나아가려는 열망이 분출하는 시간에 가깝도록 구부리는 일. 양대 정당의 틈바구니에서 거의 유일하게 생존한 정치 세력에게 부과된 무거운 과제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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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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