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소비자 운동', 강준만의 책 제대로 읽기

[프레시안books]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는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라는 칼의 양날을 살피는 책이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에는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는데, 이만큼 성장한 현상을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는 책이기도 하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이상, '소비의 사회적 책임'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한 쪽 날에는 이론적 이상이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스웨덴 사회학자 미셸 미셀러티의 논의를 빌려온다.

미셀러티는 소비를 정치, 이념, 윤리 등에서 떼어내 순전히 경제적인 행위로 보는 관점에 반대한다. 아동의 노동을 착취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는 것은 그런 구조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는 일이다.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사는 것은 기후 변화를 늦추는 일이다. 모든 소비에는 소비 행위에 따른 연쇄 작용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소비자는 이 같은 '책임'을 염두에 두며 정치적, 이념적, 윤리적 가치에 따른 소비를 할 수 있다. 기업도 이를 신경 쓴다. 기업의 사회적·환경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는 소비를 통해 사회 구조에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이때 '정치적 소비자'란 소비의 사회적 책임을 수용하는 소비자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소비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려는 운동이다. 여기까지가 미셀러티가 이야기한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이상이다.

▲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강자의 무기일까 약자의 무기일까. ⓒpixabay

한국 사회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현실, '갑질'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다른 쪽 날에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있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정신을 표현하는 단어는 책임보다는 '갑질'이다. 한국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보다 '약자를 상대로 한 강자의 횡포' 성격을 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게임업계의 남성 소비자는 페미니즘에 찬성하는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라고 기업에 압력을 가한다. 넥슨 게임 <클로저>의 한 성우는 메갈리아4가 기획한 "GIRLS Do Not Need a Prince(소녀는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었다가 일감을 잃었다. 또다른 일러스트레이터는 온라인 게임 <트리 오브 세이비어> 게시판에 한국여성민우회 계정과 페미니즘 연구 소개 사이트 '페미디아' 계정을 공유했다는 이유로 일을 그만둬야 했다.

저자는 이 같은 일을 '약자를 탄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올바르지 않은 소비자 운동'으로 묘사한다. 그러면서 게임업계의 페미니즘 탄압을 게임 시장이 '남초시장'으로 착시한 데서 비롯한 현상으로 규정한다. 이와 달리 게임 시장에는 상당수 여성 이용자가 참여한다. 저자는 2018년 '반페미니즘'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작가 14명이 참여한 '내일을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에 약 9400만 원의 후원금이 모인 일을 실제 게임업계에서 일어난 '올바른 소비자 운동'으로 본다.

언론 소비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의 불매운동에 나선다. <한겨레>는 '미투 운동'에 대한 '보수 진영의 공작설'을 제기한 김어준을 비판하는 칼럼을 실었다 절독 사태를 겪었다. <뉴스타파>는 윤석열 검찰총장 청문회 당시 후보자의 '위증' 관련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3000여 명의 후원을 잃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조국 사태' 이후 윤 총장에 대한 문재인 정부 지지자 사이의 여론이 반전되자 후원 중단에 대한 사과의 글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언론 소비자의 불매 운동을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유시민의 '어용 지식인 선언'으로부터 정당성을 얻은 "'어용 저널리즘'을 요구하는 압박"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언론 소비자가 언론에 '어용 저널리즘'을 요구하는 것은 건강한 비판까지 마비시켜 '어용 세력' 자신에게도 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보기에 언론 소비자가 언론에 요구할 수 있는 윤리는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히라는 것"뿐이다.

"한국 정치적 소비자 운동 중심에 '갑질' 아닌 '책임' 있어야"

두 사례에 대한 저자의 시각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소비자 운동에 대체로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한다. "정당 중심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와 계급 정치의 퇴조가 뚜렷해진 상황에서 나타난 정치 참여의 한 유형"인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한국 시민 사회에서 이미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는 진단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 소비자 운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소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올바른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성장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은 위에서 제시한 사례 외에도 사립 유치원 비리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일본 불매 운동,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시민단체와 언론 개혁에 대한 후원 감소 등을 다룬다. 모두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건이다. 실천적이고 논쟁적 지식인인 저자 강준만은 각각의 사건에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고 이를 드러내는 일을 피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책은 출간 직후 일부 보수 언론 지면을 통해 중심 논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먼저 조명을 받았다. 생각해볼 법한 주장을 담고 있음에도 '문재인 정부와 386 지식인 비판'이라는 곁가지가 중심 내용을 가리는 일이 일어난 건 아쉽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을 생각이라면 논쟁적 잡음은 잠시 제쳐두고 한국 사회의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성찰적으로 돌아보자는 저자의 중심 주장에 귀 기울여 봐도 좋겠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지만.

▲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값 15000원)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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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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