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진(63) 씨는 공기업 정규직 사무 노동자로 38년을 일하다 퇴직했다. 퇴직 뒤에는 여느 노인이 그러하듯 버스 배차 계장, 경비 등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조 씨가 겪은 노인 노동의 현실은 가혹했다.
조 씨는 자신이 일하면서 겪은 일을 차곡차곡 메모장에 기록했다. 어느 날 메모를 본 직장 동료가 책을 내보라고 했다. 망설이던 조 씨는 노인 노동의 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노인 노동 르포 <임계장 이야기>(후마니타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3일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조 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금도 경비로 일 한다는 조 씨는 대신 근무하겠다는 동료의 배려로 당일 연차 휴가를 쓰고 인터뷰 장소로 찾아왔다.
최저임금 받으며 일하다 쉽게 잘리는 노인 노동자
공기업 정규직이었다. 조 씨는 은퇴 전에는 노후를 걱정하지 않았다. 막상 은퇴하고 나니 찾아온 것은 힘겨운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었다.
조 씨의 첫 직장은 시외버스 터미널의 버스 배차 계장이었다. 배차 업무와 함께 무거운 소화물을 화물칸에 싣는 일이 조 씨의 주 업무였다. 운전기사들의 이런저런 뒷바라지도 조 씨 몫이었다.
조 씨가 다니던 회사는 배차원 사이에서 악명 높은 곳이었다. 다른 회사에서 3명에게 시키는 일을 회사는 조 씨 1명에게 시켰다. 당연히 업무에 부하가 걸렸다. 승객의 항의도 빗발쳤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하던 조 씨는 들어오던 버스를 늦게 발견하고 이를 피하려다 부상을 당했다. 다음날 해고됐다.
조 씨는 다음 일을 구했다. 24시간 2교대로 일하는 아파트 경비였다. 순찰과 불법 주차 단속은 물론,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 청소, 수거차에 쓰레기 싣는 것 돕기, 재활용품 분리수거 등 일 목록은 끝이 없었다. 350세대 가구의 민원을 처리하는 것도 조 씨의 일이었다.
한 달 일하면 손에 쥐는 돈은 140만 원 남짓이었다. 조 씨는 생계를 위해 24시간 2교대로 일하는 빌딩 경비 일을 또 하나 구해 집에도 못 들어가고 '투잡'을 뛰었다. 빌딩 경비도 생각과 달리 만만치 않았다. 하루 8시간 이상 배기가스 가득한 지하 주차장에서 일해야 했다. 주차장 한 켠에 붙은 안전 수칙 포스터에는 "마스크 착용"이 쓰여있었지만,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하는 경비는 없었다. 관리자가 싫어했다.
빌딩에서 일하던 어느 날, 조 씨는 후문 주차 금지 구역에 정차한 차를 향해 호루라기를 불었다. 알고 보니 빌딩 본부장 부인이 타고 있는 차였다. 조 씨는 본부장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또 한 번 해고됐다. 전부터 다니던 아파트에서도 화단에 호스로 물을 주지 않고 양동이로 물을 줬다는 이유로 잘렸다.
"노인들은 변화에 대한 기대보다는 체념을 먼저 배운다"
신념에 찬 노동운동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노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바꿔보고자 조 씨는 나름의 노력을 했다. 다니던 회사가 경비 노동자를 '감시·단속 노동자'로 승인 받았다. 조 씨는 불법이 아니냐고 노동청 근로감독관에게 문의했다.
고용노동부 승인에 사용되는 감시·단속 노동자 신청서를 보면, 감시 노동은 '수위나 경비원 등 심신 피로가 적은 업무, 감시적인 업무가 본래의 업무이나 불규칙적으로 단시간 동안 타 업무를 수행'하는 업무다. 주로 감시하는 일을 한다는 뜻에서 이런 명칭을 붙였다. 단속(斷續) 노동은 '평소의 업무는 한가하지만 기계고장수리 등 돌발적인 사고발생에 대비하여 대기하는 시간이 많은 업무'다.
회사가 고용노동부에 특정 노동자의 감시·단속 노동자 신청을 제출해 승인되면 해당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휴게, 휴일 조항을 적용받지 않는다. 즉, 노동시간 제한이 사라지고, 연장·야간·휴일 노동 등에 붙는 가산수당을 받지 못한다. 주휴수당도 받을 수 없다.
조 씨는 "경비 노동자가 감시단속 노동자 승인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현장은 다르다"고 말했다. 경비 노동자가 대기하는 상황은 찾기 힘들고, 실제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저임금이 올랐다며 이곳저곳에서 정리 해고가 진행된 뒤에 노동강도는 더 올라갔다. 조 씨가 일하던 아파트만 해도 전에는 7명이 하던 일을 1명에게 시켰다.
조 씨는 근로감독관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조 씨는 "근로감독관이 '감독할 행정력이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이 불법을 저지르면 그게 법이 된다. 우리도 다 아는데 앞으로는 세월이 좋아질 거다'라면서 위로하더라”고 했다.
비정규직지원센터가 아파트에 찾아와 경비 노동자 간담회를 연 적도 있었다. 이어진 뒷풀이에서 시의원을 만났을 때 동료 경비원이 "고용 안정이나 처우 개선이 담긴 조례를 만들어줄 수 없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시의원은 자리를 떠나버렸다. 다른 시의원이 다가와 "그런 조례를 내면 유권자의 절반인 아파트 주민들이 반대해서 선거는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씨는 "이런 일을 겪다 보면 노인들은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리라는 기대보다는 체념을 먼저 배우며 살게 된다"고 전했다.
"모든 노인이 불행한 사회는 피해야 한다"
조 씨는 <임계장 이야기>에 기록된 마지막 직장이자 네 번째 직장인 버스 터미널에서 야간 경비 근무를 마치고 새벽에 퇴근하다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의사는 척추염 진단을 내리며 과로로 약해진 면역력과 배기가스에 오래 노출된 것이 병의 원인이라고 했다. 회사는 조 씨를 전화로 해고했다.
최저임금을 받고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고 모욕적 대우를 받으며 일하다 너무 쉽게 잘리는 상황. 노인 노동자가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 처한 이유를 조 씨는 이렇게 말했다.
조 씨는 이미 보편적인 상황이 되어버린 노인 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상황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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