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 16일 새벽 한국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매그루더 주한미군사령관은 그날 상황을 분석해 렘니처 (Lemnitzer) 합참의장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경 매그루더 사령관은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장도영은 미군 헌병들이 한국해병대를 막아주도록 요청했지만 매그루더는 거절했다.
매그루더의 요청으로 장도영이 6시 30분경 그의 집무실로 찾아왔다. 장도영은 자신이 쿠데타군의 일원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었지만,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쿠데타군과 협상하기를 원했다.
장도영은 군사령관들이 쿠데타에 반대하는 자신을 지지해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들과 대화하기를 원했으나 한국군 부대를 동원하기는 꺼려했다. 장도영은 박정희에 비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대통령에게 자신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해 계엄령을 선포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매그루더는 10시 18분 미8군 공보처를 통해 자신의 지휘 아래 있는 모든 병력이 합법적인 장면 정부를 지지하기를 유엔군사령관 직권으로 요구했다. 한국군 수뇌들에게는 통치권을 즉시 정부 당국에 반환하고 군내 질서가 회복되도록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해주도록 요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동시에 그린 (Green) 주한미국대리대사는 유엔군사령관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미국이 합법적인 한국정부를 지지한다고 명백하게 밝힌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매그루더의 성명에 이한림 제1군사령관은 한국정부에 충성하겠다고 발표했다.
10시 30분경 장도영은 윤보선 대통령과 집에 연금된 국방부장관을 방문했다.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 및 쿠데타 저지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국방부 장관도 쿠데타를 진압하기 위해 병력 동원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11시 15분 최경록 제2군사령관이 매그루더와 통화하면서 자신은 정부에 충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시간으로 16일 아침 렘니처는 매그루더에게 보낸 답신에서 캐나다를 방문하고 있는 케네디 대통령이 매그루더와 그린의 성명을 승인할 것인지 문제라며 한국 내정에 지나치게 휘말리지 말고 더 이상의 성명은 피하라고 충고했다.
국무부도 워싱턴 시간으로 15일 아침 5시 21분 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사실과 매그루더가 쿠데타를 진압하기 위해 미군을 동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정에 그린 대리대사가 동의했다는 사실을 주한미국대사관으로부터 보고받았다. 그리고 워싱턴 시간으로 16일 밤 10시 45분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냈다.
"한국에서 어떠한 이데올로기 문제가 개입되지 않았을지라도, 쿠데타는 한국의 안정과 명예를 침해할 것이기 때문에 한미 양국의 이해에 반한다는 것이 국무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군부 지도자들이 쿠데타 진압을 이상할 정도로 꺼려하고, 총리와 장관들은 숨어버렸기 때문에 장면 정부가 위기를 무사히 극복할 것 같지 않다. 지도자들의 무기력과 일반인들의 무관심이 장면 정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행사를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무부는 기다려보자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한국정부가 스스로 일어서길 기대하며, 앞으로의 전망에 거스르는 행동은 피할 것이다. 나아가 미국이 어쩌면 '패배한 내각(lost cabinet)'의 운명과 함께 한다는 인상을 더 주지 않을 것이다."
국무부가 주한미국대사관에 이처럼 신중하게 행동하라고 충고한 것은 매그루더 사령관과 그린 대리대사가 전날 장면 정부를 지지한다고 발표한 성명에 케네디 대통령이 불만을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케네디는 그린이 자신의 재량권을 행사한 것은 승인했지만 더 이상의 논평은 하지 말도록 주의를 주었다.
매그루더는 한국 시간으로 5월 17일 오전 11시 40분 렘니처에게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미국 육군방첩대가 길거리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40%가 쿠데타를 지지하고, 20%는 지지하면서도 시기가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며, 40%는 반대한다. 장도영은 정부에 충성한다고 말하면서도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단호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중적이라는 징후는 많다. 그는 서울의 변두리까지에도 병력 동원하기를 꺼린다. 그는 적어도 쿠데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을 갖고 있었다. 윤보선 대통령은 입으로는 헌법 준수를 말하면서도 쿠데타를 정적인 장면을 제거하고 새 정부를 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고려하는 것 같다.
요약하자면 모든 권력자들은 쿠데타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최소한 반대는 하지 않는 것 같다. 반미나 친공 감정의 증거는 없다. 실제 지도자 박정희는 과거에 공산주의에 물들었고 이승만 정부에서는 공산주의자로 형을 받았던 강력한 장교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을 제거하는 데 협력했고, 반공주의자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쿠데타 동료들 중에서도 공산주의자나 반미주의자로 알려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한림의 제1사단은 쿠데타를 진압할 수 있는 병력이다. 그의 부대는 명령대로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장면이나 매그루더가 쿠데타 진압을 요청하면 그는 수행할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총리가 한국군들로 하여금 쿠데타를 진압하도록 한다면 매그루더는 그를 지지하도록 할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장 또는 국방부장관이나 합참의장이 반대해도 매그루더가 이한림에게 쿠데타 진압을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정부를 세우더라도 정부를 이끌 사람이 없고 국민의 지지도 받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매그루더는 제1사단에 쿠데타를 진압하도록 오직 그의 직권으로만 명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듯 장면은 4월혁명의 발발에 힘입어 미국의 기대와 지지를 받고 총리가 되었지만, 1년도 되지 않아 미국으로부터 외면당했다. 반면에 반공 친미를 내세우며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미국의 승인과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앞에서 밝혔듯, 내가 이 글의 주요 자료로 참고하고 있는 5.16쿠데타에 관한 미국정부 외교문서집인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1-63 제22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