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왜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미 양국, 특히 미국은 관성적인 사고에 빠져 기본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면 한국만큼이나 잘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데, 왜 북한은 이러한 거래를 거부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역시 미국만큼은 아니어도 판문점 선언 직후 '한반도 신경제지도'와 같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에 바빴다. 하지만 북한이 '그림의 떡'을 보고 핵을 포기할 리는 만무하다.
더욱 중요하게는 경제적 보상책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것이다. 핵문제의 본질은 군사안보 문제에 있다.
북한에게 비핵화는 군사안보상의 가장 중요한 억제 수단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한미동맹이 핵을 내려놓은 북한이 훨씬 안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비핵화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비핵화의 조건이자 과정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한미 양국은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관련 기사 보기 : '김계관 등판'의 진짜 의미는?)
그렇다면 어떻게 풀어야 할까?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오랜만에 등장한 북한의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5월 16일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공갈을 끝장내는 것이 (조선반도 비핵화의) 선결 조건으로 된다는 데 대하여 수차례에 걸쳐 천명하였다"고 말했다. 사실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두 차례 만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역시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북한과 중국이 이런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데에는 한미동맹이 비핵화 환경 조성에 걸맞은 군사안보적 상응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7년 만에 복원된 북중 관계를 색안경을 끼고 보기보다는 이들 나라의 공개적인 메시지를 주목해야 할 까닭이다.
'맥스 선더'는 예고편?
논란이 된 '맥스 선더'만 보더라고 그렇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 5월 6일 "미국이 우리의 평화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조선반도에 전략자산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을 비판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전개된 8대의 F-22 전투를 두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한미 양국은 이들 전투기를 동원한 '맥스 선더'를 실시했고, B-52 전략 폭격기를 전개하지 않는다는 방침도 미리 공개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남북고위급 회담 연기를 통보한 직후에 부랴부랴 공개했다.
맥스 선더는 또한 판문점 선언에 대한 남북 양측의 해석상의 차이를 드러냈다. 이 선언에는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적대 행위를 중지하기로 했다"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이를 근거로 북한은 "남조선당국과 미국은 력사적인 4.27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대규모의 련합공중훈련을" 벌려놓았다고 반발했다.
반면 한미 양국은 맥스 선더는 연례적인 방어 훈련이고 군사적 적대행위 중단 및 군사적 긴장완화는 판문점 선언 이후 다양한 회담을 통해 다뤄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는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판문점 선언에는 "단계적 군축"이 포함되었다. 이 조항은 문재인 정부가 준비해온 국방개혁 2.0과 정면으로 충돌할 소지가 크다. 국방개혁 2.0의 요체는 국방비를 대폭 늘려 대규모의 전력 증강을 꾀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이러한 계획의 골자를 유지하면서 확정짓는다면 "단계적 군축"을 강력히 요구해 이를 포함시킨 북한의 강력한 반발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더 중대한 문제도 있다. 판문점 선언에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대목이 있다. 이와 정부는 종전 선언은 "올해 안"이 목표라고 했고, 평화협정 체결은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로 설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평화협정 체결은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에 설정하는 것"이라는 점에 북한도 동의했느냐는 문제이다.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는 북한의 오랜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중요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종전 선언과 정전체제의 '불편한 동거'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에 종전 선언을 하고 "비핵화 마지막 단계에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정부의 로드맵 사이에는 낙관적으로 봐도 2년 안팎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이처럼 종선 선언과 정전체제의 불편한 동기가 길어지면, 이 사이에 어떤 악재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게 된다. 관성에 따라 안일하게 실시한 '맥스 선더'와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 판문점 선언의 불편한 조우처럼 말이다.
정부의 '엇박자형' 입장을 보더라도 이는 결코 기우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는 종전 선언을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7월 27일을 1차적인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8월에는 한미동맹의 "연례적인 방어 훈련"이라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예고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5월 21일 이 훈련의 축소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핵문제의 본질이 군사안보 문제이고 문재인 정부가 비핵화를 중대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면, 정부의 통일외교국방 정책도 이에 걸맞게 짜여야 한다. 하지만 맥스 선더와 국방개혁 2.0, 그리고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및 UFG에 대한 입장을 종합해보면, 국가전략과 국방정책 사이의 엇박자가 크기만 하다. 이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문제이다.
한반도 평화협정으로 직행하자
다시 기본으로 돌아와 보자.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핵위협을 종식시킬 수 방법은 무엇일까? 적대정책 종식은 네 가지를 포괄하고 있다. 북한의 주권 존중과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대북 제재 해제 및 북미 수교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또한 대북 핵위협 종식은 미국의 한국 내 전략 자산 철수 및 재배치와 전개 금지, 그리고 핵무기 불사용 및 불위협 등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이것들을 상당 부분 포괄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평화협정 체결이다. 평화협정이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지만 상기한 여러 조치들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포괄하는 교집합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이룬다면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종전은 축복"이라며 "성공을 위해선 뭐든지 하겠다"는 말도 나왔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평화체제 전략을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다. 올해 내로 한반도 평화협정으로 '직행'하거나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사이의 시간차를 '최소화'해야 한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평화협정을 이렇게 빨리 체결할 수 있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창의적인 대안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가령 2단계 평화협정을 생각해볼 수 있다. 1단계로 올해 내 가능한 빠른 시기에 기본(혹은 잠정) 협정을 체결하고, 2단계로 부속합의서 형태로 기본 협정 체결 이후 하나둘씩 합의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도저히 풀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고차 방정식도 1차 방정식으로 환원되기 마련이다. 한반도 문제의 1차 방정식은 바로 평화협정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곧 만날 트럼프와 바로 이점에 의기투합해야 한다. 그래야만 난기류를 거둬내고 김정은의 용단, 즉 "완전한 비핵화"를 단단히 묶어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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