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제협력, 세상에 없던 모델을 만들어야

[현안진단] 신한반도 경제구상과 새로운 상생 협력의 길

신한반도 경제구상의 의미

한반도 미래 운명의 가늠자가 될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를 내세워 미국과 담판을 짓고자 하는 근본적 이유는 결국 경제문제에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간접적으로 북한경제의 낙후성을 토로하기도 했다.

북한은 5월23일부터 25일 사이에 외국 기자단이 참관하는 가운데 핵실험장을 폐쇄하기로 했고,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 핵무기를 폐기해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가져갈 것이라고 밝혔다. 비핵화 문제 해결에 청신호가 켜졌다.

미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이 과거 핵을 외부로 내보낼 경우 미국 기업들의 대북 투자를 허용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북한판 마셜플랜'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둘러싼 경제환경에 큰 변화가 예고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이던 2014년부터 이미 '신한반도 경제지도'를 주창해 왔다. 그리고 2017년 7월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는 '베를린 구상'을 내놓았다. 이 연설의 근간은 신한반도 경제구상이다.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근본적으로 전환해 남북한이 함께 경제 번영을 누리자는 내용이다. 신한반도 경제구상은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과 몇 가지 근원적 차이가 있다.

먼저 평화를 우선한다. 과거에는 경제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평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우선 평화부터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교류 협력을 해 나가자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궤도는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는 작업이다.

둘째는 상생이다. 과거에는 북한에 우선 지원하고 북한의 변화에 맞춰 경제교류를 확대해 나가자는 방식이었다. 변화를 거부하는 북한을 전제하고 반 강제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 스스로 변화하고 우리는 이를 지원하면서 함께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단 이후 한국 경제는 삼면이 바다고 한 면은 절벽인 섬나라 아닌 섬나라라는 지정학적 환경에서 성장 발전해 왔다. 북한이 스스로 문을 열면 한국은 더 이상 섬나라가 아니며 대륙과 연결하는 거대한 시장을 겨냥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 경제는 기초를 다지고 경제성장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북한을 억지로 변화시켜 강제로 통합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북한 경제의 자생력을 강화하며, 북한이 자체적으로 경제발전을 구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신한반도 경제구상은 이러한 남북한의 상생을 기본으로 한다.

셋째는 동북아의 경제공동체를 지향한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남북한만의 경협을 넘어 동북아 지역의 발전도 도모된다.

북한은 동북아 지역의 블랙홀이었다. 동북아 국가들의 경제력과 경제체제의 차이로 경제공동체를 꿈꾸지 못했던 점도 있지만, 북한이라는 블랙홀로 서로의 협력을 시도하기 어려웠다.

신한반도 경제구상은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시발점을 한반도에서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남북한의 8000만 시장을 넘어 동북아 5억 이상의 거대시장을 꿈꾼다. EU 경제 공동체는 동서독 분단 이후 서독의 아데나워 정부가 철강공동체를 내세워 서방국들과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됐다. 독일 통일과 함께 유럽통합은 가속화됐고, 결국 유럽통합의 중심에 통일 독일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평화시대의 틀에 맞는 상생의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북·미 양측의 의지와 진정성, 그리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의 전망을 확실하게 해줄 긍정적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는 남북한이 상생할 기회가 도래함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년 가까이 막혔던 남북경협이 다시 풀릴 것이라는 기대로 부풀어 있다. 파주의 땅값이 들썩이고,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기대하는 기관과 기업, 민간부문들이 앞다퉈 온갖 대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 등 제3국에서는 북한 측과 사업 협의를 위한 접촉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그러나 모처럼 만에 찾아온 기회를 잘 살려 나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기존 남북 간의 합의를 준수하고, 우선적으로 연락사무소 개설, 이산가족 상봉 및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러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또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풀려야 한다. 물론 북미 정상회담이 긍정적인 결과를 낼 것이라 예상되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순차적으로 풀려나갈 것이다.

하지만 남북 간에는 경제운영 방식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점을 서로가 인정해야 한다. 북한이 하루아침에 시장경제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남한은 북한의 시장경제 도입을 강요할 수만도 없다. 서로 다른 체제 간에 원활한 경제교류를 가능케 하는 완충 장치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남북 간에는 이러한 문제에 원칙적 합의를 보았지만,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으며, 시행착오도 빈번했다. 남북 간 교류와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재조정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반도에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의 프로세스가 진행되면 종전의 내국 간 거래를 지속할 수 있을지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에만 유리한 교역 조건을 허용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경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남북한의 내국 간 거래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협정 체결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또한, 경제교류는 자본의 이동이 필수이므로 금융거래 방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초기 남북경제교류는 무역과 임가공 사업이 중심이 될 것인데, 대금결제를 위한 은행 간 신용장 개설이 안 되어 있다. 달러 기준으로 결제할 때 북한의 시장환율로 할지, 공식환율로 할지도 정해야 한다. 양 환율의 차이가 80배 이상 나기 때문이다.

인적교류를 위해 초청장 발급은 어떻게 할 것인지, 비자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기존과 같이 북한의 민경련이나 민화협을 통해야만 교류할 수 있는 것인지 등등에 대한 재협의가 필요하다. 이렇듯 지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일부터 우선해야 한다.

북한의 경제개발에 남한의 자본과 노하우는 마중물이다. 하지만 남한이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과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 경제개발의 주체는 북한이다.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는데 남한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는 있다.

남한은 북한 스스로 유무상의 차관을 도입하여 철도, 도로를 깔고 발전소를 건설하는데 도움을 주고, 필요하다면 자본 참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의 해외 무역망을 북한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할 수도 있다.

무분별한 대북지원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인도적 지원으로 북한에 연탄을 제공한 사례가 있었는데 북한에는 연탄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그래서 남한에서 지원한 연탄을 부숴서 자신들의 시스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다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우리 기준의 대북지원이 아니라 북한 기준의 지원사업이 되어야 한다.

북한 개발의 주체는 북한이다

북한은 개혁과 개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이미 추진하고 있다. 시장개혁은 '포전담당제'와 '사회주의기업경영책임제'로 대표된다. 시장의 개인자본도 국가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5개의 경제특구와 22개의 경제개발구를 열어놓고 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은 사실상의 개혁과 개방을 위한 내부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이 개혁·개방의 성과를 거두는데 홍콩 및 화교 자본에 대한 우대정책을 비롯하여 수많은 법과 제도, 시스템 구축을 했다는 점을 북한은 명심해야 한다. 중국만 하더라도 경제의 투명성을 유지하는데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남한이 이를 대신할 수 없다. 북한 당국 스스로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경제제재만 풀리면 해외자본이 물밀 듯 들어올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해외자본이 북한에 들어올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은 북한 몫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변화를 거부해 왔고, 외부세계는 북한을 억지로 변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북한 특수성이 이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북한 특수성은 오히려 북한이 해외자본을 유치하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외부의 변화 요구로부터 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수많은 규제와 비관세 장벽을 만들어 왔지만, 이제 스스로 규제와 비관세 장벽을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남북 경협은 물론 국제사회와의 경제협력을 위해 북한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일이다. 사회간접자본 확충에는 많은 자본이 필요한데 북한 스스로 자본을 조달해야 한다. 국제금융기구, 외국정부로부터 유무상의 차관을 도입하려면 북한의 신용이 좋아야 한다.

초기에 북한의 신용도를 보완하는데 남한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남한의 자본을 마중물로 하여 국제자본을 유치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남한의 전문가들과 각종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북한이다.

북한은 그동안 무상으로 받는 것에 익숙해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된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은 변화를 생각하지 않고 국제사회는 무상지원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이 스스로 변화를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른 보상이 수반되겠지만, 북한의 경제개발 모델을 상품 가치가 높은 사업으로 만들어야 한다.

개성공단 사례를 보면 북한은 남한 기업들에게 특별히 돈벌이를 할 수 있도록 땅과 인력을 제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개성공단 개발 자체를 남한 자금으로 했다. 그러나 다른 특구 지역들은 다르다. 자본은 개방을 거부하고 차단막을 높이 치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 남한은 북한에서 요구한다면 기술과 노하우를 제공할 수 있지만, 공단 개발을 남한 자본에 의존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신한반도 경제구상은 남북한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다. 모처럼 만들어진 상생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살려 나가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남이나 북이나 지금까지의 사고에서 벗어나 상생과 민족 전체의 번영을 위한 지속 가능한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평화의 과실을 효과적으로 따먹기 위해서 남북한은 평화의 나무를 건강하게 키워 나가야 한다. 다시 한번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한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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