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 생명력을…'고쳐 살자'

[생협평론] 허세 부리기 좋은 집, 두꺼비하우징

레드와인과 레몬, 계피를 넣은 뱅쇼의 달콤한 향기가 집 안 가득 퍼졌다. 2017년 12월 어느 토요일 아침, 이 집에 입주 파티가 열렸다. 말소리는 소곤거렸고 조심스러웠으며 어리둥절함이 흘렀다. 입학식 날 한 반에서 만난 친구들 사이처럼 아직은 어색한, 그런 느낌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이곳은 허세 부리기 좋은 집, 두꺼비하우징 열한 번째 쉐어 하우스(share house+) '콘체르토 녹번 109'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두꺼비하우징은 2010년 '저층주거지를 아파트처럼 관리해볼까요?'라는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쇠퇴하는 저층주거지에서 쓰레기관리, 택배 보관과 같은 편리한 생활 서비스를 공급하고 노후한 도시 인프라와 개별 가구의 물리적 환경을 향상하여 점진적으로 주거지를 개선하려는 사업이었다. 이를 통해 마을 안에 일자리가 생기고 협력적 커뮤니티가 구축되어 삶의 질을 높이는, 통합적 도시재생이 목표였다.

ⓒ두꺼비하우징

강제 이주와 폭력적인 철거를 수반하는 전면철거형 재개발이 아니라, 평화로운 방식으로 삶의 환경을 바꿔나가기 위해 대안을 찾으려 했다. 기존 도시재생은 새롭게 조성한 물리적 환경으로부터 일부 사람들만 이익을 취함으로써 갈등과 소외, 배제를 불러일으켰다. 상생하는 삶터로서 도시를 다시 구축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지역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수많은 사람과 조직들이 만나 살고 있는 곳이다. 강렬한 의지를 가진 한두 사람의 힘이나 공공의 주도로 지역을 변화시키고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원을 효과적이고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낸다 해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내면으로부터 공감하고 스스로 주도하지 않는다면 곧 실패하고 만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수용하고, 조절하는 협력적 관계들이 도시의 변화를 이끌어야 멀리, 깊게 흐를 수 있다. 자원의 투입, 정책적 지원, 협력적 거버넌스 외에 관계의 깊이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었다. 그동안 도시 정책의 계획과 실현과정에서 주민들은 자신의 정주 환경에 대해 발언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형식적인 권리만 있었다. 우리는 '동네일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실현하는 게 어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정주 환경을 유지·관리하는 주체로 성장하도록 발굴하고 지원하는 매개자가 되고자 했다. 별다르게 무엇을 했다기보다 마을에서 신나게 놀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우리와 우리가 하는 일을 소개했다. 무엇을 해볼까 작당하고 몸으로 부딪쳐 익히고 배웠다. 주민들과 밥 먹고, 청소하고, 농사짓고, 잔치하고, 일을 꾸미고 뭐든 해보려고 애쓴 것이 우리가 한 일의 거의 전부였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사람들이 성실하게 무엇이라도 꾸준히 하면 생각지도 못한 큰일을 이루고야 만다는 좋은 경험과 신뢰가 쌓였다. 신뢰야말로 마을에서 발견해야 할 가장 큰 가치다. 상호 신뢰가 사람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관계로 자리 잡는다면 어려운 일도 머리를 맞대어 풀어갈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필요한 토대다. 그런데 마을에서 신나게 놀던 두꺼비하우징은 모래놀이를 하며 부른 노래처럼 '헌집 고쳐 새집'을 주었을까?

▲ 도시재생. ⓒ공동체 활성화 마을학교

뜻밖에도 집은 허약하기 짝이 없다

어느 해는 눈물 쏙 빠지도록 추운 날이 열흘 넘도록 계속되었다. 어느 해는 숨 막히는 더위가 늦도록 지속되었다. 쉼 없이 비가 오기도 했다. 기후변화가 일상을 위협했다. 나쁜 상황이 지속되면 가장 약한 고리에서 문제가 터지는 법이다.

1980~90년대에 벽돌로 지은 집이 많은 저층주거지의 집마다 곰팡이가 피고, 물이 줄줄 샜다. 물리적 성능이 낮은 것이다. 이 집들의 형식은 벽돌과 벽돌 사이에 단열재를 넣는 중단열이 많다. 단열재와 단열재 사이를 틈 없이 꼼꼼하게 시공해야 효과가 나타나는데 올바르게 시공한 곳이 드물었다. 나무와 알루미늄 복합으로 구성된 창은 통신용 전선, 에어컨 배관이 지나가는 통로가 되면서 열이 빠져나가는 바람 길이 되었다. 집집마다 난방비 걱정으로 보일러 켜기를 무서워하고 추위로 떨었다. 쓰지 않는 방이나 구석진 곳에는 곰팡이가 만개했다.

건축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공사는 까다롭고 비용이 높았으므로 주민들은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당장 눈앞의 곤란을 없애는 땜질식 처방을 선택하는 편이었다. 주민들의 지불 역량이 낮은 것도 원인이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곧 허물어 새로 지을 것이고 언젠가는 떠날 것이라는 생각도 작용했다. 높은 비용을 지불하기에 물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낮기 때문이었다. 2025년부터 민간 건축물을 새로 지을 때도 제로에너지가 의무화되지만, 저층주거지 노후 건축물과는 너무도 먼 이야기다. 오래된 집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은 주거 환경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긴급하게 필요한 일이지만 여전히 작동하지 않고 있는 주거지 재생의 숙제다.(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자립'을 이룬 건축물을 '에너지제로(0)주택'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신재생에너지로 난방, 냉방, 온수 등을 사용하는 에너지 절약 기술을 반영하는 것이다. 정부가 2015년 11월 23일 발표한 '2030년 에너지 신산업 확산 전략'에 따르면, 2025년부터는 국내 신축되는 건물이 모두 '제로에너지'로 건축되어야 한다.)

ⓒ집수리 학교

ⓒ집수리 학교

2017년 11월 17일 포항시 흥해읍에서 진도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서울에서 흔들림이 느껴질 정도의 강진이었고, 진원지가 얕아 2016년 비슷한 진도 규모의 경주 지진보다 피해가 훨씬 컸다. 사람들은 비로소 건물 구조가 안전한지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노후 주거지 건축물은 대부분 지진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 중 취약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건물 기초다. 불안정한 기초 위에 서 있는 집은 지반에 약간의 충격이 가해져도 침하가 발생하기 쉽고 기울어지거나 균열이 생기며 누수로 이어질 수 있다. 안타깝게도 저층주거지에는 이런 집이 상당하다. 올바른 시공 방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은 대충 처리하는 건설 관행으로 지은 집들이 너무 많다. 어떻게 지었는지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는 것도 큰 문제다. 드물게 육안이나 장비를 통해 확인해보면 고쳐서 다시 쓰는 것이 무모한 모험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도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규제 완화를 통해 부족한 집을 빠르게 공급해왔다. 수요를 맞추기 위해 마구 찍어내듯이 지었던 집들은 이제 부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겉만 번지르르하게 만들었던 나쁜 관행들이 이제 발목을 잡고 있다. 노후 주거지 경관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으므로 보존 정책을 통해 유지·관리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집들은 어쩌면 빵처럼 부스러지기 쉬운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 슬쩍 밀어 부서질 정도인지 견딜 만한지 알 수 없다. 아무도 모르는 상태야말로 공포스러운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집을 알아갈수록 고치는 일이 두렵다. 헌집 고쳐 새집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집의 수명은 사람의 수명보다 짧다

2018년 1월, 국토부장관은 30년인 재건축 연한을 재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가 40년이었던 재건축 가능 연한을 30년으로 축소한 지 4년 만의 일이다. 재건축은 건물의 물리적 수명이 다했을 때보다 사회적 수명이 다했을 때 추진된다.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기보다 새로 지을 때 경제적 효용이 훨씬 크다면 재건축이 추진된다. 시기와 대상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2003년 재건축 연한을 20~40년으로 차등 적용하기 전에는 대체로 20년이었다. '20년이 지나면 부수고 새로 짓는다'는 경험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큰 흔적을 남겼다. 누구도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평생을 보내거나 오랫동안 살아가기를 기대하지 않고 언젠가는 떠날 공간으로 간주한다. 노후 주거지일수록 이런 경향은 커진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기대하는 것이 재개발을 통한 경제적 이익인 삶은 어떤 것인가? 집을 소유하거나 소유하지 않거나, 한 장소에 뿌리내리지 않고 언젠가 떠날 마음의 채비를 하고 사는 것은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에 대한 경험이 없다. 정신 차리기 어려운 변화 속에서 속도에 맞추어 살거나 속도보다 빠르게 헤엄쳐 다녀야 한다. 변화의 속도에 맞추는 것은 선택 가능한 것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도태되거나 살아남거나. 모든 변화는 물질로 환원되고, 성패는 취득한 물질의 양으로 평가된다. 이런 현실에서 집이 삶을 담는 정서적 그릇이 되기를 시도하고, 천천히 흘러 마침내 삶과 함께 시간조차 담아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일은 유적이 되어 구경하는 대상이 된 고택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집의 사회적 수명은 사람보다 짧다. 심지어 짓는 순간의 성능과 품질이 엉망이었던 집의 물리적 수명은 사회적 수명만큼이나 짧다. 쓸 만한 상태로 오랫동안 집을 사용하는 것이 부수고 새로 짓는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고 효용이 낮은 일은 생각보다 종종 일어난다. 촘촘하게 벽들이 이어져 말소리, 발소리를 실어 나르던 골목과 붉은 벽돌로 지은 집들이 일거에 소멸되고 웅장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극단적인 변화는 이런 이유로 지지를 얻는다.

대규모 재개발이 주민들을 삥 뜯어서 시행자, 건설사, 부동산 금융의 배만 불린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고쳐 살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경기 후퇴가 계속되고 집값 상승이 둔화된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점진적인 도시재생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최근 몇 년 동안 동네에는 발 빠른 선수들이 나타나 부지런히 소규모 개발을 하고 있다. 상당히 많은 집들이 새로운 집으로 대체되었다. 이 일들은 커뮤니티 중심의 도시재생과는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동네 사람들은 바뀌고 관계망은 흩어지고 있다. 거주민들은 불안해하거나 기회를 엿본다.

지금의 마을은 사람들이 떠나고 타자들로 채워지며 익명성만이 존재하는 곳인가? 사람이 바뀌면서 기존의 공동체는 해체되고 있는 것일까? 쾌적한 환경과 이타적 커뮤니티가 공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비어 있는 집에서 함께 사는 집으로. 공유주택(빈집 프로젝트 1). ⓒ두꺼비하우징

마을에는 바람의 사람도 흙의 사람도 필요하다

2014년 마을의 빈집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했던 고민은 꽤 단순했다. 빈 집을 버려두느니 잘 고쳐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 거실이나 욕실, 주방과 같이 늘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함께 쓴다면 가격을 낮출 수 있지 않을까? 소득에서 주거비 비율을 낮출 수 있다면 줄어든 비용만큼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고,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꿈꿀 수 있을 것이다. 타인과 함께 살면서 혼자서 겪어야 할 외로움이 덜어진다면 일거양득이 된다. 이 느슨한 관계가 집 안에 머무르지 않고, 이웃과 마을로 확대된다면 활기 넘치는 지역이 될 것이다. 빈집을 청년들이 채우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삶에만 주목했던 시선이 공동체 안에서 협력하며 살아가는 경험을 통해 이타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면, 경쟁 중심의 승자독식 사회에서 협력적인 사회로 진화하고 개인의 행복감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고민이 있었다. 마을에는 고쳐서 쓸 만한 집이 있고, 다시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을 사람들의 활동도 필요하다.

오랫동안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흙의 사람이다. 마을의 토대고 역사며 환경과 울타리이다. 갈등이 있거나 협력이 필요할 때 조정자의 역할을 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아 견인하기도 한다. 이 울타리가 닫혀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다.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하며, 누구든지 이야기할 수 있고 또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평화로운 마을이어야 한다. 골목 축제를 하거나 마을학교를 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공공의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협력하는 행정을 포함하여 누구든지 마을의 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어렵지 않고 열려 있어야 지속가능한 지역이 된다. 이들은 바람의 사람이다. 빈집을 재생했을 때 이곳에 살기 위해 이주하는 사람들도 바람의 사람이다.

'비어 있는 집에서 함께 사는 집으로' 첫 번째 공가(空家) 프로젝트는 수색·증산 뉴타운 구역 중 증산5구역 안에 있는 빈집이었다. 지하철역에서 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 돌로 만든 계단을 3m 정도 올라가면 넓은 정원이 있는 저택이었다. 3개 층에 화장실 4개, 평균 11㎡ 정도 되는 방이 7개, 넓은 거실과 부엌, 식당이 있는 곳이었다. 이 집을 시작으로 4년 동안 10개의 집을 만들었다.

쾌적한 주거 환경, 부담 가능한 주거비, 정주하는 삶, 자립하는 커뮤니티를 목표로 집을 만들고 있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을 찾아다녔던 것은 방 하나에 갇힐 수도 있는 쉐어 하우스에서 새 소리가 들리고, 햇빛이 내려앉는 정원이 타인끼리 살아가는 긴장감을 늦추고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물리적 형식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달에 한 번쯤 반상회를 진행하는 것과, 서로 양해할 수 있고 배려하기 위한 작은 규칙 정도가 이 집들에 부여된 조건이었다. 가능한 한 적게 개입하고, 각자의 공간에서 스스로 조화롭게 살아감으로써 운영·관리비의 부담을 줄이는 것도 목표 중 하나였다. 이는 저렴한 임대료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마을로 관계망을 넓히고 자립하는 커뮤니티를 구축하게 되었을까? 부유하는 삶에서 정주하는 삶으로 바뀌었을까?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 허세 부리기 좋은 집

열 번째 집을 만들면서 이가 빠진 듯한 부족함이 밀려왔다. 빈집을 고치거나 고시원을 청년 공유주택으로 만드는 것은 서울시 사회주택정책으로 편입되어 공사비를 지원받는다. 쉐어 하우스는 수익형 부동산으로 재테크 수단이 되었다. 자본의 속도는 빛보다 빠르다. 쫓기고 있었다. 양적 성과를 요구하는 공공의 정책 요구와 시장에서 공급되는 상품들 사이에서 '공간을 공유하고 장소를 재생'하겠다는 미션은 사라져갔다.

▲ 비어 있는 집에서 함께 사는 집으로. 공유주택(빈집 프로젝트 2). ⓒ두꺼비하우징

돌이켜보면, 첫 번째 빈집 리모델링 이후 거듭된 실패 속에 있었다. 기존 주택의 물리적 상태는 공간을 상품으로 공급할 때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수구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물이 넘치거나 교체하지 못한 오래된 배관에서 누수가 생겼고 지붕 속에 고양이가 살기도 했다. 알고 보니 노후 주거지에서 길고양이는 쥐만큼이나 불편하고 일상적인 존재였다. 유난히 방 하나가 추운 집은 보일러 고장이 아니라 분배기 연결 표시의 오류였음을 오랜 시간을 들여 에너지 진단을 한 후에야 발견할 수 있었다. 리모델링한 건축물들은 셀 수 없이 많은 물리적 오류를 일으켰다. 대체로 서투름이 부른 결과였다.

사용할 수 있는 사회투자기금의 사용 기한은 투자 회수 기간에 비해 짧았고 재무적 어려움에 처했다. 수익률은 낮았고 서비스는 고도화되지 못했다. 정주하는 공간이라기보다 잠시 머무는 공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상품으로 공간을 작동시키는 것과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호혜적 공간으로 공급하는 것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었던 것이다. 애매한 태도는 냉정한 이별보다 나쁘다. 삶의 문제는 주거를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에도 공급량에 쫓기고 있었다.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식이다. 사람들이 살기 원하는 집이 아니라 우리가 공급하고 싶은 집을 만들고 있었다. 속도에 쫓겨 문제를 직시하지 못했다. 혼자 끙끙거리는 것으로는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 비어 있는 집에서 함께 사는 집으로. 공유주택(빈집 프로젝트 3). ⓒ두꺼비하우징
사회적경제 친구들에게 무작정 도움을 청했다. '우리는 집을 만들 테니 내용은 함께 채워가는 게 어때요?' 집은 그릇에 불과하다. 문제는 사람들의 협력과 연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집 하나를 고치는 데 작게는 몇천만 원에서 몇억 원이 필요하다. 그릇을 사고 가구를 만들고 창호를 주문한다. 가전제품도 사고 의자도 사야 한다. 이 큰돈을 사회적경제 조직들 사이에서 유통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주택 유지관리 전문 조직인 '무엇이든협동조합'과 공사를 협력하고, 입주 선물로 공정무역 제품을 주문하거나 사회적기업 일자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직원들의 숙소로 우리 집을 쓸 수 있다. 전기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공용 부분에 설치하는 태양광패널을 '햇빛발전협동조합'으로부터 주문하고 협력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쓰는 전기량을 함께 계산해보고, 원리를 파악하면서 에너지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입주자를 포함해 관련 분야에서 활동 중인 사회적경제 조직들과 함께 시도해볼 수 있다.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건강한 먹을거리를 함께 사는 사람들과 같이 고민해볼 수 있다.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재밌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도 있다.

협력은 셀 수 없을 만큼 확대되고 다양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집을 만들어 따뜻하거나 시원한 집을 공급하더라도 거주하는 사람이 이에 대한 중요함을 인식하고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저 지출된 비용에 불과한 것이다. 스스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주도성을 갖는 길이다. 잠시 빌려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주체가 된다. 협력과 연대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곳, 일상을 바꿈으로써 모두를 바꾸는 거창한 계획.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바이올린, 독주 악기들이 협연하는 콘체르토 녹번 109다.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 이 정도 허세쯤은 부려도 좋지 않은가?

아직은 서투릅니다만!

사회적경제 조직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소셜 미션(social mission)이 분명하고 비즈니스 모델도 명확해야 한다. 시장의 흐름과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통찰해야 하며, 그 변화를 뛰어넘는 시도와 성과도 만들어야 한다. 표트르 크로포트킨은 "만물은 서로 돕는다"고 했다. 함께 해나간다면 깊고 멀리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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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생협평론>은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가 펴내는, 협동조합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문잡지로서 협동경제·나눔·평화에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공간입니다. 정보지이자 실천적 교육서로서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협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이슈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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