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와 김정은이 손 잡을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

[인터뷰]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지난 2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평창올림픽 기간 남북 대화를 하면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미소 외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3월 9일, 사상 최초의 미북 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들려오자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계는 발칵 뒤집혔다. 북한을 믿을 수 없다면서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을 강조하던 아베 총리의 외교적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고 6월 초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이 앞당겨지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급격히 변화하자 결국 아베 총리는 '대세'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는 1일(현지 시각)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실현한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을 칭찬한다면서 북일 간 국교 정상화 방침을 밝혔다. 아베 총리는 "북일 평양 선언에 기초해 납치 문제와 북한의 핵·미사일 등 모든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일관된 방침을 가지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본의 표변이 놀랍지만,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일 정상회담까지 열리고 북일 수교가 현실화된다면 한국-중국, 한국-소련(러시아) 수교 이후 동북아의 정세를 뒤흔드는 또 하나의 역사가 될 수 있다. 한반도와 주변 질서의 급변에서 북일 관계의 향방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일본 전문가인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는 "아베 총리가 처한 국내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북한에 가서 관계 정상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남 교수는 △사학 스캔들 △육상 자위대 문서 은폐 △재무성 사무차관 성추행 의혹 등 정치적 위기에 몰려있는 아베 총리 입장에서 북일 관계 개선은 3대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일본의 숙원인 △헌법 개정 △러일 평화 조약 △북일 국교 정상화 가운데, 아베 총리가 현실적으로 돌파구를 모색할 수 있는 분야가 북일 관계 개선이라고 전망했다. 변화된 상황이 맞춰 기민하게 대응하는 일본의 외교적 전통도 북일 관계 개선을 향한 아베 총리의 움직임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남 교수는 "지난 1972년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대해 일본은 '얻어 맞았다'는 표현을 쓰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보다 일찍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면서 "일본은 스스로 돌파구를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판이 벌어지면 거기에 적응해서 빨리 재조정을 해나가는 외교적인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일본의 이러한 특성을 간파해 우리가 일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핵 문제 해결에 리비아 방식을 이야기하는데 북한은 이를 받을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이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리비아 방식을 보완하려면 경제지원이 필요한데, 북일 국교 정상화를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에서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보장)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라며 "일본이 평화 프로세스에서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이익을 보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 교수는 "이렇게 된다면 북한의 비핵화도 불가역적인 과정으로 갈 수 있다. 'CVID + CVIG' 가 CVIP(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Peace‧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평화)를 이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며 "이런 역할을 일본에게 부여하고 거기에 일본이 관여함으로써 일본이 여기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데 이어 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데, 유독 일본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을 강조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남기정 : 지난 3월 8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 이후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때부터 일본이 굉장히 당황한 것 같다. 그럼에도 일본은 이후 북한과 대화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이걸 보고 나는 현재 한반도 상황이 불가역적인 방향으로 나가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일본 수상 관저와 외무성은 2005년부터 미일 동맹주의자들이 장악한 상태였다. 10년이 넘도록 미일 동맹에만 치우쳤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대외 정책도 가능하다. 힘이 많이 약해졌다고 해도 현재의 일본 외무성에는 중국 라인인 이른바 '차이나 스쿨' 등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인사들이 있다.

설령 일본이 미국을 따라가더라도 나름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측면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일본은 다소 당황하긴 했지만 당선자 시절부터 트럼프를 친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미일 동맹의 안정뿐만 아니라 일본의 자율적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지난 2016년 9월 아베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쿠릴 열도 문제를 논의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재균형 정책에 함께하고 있지만 러일 관계도 생각했던 것이다. 2014년 북한과 납치자 문제 관련한 합의를 본 것도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 현 국면에서 아베 총리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언급하는 한편, 북미간 현안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에 집중돼 일본을 사정권에 둔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가 의제에서 사라지는 것을 우려한다. 이런 일본의 입장이 남북 또는 북미 관계 개선에 어깃장을 놓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남기정 :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사실 브레이크 같은 역할을 했다. 일종의 속도를 조절하는 카드였는데, 이게 지금 일본에게 부메랑으로 날아와 버렸다. 북일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납치자 문제를 없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게 됐다. 그래서 아베 총리가 오히려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북한에 가겠다고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문제가 앞으로 있을 북미 정상회담에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과 미국에 납치자 문제를 북한과 대화에서 거론해 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인도적‧외교적 문제를 넘어 일본 국내 정치적으로도 이 문제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이 납치자 문제를 풀지 않으면 북한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일 수는 없다. 이런 문제가 있다는 정도로 이야기할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도 그 정도만 이야기해줘도 체면치레는 한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일본이 한국이나 미국을 통해 이 문제를 풀 생각은 없어 보인다.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소위 '립 서비스'를 받으면, 이후에는 자신들이 풀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과거 6자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가 중심 의제가 돼 회담이 깨졌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 전례가 다시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실제로 미국에 다녀온 이틀 후인 지난 4월 22일 도쿄도에서 열린 국민대집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본인이 납치자 문제를 푸는 사령탑이 되겠다고 했다. 일본의 외교과제로서 본인이 직접 풀겠다는 것인데, 이는 곧 북일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중거리 미사일은 일본이 북한과 교섭하는 중에 협상 재료로 올라간 문제라고 생각된다. 즉 북한의 비핵화와 플러스 알파의 추가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문제는 북한이 받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일본의 중거리 미사일 문제제기는 북한을 상대로 협상이 진행중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4월 전까지만 해도 일본이 좀 당황해서 급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4월 중순부터는 한미일의 공조가 중요하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건 북한 쪽에서 신호가 오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과 천천히 교섭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본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물밑으로는 북한이 일본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인가?

남기정 : 그렇다고 본다. 일본이 계속 납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북한에서 썩 좋은 신호가 오지는 않은 것 같다.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오지 않다 보니 미국과 한국에 이 문제를 거론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현재 한반도 정세의 핵심은 남한과 북한, 미국이다. 그리고 중국, 이후 일본과 러시아 등도 관여해야 할 문제인데, 현재 국면에서 러시아보다는 일본이 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는 지정학적인 이유도 있지만 역사적인 배경도 있다.

▲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배석자 없는 단독 회동을 하고 있다. ⓒ판문점 공동 취재단

한반도의 분단은 일본제국을 연합국이 해체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분단이 전쟁으로, 그리고 휴전으로까지 이어졌다. 즉 한반도의 분단은 한반도 수준이 아니라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일어난 셈이다. 적어도 남북을 포함해 일본과 중국, 러시아와 미국이 관련돼있는 시스템이다. 한반도 분단보다는 '동아시아 휴전 체제'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이 휴전체제에서 한국은 전쟁국가, 일본은 기지국가가 되어 하위 행위자로 들어가 있다. 실제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일본은 기지 역할을 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는 이러한 일본의 지위와 역할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리고 휴전을 거쳐 동아시아가 65년 이상 판문점 체제로 살아온 것이다.

만약 이번에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로 나온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모든 상황이 총체적으로 바뀌는 '신(新) 판문점 체제'로 간다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제도 대폭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 변화는 전쟁국가-기지국가로 맺어진 한일 관계도 근본적으로 변환시킬 것이다. 한일 관계를 총체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지금 마련됐다고 본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이 정도의 상상력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가 있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런 그림을 가지고 한일관계를 운영해야 한다.

프레시안 :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북 간 화해나 북미 수교만으로는 부족하고,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이 함께 참여해야 완성된다는 의미인가?

남기정 : 그렇다. 1988년 7.7 선언이 나온지 30년이 됐다. 당시 냉전이 사그라들고 동서 진영 간에 유화 국면이 열리면서 이같은 선언이 발표됐다. 물론 서울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개최국 정부 입자에서는 세계에 평화를 어필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7.7선언에는 남북화해와 교차승인이 같이 들어가 있다. 교차승인으로 한국-소련(러시아), 한국-중국은 수교가 이뤄졌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인 북한-미국, 북한-일본의 수교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게 북한 입장에서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느끼게 되었고 북한은 이를 바로잡는 수단으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다.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게 하려면 결국 교차승인을 통해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아베, 북한 갈 것

프레시안 : 북미 정상회담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우선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 북미 수교 등이 우선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북미 수교가 진행된다면 그 다음은 북일 수교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래야 말씀하신 것처럼 소위 동북아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본의 의지인데, 아베 총리는 실제로 북일 수교를 원하고 있나?

남기정 : 저는 아베 총리가 북한에 간다고 본다. 그가 처한 국내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북한에 가서 북일 관계 정상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아베 총리는 현재 가까운 인사들이 운영하는 사학 법인이 특혜를 받았다는 이른바 '모리가케 스캔들' 때문에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다. 또 육상자위대 문서 은폐 문제에 재무성 사무차관의 성추행 의혹도 있다. 아베 총리에게 상당히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게 아베 총리를 끌어내리는 결정타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3주 전까지만 해도 일본 기자들에게 물어보면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에 세 번째 도전하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 나오는 여론조사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일본 <닛케이신문>에서 보도된 내각 지지율이 42~43%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가장 수치가 낮았던 <마이니치 신문>의 경우에도 내각 지지율이 30% 선에서 유지되고 있다.

일본 정치에는 당 지지도와 내각 지지도를 합해 50% 이하일 경우 총리와 내각이 물갈이 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현재 자민당의 지지율이 30% 정도 나오고 아베 내각의 지지도가 30% 정도 된다. 이 둘을 합하면 거의 60% 정도 나온다. 이에 아베 총리의 집권이 아직까지는 가능하다는 분위기가 나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최근 일본에서는 지난 2016년 한국 사회를 달궜던 촛불이 등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시민들의 자율적 움직임으로 정권이 바뀌거나 중앙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남기정 : 쉽지 않다고 본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시위는 2015년 안보법제 통과 때보다 약한 것 같다. 특히 이슈도 그때만큼 커다란 문제도 아니다.

▲ 남기정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다만 자민당 내에서 총재 교체는 가능할 수 있는데 대중적 인기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이 많이 치고 올라온 상태다. 그리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외무상도 주요 인물 중 하나로 거론된다.

그런데 이시바 전 간사장이 당내에서는 지지가 약하다. 몇 번의 결정적 계기를 통해 신뢰가 가지 않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자민당 안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은 '뒤통수 치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그가 자민당 내에서 아베 총리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규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시바 전 간사장이 무언가 도드라져 보이기 위해 행동을 잘못하다가 당심을 잃었다면, 기시다 전 외무상은 너무 신중하다.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아베 총리에게 강력한 라이벌이 없다. 또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 정도면 됐다'는 분위기도 있다. 국제정세가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국내정치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베를 총리에서 끌어내리면 일본이 감수해야 할 손해도 적지 않다는 여론도 생겨나고 있다.

프레시안 : 상황이 좀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만들고 싶어할 것 같다.

남기정 : 일본 정치인들이 헌법 개정, 러일 평화 조약, 북일 국교 정상화 등을 일종의 숙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선 헌법 개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의 헌법 기념일이 3일인데, 전날인 2일 <아사히신문>에서 나온 여론조사를 보면 아베 정권 하에서의 헌법 개정에 부정적인 여론이 60% 가까이 나왔다. 헌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조사 결과가 나온 이유는 사학 스캔들을 비롯한 현 상황과 관련이 깊다. 아베 총리가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고, 공무원들은 아베에게 설설 기면서 문서를 바꾸고 있는 상황이라는 인식 하에, 일본의 민주주의가 이상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구심들이 나오고 있다. 이대로 가면 안되겠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헌법 개정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러일 평화 조약 체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내 정치가 매우 안정돼 있다. 일본이 무엇인가 크게 던지지 않는 한 푸틴 대통령이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칫 집권 6년 차를 맞은 아베 총리가 별다른 실적 없이 물러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소위 '아베 노믹스'라고 불렀던 경제 부문도 그저 그렇고, 헌법 개정은 사실상 못했고, 미일 동맹만 신경썼는데 이제 미국은 일본을 그렇게 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지 않다면 아베 총리는 북일 관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북일 관계 정상화를 하려면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건드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남기정 : 그렇다. 북일 양측은 지난 2014년 납치자 문제를 포함해 일본인 유골, 잔류 일본인, 일본인 배우자, 실종자 등에 대한 조사를 포괄적‧전면적으로 실시한다는 이른바 '스톡홀름' 합의에 도달한 바 있다. 일본 측은 이 대가로 북일 수교 실현의 의지를 확인하고 인적‧경제적 교류 제재를 해제하며 재일 조선인 지위 문제를 처리하고 인도지원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납치자 문제와 관련한 포괄적인 합의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16년 2월 북한은 일본인 납북 피해자 문제 등을 재조사해온 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한다고 밝혔다. 2016년 1월 4차 핵실험과 2월 이어진 광명성 4호 발사로 일본이 북한에 대해 독자 제재를 감행하자 이것이 스톡홀름 합의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또 지난해 4월 송일호 조일 국교정상화 담당 교섭 대사는 평양에서 진행된 현지 인터뷰를 통해 일본은 납치 문제에 관심이 없고, 스스로 스톡홀름 합의를 파기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일본은 자신들은 그런 적이 없다면서 합의가 이행돼야 하고 북일 평양선언도 유효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일본은 실제로 아직 스톡홀름 합의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이전과 지금이 상황이 바뀌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향후 변화에 따라 일본도 합의 이행 노력을 지속할 수 있다.

실제 일본 내에서 분위기의 변화도 감지된다. 지난 3월 8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한 뒤 3주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북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북한과 양측 정부 간 협의나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대사관 루트 등 다양한 기회와 수단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런 걸로 봐서는 북일 정상회담이 6월쯤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일본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또 자민당의 총재 선거가 9월이다. 아베 총리로서는 그 전에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프레시안 : 일본은 기회가 되면 굉장히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이번에도 북미 정상회담이 잘되고 남북미 3자회담까지 이어지면 미국보다 앞서서 북한과 수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남기정 : 지난 1972년 당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대해 일본은 '얻어 맞았다'는 표현을 쓰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보다 일찍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일본은 스스로 돌파구를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판이 벌어지면 거기에 적응해서 빨리 재조정을 해나가는 외교적인 힘이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수교도 그랬다. 일본은 1973년 1월 파리 평화 협정을 통해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자 그해 베트남과 수교했다. 이를 위해 일본 외무성은 수교 가능성을 보면서 베트남과 라인을 만들고 밑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만들어지니까 바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아마 북한에 대해서도 일본은 많은 라인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한국이나 미국보다는 많다.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도 있고. 조총련은 일본 안에서는 네트워크가 상당하다. 또 대기업은 아닐지라도 일본의 많은 기업들이 북한과의 비즈니스를 선택지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일본의 적극적 투자 유도해야

프레시안 : 오는 9일에는 한일중 정상회담이 일본에서 열린다. 일본이 이 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냐는 예측이 나온다.

남기정 : 아무래도 일본이 좀 안달이 나 있긴 하다. 자기들도 플레이어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서도 일본에게 어느 정도 역할을 주고 관여하게 하는 게 좋다. 이번에 한일중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을 좀 더 적극적으로 끌어당겨야 한다. 일본 국민들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기 때문에 국민을 상대로 한 메시지 발표도 필요해 보인다.

▲ 지난 1일(현지 시각) 아베 총리는 요르단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과 국교 정상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또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 일본의 참여를 유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신경제지도 구상을 보면 철도와 도로 연결 등의 내용이 있는데 자금 충당 부분에서 일본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현재 일본의 경제계가 처하고 있는 곤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선 뒤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베 노믹스'가 생각하고 있는 성장전략이 먹혀 들기 위해서는 미국이 함께하는 TPP가 됐어야 했지만 이는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일본은 미국이 빠진 채로 일단 TPP를 출범시킨 뒤, 미국의 입장을 배려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나중에라도 참여하게끔 유도하려고 했다. 아베 총리 주위의 경제 '가정교사'들은 미국이 빠진 상황에서 일본이 트럼프를 끌고 와야 한다고 주문했고, 실제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개인 교사'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게 깨져버린 셈이다.

실제 미국을 제외한 TPP 11개국이 칠레에서 협정에 서명을 하고 있던 날, 백악관에서 정의용 실장은 북미 정상회담 소식을 발표했다. 완전히 달라진 판도에 일본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여기에 철강 관세까지 날아오면서 일본에는 충격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경제계는 중국이 구상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带一路, One Belt One Road)에 올라타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또 한반도에서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시작되면 여기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북일 관계가 개선돼서 일본의 자본이 북한에 직접 들어가는 것도 염두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1일 <닛케이신문>의 여론조사에서 북일 정상회담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5%는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일본 내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셈이다.

이와 함께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도 일본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물론 교섭용이기도 하겠지만 북핵 문제 해결에 리비아 방식을 이야기하는데 북한은 이를 받을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이 역할을 할 수 있다. 리비아 방식을 보완하려면 경제지원이 필요한데, 북일 국교 정상화를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에서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보장)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일본이 평화 프로세스에서의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경제적 이익도 보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된다면 북한의 비핵화도 불가역적인 과정으로 갈 수 있다. 'CVID + CVIG' 가 CVIP(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Peace‧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평화)를 이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역할을 일본에게 부여하고 거기에 일본이 관여함으로써 일본이 여기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한일중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바라는 최상의 결과는 무엇일까?

남기정 : 우선 비핵화와 관련한 판문점 선언 내용을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판문점 선언이 부족한 거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지만, 북한 비핵화의 추가적인 조치에 대한 확인이나 합의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뤄질 것이고, 거기서 나오는 결과를 동아시아 수준에서 한일중이 수용하고 안정화시킬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놓자는 정도의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일본과 중국이 소외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중국의 경우 북한과 미국이 갈등을 보일 때 둘 사이를 완충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과 같이 북미 양측이 직접 대화를 한다고 하면 존재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선 소외되는 중국을 우리가 어떻게 끌어들일지가 하나의 과제가 될 것 같다.

또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2020년에는 도쿄에서 하계올림픽이, 2022년에는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의 경우 2022년 항저우, 2026년 나고야에서 열리는데 그 다음 2030년 아시안게임을 평양에서 개최하는 것을 추진해보면 어떨까 싶다.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한일중 3국이 평양 아시안게임 개최를 위해 노력해보는 것도 불가역적인 평화를 위해 좋은 전례가 될 수 있다.

▲ 남기정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동북아, 공동 안보 체제로 나아가야

프레시안 : 남북미 3국이 종전선언을 하고 북미 수교 및 북일 수교가 된다면 일본 입장에서 주일 미군은 어떻게 처리될까?

남기정 : 주일미군은 일본한테 양면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안보에서 굉장히 중요하지만 미일 동맹에 얽매여 있는 부분도 있다. 일본도 새로운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만약 이런 시스템 도입을 안해도 된다고 하면 일본도 편할 것이다. 그런 무기 도입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득도 있을 것이다.

물론 미일 동맹이 약화되면 일본은 안보 위협을 느낄 수 있다. 결국 동북아의 안보 위협을 낮추기 위해서는 6자회담을 통해 공동 안보 체제를 정립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일본의 자위대가 일정 부분의 역할을 맡게 해줘야 한다. 자위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줄어들면 공동 안보 체제의 성립 자체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위대의 역할 조정은 헌법 개정을 하지 않더라도 가능하다. 문제는 신뢰인데, 한일 간에 안보 협력을 조금씩 높여서 우선 해외 부대 간 협력을 추진하고 이런 곳에서부터 신뢰를 쌓아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서 동아시아의 비핵지대화까지 가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여기에 몽골과 일본도 함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일본 내에서도 비핵지대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나?

남기정 : 적어도 지자체 단위에서는 굉장히 의식이 높다. 비핵 지방자치제 선언도 있다. 그런데 중앙 정부 차원에서는 큰 관심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한반도가 이렇게 나간다면 분위기는 바뀔 수 있다. 또 여기에 일본을 끌어 오면 일본이 싫다는 말도 못할 것이다. 비핵지대화 문제는 한일 간의 중요한 의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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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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