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는 핵보다 강하다

[장석준 칼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선언의 의미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의 결실로 발표된 '판문점 선언'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가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구체적인 이행 조치가 없다는 볼멘소리도 있지만, 이번 회담은 북미정상회담 등등으로 이어질 긴 드라마의 제1막 제1장일 따름이다. 지금 할 일은, <조선일보>의 표현을 활용해본다면, 운을 제대로 떼는 것이다.

일단 남북 두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를 책임지겠다고 한 것만으로도 커다란 성과다. 지금 지구상 어디에도 핵무장 철폐를 당면 과제로 약속하는 나라가, 정부가 없다. 냉전 시대에는 그나마 핵무기가 정치와 윤리의 끊임없는 긴장을 촉발하는 소재라도 됐다. 그러나 정작 냉전이 끝난 지금은 그런 긴장마저 사라졌다. 핵무기는 사라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지난주에 한반도의 두 국가는 핵무장 철폐를 급박한 의제로 올렸다. 이제 막 핵무기를 갖게 된 나라가 비핵화의 논의와 실천에 발을 들여놓았다. 예사로운 결정이 아니다. 또한 결코 예사롭게 만들어서도 안 될 결정이다. 지구 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게 전쟁의 질서가 일상화돼온 이 땅에서 그만큼 유례를 찾기 힘든, 예기치 않은 가능성이 열리는 느낌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것은 한반도 위기의 입구이자 동시에 출구가 되고 있는 이 핵무기라는 존재다. 그것이 있고 없는 삶의 의미다. 그것이 있고 없는 문명의 의미다. 이 의미를 확인하다 보면, 며칠 전 우리가 들어선 새로운 역사 국면의 무게도 달리 느껴질 것 같다.

핵무기가 등장하기까지, 총력전의 두 얼굴

다들 알고 있듯이 핵무기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처음 등장했다. 원자폭탄을 완성해 실제 투하한 나라는 미국이지만, 비슷한 연구는 적국 독일에서도 있었다. 그 경쟁담을 들어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마치 핵무기라는 최종 결실에 도달하려는 강대국 간의 치열한 경주였던 느낌마저 든다.

왜 하필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핵무기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여기에는 물리학 발전 속도라는 요인 말고도 정치와 전쟁 자체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국가와 전쟁의 뗄 수 없는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점점 더 전진하는 민주주의의 문제가 있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탈리아를 통일할 사명을 지닌 '군주'가 반드시 갖춰야 할 기반을 제시했다. 그것은 "자국의 신민 또는 시민, 아니면 자신의 부하들로 구성된 군대"였다. 용병이 아니라 시민 군대가 있어야 했다. 이 주장을 번안하면, 근대 국민국가와 무장한 인민 사이의 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서로 다투는 국가들로 이뤄진 세상에서 주권국가로 서려면 전쟁에 나갈 태세가 된 국민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근대 유럽사는 이 명제를 철저히 입증했다. 열강 대열에 합류한 유럽 국가들은 (해군력으로 대신한 영국만 빼고) 모두 징병제에 바탕을 둔 무력 없이 그런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는 능력이 국가 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 중 하나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이 진실은 모든 나라에 심각한 정치적 긴장을 불러왔다. 징집될 의무를 강요받은 국민은 당연히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권리도 요구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만 병역이 시민권과 연동된 게 아니었다. 근대사에서도 둘 사이에는 아주 강한 연관 관계가 작동했다. 이것이 전면에 노출된 전쟁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흔히 제1차 세계대전을 현대전의 시작이자 총력전의 첫 사례로 든다. 이제는 징집 가능 연령의 남성만 전쟁에 동원되지 않았다. 여성을 포함한 전 인구가 국가의 전쟁 수행에 동원됐다. 동시에 민간인이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면화하게 되는 민간인 학살과 공중 폭격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런 총력전 속에서 참정권 요구는 절정에 달했다. 사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여러 나라에서는 노동자와 여성의 선거권 쟁취 운동이 폭발 일보직전까지 끓어오르고 있었다. 세계전쟁은 이 폭발을 몇 년 뒤로 미뤘지만(러시아에서는 정말 '몇 년 뒤'였다), 다른 한편 총력전의 논리를 통해 노동자와 여성의 참정권 인정을 기정사실로 만들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끝나고 유럽 국가들이 일제히 보통선거제도를 도입한 것은 러시아 10월 혁명 탓이기도 했지만 전쟁 자체의 결과이기도 했다.

우리는 도덕적 가치평가를 배제하고 이러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총력전은 민주주의의 돌이킬 수 없는 전진을 낳았다. 그리고 불과 20년 뒤에 다시 일어난 세계전쟁에서는 이 명제가 더욱더 충격적인 모습으로 위력을 발휘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총력전은 무엇보다 총력 '희생'으로 나타났다. 전투 요원보다 더 많은 민간인이 학살, 폭격, 기아, 강제노동으로 쓰러졌다. 핵무기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희생의 규모 면에서 인류사는 새 단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영국 공군의 드레스덴 폭격은 원자폭탄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데 제2차 세계대전이 총력전의 극단으로까지 치달으면서 보인 또 다른 모습이 있었다. 그것은 총력'무장'이었다. 이번에는 국가의 지휘 아래 민간인이 전쟁 지원 활동에 체계적으로 동원된 수준 이상이었다. 국가기구가 붕괴하지 않은 몇 나라를 제외하면 전선이 가로지른 모든 나라에서 상당수 민간인이 직접 무장했다. 위기에 빠진 기존 국가나 주변 열강은 잠시나마 이런 자발적 무장을 용인했다.

그래서 소련,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등의 독일군 점령지에서 빨치산이 봉기했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도 친독일 지배자들과 반파시스트 시민들 사이에 내전 양상이 나타났다. 물론 가장 극적인 무대는 일본군 점령 지역 곳곳에 농촌 해방구가 점점이 박힌 광활한 중국 대륙이었다.

이런 총력무장의 결과는 전쟁이 끝나고 등장한 세력균형에서 충격적으로 드러났다.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지구 전체를 보면 세력균형의 추가 역사상 가장 왼쪽으로 기울었다. 모든 정부(심지어는 승전국조차)는 기대치가 한껏 높아지고 자신감에 충만한 대중을 상대해야 했다. 총력무장은 국민국가를 대중 민주주의의 급진전이라는 위험(지배자들이 보기에는)에 빠뜨렸다.

인류 역사의 바로 이 순간에 핵무기가 출현했다. 지구자본주의의 새로운 패권국 미국이 총력전과 민주주의의 딜레마에 내놓은 대안이 다름 아닌 원자폭탄이었다.

핵무기에 응집된 근대 국가의 욕망

위에서 살펴봤듯이 핵무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국가 간 무장 경쟁이 의도하지 않게 대중의 능력을 고양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이어졌다. 현대전이 총력전으로 치달으면서 이 연관관계는 더 폭발적인 양상을 띠었다.

핵무기는 이 연관관계를 종식시켰다. 핵무기의 파괴력이야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파괴력은 대중의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는 현대 물리학을 통해 변환된 자연의 힘이다. 국가는 과학기술과 약간의 경제력만 동원하면 된다. 국민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총력전이 종식된 것은 아니다. 총력전의 두 얼굴 중 총력희생은 계속된다. 아니, 핵무기 때문에 희생은 거의 무한의 수준으로 커졌다. 광범한 지역의 인구 전체가 말살될 뿐만 아니라 자연까지 파괴되고 인간과 자연의 미래 회복 가능성까지 짓밟힌다. 그러나 총력전의 또 다른 얼굴은 이야기가 다르다. 총력무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위력을 발휘할 수도 없다.

즉, 핵무기는 총력전이 대중의 능력 고양으로 이어지던 연결고리를 분쇄했다. 핵무기 앞에서 대중은 능력을 고양하기는커녕 완전히 무능력하다. 대중은 이제 대량살상의 잠재적 희생 대상자일 뿐이다. 핵무기 앞에서는 나치 친위대나 일본군에게 했던 것과 같은 저항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핵무기 등장과 함께 만인은 잠재적으로 가스실 앞에 선 강제수용소 수인 신세가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핵무기의 위력에 현혹돼선 안 된다. 핵무기는 주연이 아니다. 주인공은 근대 국가다. 핵무기 이전에 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근대 국가의 욕망이 있었다. 대중의 능력과 상관없이 무력을 행사하고픈 국가의 욕망. 마키아벨리가 예고한 근대 국가의 숙명으로부터 벗어나 대중으로부터 자립하려는 욕망. 이 욕망은 핵무기 출현 전에 이미 무차별 공습 등에서 해법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핵무기 말고도 살상용 로봇 등에서 또 다른 해법을 찾는다.

다만 핵무기의 등장은 지구상 모든 국가를 이 욕망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로 나눴다는 점에서 결정적이었다. 전자의 핵심은 물론 핵무기 시대를 연 그 나라, 미국이다. 러시아, 중국 등이 뒤를 따르지만, 미국에 비하면 어디까지나 비대칭적 수준의 핵무장이다. 자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한 나머지 모든 나라는 이 중 어느 한 우산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우산 안의 국가 간 위계질서를 받아들여야 한다.

냉엄한 진실이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의 전방 한계선이 핵무기 등장으로 눈에 띄게 후퇴했다고 할 수는 없다. 일국 수준에서는 그렇다. 국내 정치에서 국가는 여전히 여러 사회 세력의 투쟁에 흔들린다. 그런 투쟁으로부터 자립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 정치, 즉 국가 간 정치에서는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핵무기가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어느 국가든 최대 핵무장 국가(미국)의 위계질서 안에 포용되든가 아니면 이에 대항할만한 핵전력을 보유해야 한다. 둘 다 아니라면 그 국가의 지속 가능성은 보장받을 수 없다. 이 국가 안의 대중 정치는 자율성을 지닐 수 없다. 즉, 인민주권은 핵주권에 의해 최종 규율된다. 이에 따라 대중의 능력과 괴리된 무력을 사실상 독점한 한 국가가 아래로부터의 위협을 역사상 가장 효과적으로 차단한 지배 질서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이 모순 그 자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 정권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이 주도하는 이러한 국제 질서에 맞선 어쩌면 가장 논리적인 대응이었다. 이 점에서 핵무기의 존재 자체를 비판하지 않고 북핵을 비난할 수는 없다는 언명에서 오류를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일면 논리적인 북한의 이 선택 때문에 동아시아 전역에 근대 국가의 가장 반민주적-반인간적 욕망이 풀어헤쳐질 판이었다. 역내 모든 국가가 대중으로부터 자립한 대량 살상 전력을 확보하려고 경쟁하는 상황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촛불 항쟁으로 다시 힘을 받은 남한의 국내 민주주의 역시 이러한 한반도 위기 아래서 몇 개월간 좀처럼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가 국내 변혁의 절대적 한계임이 다시 한 번 증명되는 듯했다.

'판문점 선언'은 바로 이 상황의 반전을 선포했다. 애초에 핵무기를 보유하려 한 북한 정권의 노림수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단정할 수 없지만, 어쨌든 가장 최근에 핵무기 개발을 한 국가가 그 해체 과정을 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한반도를 떠나 지구 전체를 보더라도 전무후무한 국면의 시작임에 틀림없다.

근대 국가의 진화 방향에 영향을 끼칠 실험의 시작?

올해로 정부 수립 7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민주주의를 확장하려는 대중의 처절한 고투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덕분에 처음에는 거의 파시즘 수준이었던 국가를 무혈혁명이 가능한 수준으로까지 길들였다. 이 나라 시민들은 대중 정치를 통해 국가를 변형하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근대 국가는 시민사회로부터, '아래로부터'만 규정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보다 더 근본적이게 국가 간 질서로부터, '위로부터' 규정된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은 숱한 땀과 눈물, 피를 흩뿌리며 민주주의를 한 뼘 더 늘리려 할 때마다 이 근본적 사실을 숨 막히는 '한계'로 실감했다. 두 전쟁국가의 대치라는 한반도 현실이 남한 민주주의의 전방 한계선을 결정했다.

한데 지금 이 70년간의 숙명과는 다른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아니, 정반대되는 일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국가 간 정치가 촛불 민주주의에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단지 남한 내 대중 정치를 통해 국가를 민주화할 뿐만 아니라 국가 간 정치를 통해 국가를 (대중으로부터 자립하는 게 아니라) 대중에게 보다 호응하도록 변형시킬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비핵화와 평화협정, 단계적 군축이 바로 이런 일이다. 이는 오랜 전쟁국가 구조를 다른 어떤 국가로 탈바꿈시키는 일이다.

인류 역사에서 이런 일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종전 직후 패전국에게 일방적 징벌을 가하는 식으로 전쟁국가를 해체한 일은 여러 번 있었어도 순전히 협상이라는 평화적 과정을 통해 상호 대치 중이던 두 국가의 성격을 계획적으로 바꾸는 일은 전무후무하다. 무리한 통화통합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유럽 통합 과정을 제외하면 국가 간 정치에서 전에 없던 실험이 이 땅에서 시작됐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이 실험이 핵무장이 야기한 첨예한 위기를 반전시키는 비핵화 결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우리 스스로 주목해야 한다. '판문점 선언'으로 시작된 평화와 통합(일부러 '통일'이라 하지 않았다)의 실험이 미국을 비롯한 모든 주변 국가로부터 자율성을 보장받는다면, 이는 무엇보다 핵무장의 단계적 철폐 결정의 도덕적 이니셔티브 때문일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핵주권을 바탕에 둔 현존 지구 질서를 향한 문제제기이자 살아 있는 반대 사례가 될 것이다. 핵무장이나 핵우산과 상관없이 존립하는 현대 국가의 실례가 될 것이고('영세중립국'은 이런 가능성의 지나치게 고색창연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이런 국가들로 이뤄진 지구 질서에 공감하는 수많은 나라들의 연대의 출발이 될 것이다.

이 점에서 지금 우리가 시작한 것은 한반도 평화의 정치만이 아니다. 한반도'발' 평화의 정치다. 그 정도로, 비핵화는 핵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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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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