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은 정말 '천안함 폭침 주역'인가?

북한은 왜 '천안함 논란' 김영철 카드를 꺼냈나?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할 대표단 단장으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겸 중앙위 부위원장을 지목해 22일 우리 측에 통보했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을 일으킨 핵심인물로 지목된 인사다. 천안함 침몰을 둘러싸고 북한 소행설과 그의 연루설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 주도 조사단과 보수언론이 그렇게 규정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보수 정부가 주도한 조사 결과와 달리 과학적으로는 천안함 침몰 원인이 입증되지 않았다. 2010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천안함 침몰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을 규탄한다"고 하면서도 북한이 천안함 침몰에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린 한국 정부 주도의 조사 결과를 인용하지는 않았다. 북한 폭침설의 근거가 된 북한 잠수정이나 '1번 어뢰'에 대한 언급도 당연히 없었다. 국제사회의 시각에서 보면 천안함 침몰은 '미제 사건'이라는 얘기다.

다만 지난 2015년 3월 25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문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 5주년을 맞아 "북한의 잠수정이 감쪽같이 들어와서 천안함을 타격한 후에 북한으로 복귀했다"고 밝히면서 '북한 소행설'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는 이뤄졌다. 현재 청와대와 정부가 북한에 의한 폭침론은 인정하면서 '김영철 주도설'에만 선을 긋는 이유다.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이날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천안함 도발 당시 국방부가 구체적인 사람에 대한 책임소재에 대해 구체적인 확인을 하기 어렵다고 답변한 바 있다"며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난 이후 국회에서 많은 토론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당시 국방부가 밝힌 내용을 확인했다"고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천안함 사건 뒤 조사를 했을 때 주역이 누구였는지 조사 결과 발표에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로선 부담스러운 인사의 방한이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2010년 8월 오바마 행정부 당시 핵무기 개발 자금 차단을 위한 대북제재 행정명령에 의해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부위원장이 미국의 독자 제재 대상이고 대한민국의 제재 대상이기는 하다"면서도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폐막식 참가를 대승적 차원에서 받아들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도 "평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있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을 준수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며 "이에 따라 이번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 방남도 이런 틀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미국 등과 긴밀히 협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곧바로 공격적인 논평을 냈다. 전희경 대변인은 "문재인 정권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인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맞이하겠다고 나섰다"고 반발했다.

그는 "북한이 감히 김영철을 폐막식에 고위급대표단 단장으로 파견하겠다는 후안무치한 발상을 하게 한 것은 그동안 북한 해바라기에, 굴종과 굴욕을 밥 먹듯이 해온 문재인 정권이 불러들인 희대의 수치"라고도 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김 부위원장 방남과 관련해 이날 오후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김 부위원장을 "철천지 원수", "말을 섞지 못할 불구대천의 상대"라고 규정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를 향해 "이 정권은 정말 친북 주사파 정권이거나 아무런 생각이 없는 무뇌아 정권"이라고 비난하며 "문재인 정권의 작태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처럼 남남갈등이 훤히 예상되는 김 부위원장을 대표단장으로 선택한 북한의 의도는 매우 전략적이다. 일차적으로는 그의 남북대화 경험이다. 김 부위원장은 1990~1992년 열린 제1~8차 남북 고위급회담 북측 대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의전경호 실무자접촉 수석대표, 2006년 제3~7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대표, 2007년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 북측 대표 등을 맡은 바 있다.

또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통해 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한 데 이어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진정성을 타진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보인다.

보수진영의 반발을 무릅쓰고 우리 정부가 김 부위원장 일행의 방남을 수용키로 한 배경도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남북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이어나가려는 고심으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가 먼저 북한에 대승적 차원의 진정성을 보임으로써 향후 북미 대화 중재를 위한 지렛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부위원장과 만남이 예상되는 조명균 장관은 "많이 남지 않은 시간 속에 북미 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남북 관계를 통해 북미 대화를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북한에서 남북대화를 총괄하는 김영철 같은 사람과 마주앉아 얘기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계기"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부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도 만날 가능성이 높다"며 별도의 회동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다만 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계기로 북미 접촉이 급진전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김 부위원장 일행은 25일 평창올림픽 폐막식에서 미국 대표단을 이끄는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과 조우할 것으로 보이지만, 청와대는 동선이 겹칠 뿐이라는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이방카 고문과) 만날 기회가 없다"며 북미 접촉을 위한 중재 노력에 대해서도 "이번엔 그런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부부장의 고위급 접촉 자리를 마련했던 것과 같은 물밑 중재는 없을 것이란 의미다.

하지만 이방카 고문(23일~26일)과 김 부위원장(25일~27일)의 방남 기간이 겹치는 만큼, 폐막식을 전후해 우리 정부가 양측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있다. 올림픽이라는 유연한 외교 공간에 모인 북미 고위급 인사들을 직접 상대하며 북미 대화를 촉진시킬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조명균 장관은 "우리 정부로서는 북미간 대화가 시작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전망은 이르다"고 했다.

조 장관은 그러나 "통일부가 상대하는 북한측 대표단에게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북미 대화를 시작하는 게 필요하다고 개막식 고위급 대표단에게 여러차례 밝혔다"며 "이번에도 같은 입장에서 북측에 전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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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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