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 하루 전에도 정체성 갈피 못 잡은 바른미래당

정강정책에 '보수·진보' 표현 빠질 듯

통합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신당 '바른미래당'이 막판까지 정강정책 및 지도체제 정리 문제로 분주한 모양새다. 특히 정강정책을 놓고는 한때 "이런 식이면 결렬될지도 모른다"(지상욱 바른정당 정책위의장)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의견차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양당 지도부가 일제히 봉합에 나서면서 통합 전당대회에는 차질이 없을 전망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는 12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양당 연석 의원총회를 열고 의원들 간 상견례를 겸해 통합 관련 논의를 주고받았다. 의총 후 유 대표는 "합의를 해 봐야 되겠지만 아마 '보수, 진보' 이런 표현을 빼는 것으로 합의되지 않을까 싶다"며 "중도·보수·진보, 다 빠질 것 같다"고 했다. 안 대표는 구체적인 답은 내놓지 않았으나 역시 "서로 간에 차이점이 있으면 그것을 이해하고 좁히려는 노력을 하자는 얘기를 했다"며 "많은 분들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 만큼,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고 본다"고 낙관론을 폈다.

이날 앞부분만 공개로 진행된 의원총회 발언에서도 양당 지도부는 '양보', '역지사지' 등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안 대표는 "같은 방향을 보고 만났지만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양보하지 않으면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단단해진다"고 했고, 유 대표도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지만 그동안 우여곡절이나 어려움이 많았다"며 "모진 풍파에 시달린 곡식이나 과실이 작지만 맛은 더 있다"고 했다. 양당 원내대표도 "작은 차이는 뛰어넘자"(김동철), "불필요한 작은 갈등은 극복할 수 있다"(오신환)라고 입을 모았다.

양당 지도부가 이처럼 진화 작업에 앞장서서 팔을 걷어부친 이유는, 유 대표의 표현대로라면 "아침에 지상욱 정책위의장이 사고를 쳐서" 또 한 번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 의장은 이날 오전 바른정당 지도부 회의에서 "정강정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양당의 가치를 실현하는 부분은 지금까지 합의되지 않고 있다"며 "지난달 18일 유승민·안철수 두 대표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건전한 개혁보수와 합리적 중도가 합쳐(…)'라고 합당 이유와 정치적 가치를 선언했으나 국민의당은 이 합의를 따르지 않고 상황이 변했다는 이유로 정강정책에 '중도' 대신 '진보'로 수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공개 비난했다. 지 의장은 "(때문에) 사실상 합의가 중단된 상태"라며 "이런 식으로 가면 결렬될지도 모르겠다"고까지 했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서로 의견 차이가 없는 게 비정상이다. 합의되는 공통분모 부분만 발표하면 될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지 의장의 협상 상대(카운터파트) 격인 채이배 국민의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10여 일간 정강정책과 당헌당규를 마련하려고 했으나 이 시간까지 마무리를 못 했다"며 "매우 송구스럽고, 두 당이 싸우는 모습으로 언론에 비친 것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다. 통합전당대회까지 남은 시간 동안 훌륭하신 선배님들이 마무리해 주시기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채 수석부의장은 "저 개인적으로는 평생 시민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진보의 가치', '합리적 진보'라는 단어와 '대북포용정책', '햇볕정책'이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으나, 두 당의 통합을 위해 일정 부분 서로 양보하고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노력했다. 그러나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유승민·박주선 유력…安·劉, 남북회담 제의 비판도


양당 지도부는 정강정책 관련 논의를 마무리하는 작업 외에도 통합신당 공동대표 등 지도체제 문제를 놓고 이날 오후 4시 15분부터 재차 회의를 열었다. 유 대표는 자신이 바른정당 몫의 공동대표를 맡겠다고 이날 선언했다. 그는 이날 오전 바른정당 지도부 회의에서 "공동대표를 맡아서 지방선거를 책임지고 치르겠다"며 "대표직을 맡지 않는 게 저 개인적으로는 쉽고 홀가분한 선택이지만, 통합의 책임, 통합개혁신당의 성공을 책임져야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도망치지 않겠다. 지방선거가 쉽지않은 선거임을 잘 알지만 독배를 마시겠다"고 했다. 그는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지방선거 직후 공동대표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덧붙였다.

안 대표는 반면 기자 간담회에서 "통합을 완성시키는 것까지가 대표로서의 제 역할"이라며 "내일부터는 대표가 아니지만 지위에 관계없이 신당의 성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고 했다. 안 대표는 지방선거 출마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 바 없다"면서도 "통합이 마무리되고 새 지도부가 출범하고 나면 고민해 보겠다"고 열린 답변을 했다.

양당 지도부는 신당 공동대표 인선을 공식 발표하는 시점은 다음날인 13일 통합 전당대회(수임기구 합동회의)에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바른 양당은 각자 1명씩 공동대표를 추천하고, 상대 당의 추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유 대표는 이날 스스로 공동대표를 맡겠다고 밝혔고, 국민의당 몫 공동대표에는 박주선 국회부의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한편 안·유 두 대표는 이날 각각 대북정책을 두고 문재인 정부를 직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 '보수' 색채를 강조했다. 안 대표는 "지금 제일 중요한 문제가 북핵이다. 북핵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에 대한민국 명운이 달렸다"며 "남북정상회담이 회담을 위한 회담이 돼선 안 된다. 회담 자체가 목표일 수 없고, 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 수단이 될 때 유효한 것임을 정부가 명심해 달라"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사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유 대표 역시 "강력한 대북제재와 압박을 지속적으로 가하면서 김정은이 대화 테이블로 나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유일한 평화적 해법"이라며 "제재와 압박은 이제 갓 시작되었다. (그런데) 김정은은 이 제재와 압박을 무너뜨리고, 남남갈등을 유발하고 한미동맹을 무너뜨리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고 주장했다. 유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의 특사 김여정을 네 차례나 만나 긴 시간 대화를 하면서 북핵 얘기는 한 마디도 못 꺼냈다. 북핵 문제를 해결 못하고, 제재와 압박을 무너뜨리고, 한미동맹을 무너뜨리는 남북정상회담을 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게 우리 국가 안보에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안 대표는 호남 민심을 놓고 민주평화당에 대한 비난도 이어갔다. 그는 "저희가 유일하게 (캐스팅보트) 결정권을 가진 당이 될 것"이라며 "민평당은 '민주당 2중대'를 자처했으니 항상 그쪽 편을 들 것"이라고 했다. "호남에서도 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호남을 고립시키는 민평당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자신의 비서실장 출신인 손금주 의원에 이어 전날 이용호 전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이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남겠다고 한 데 대해 "저희가 노력하고 민심의 신뢰를 되찾으면 그 분들도 편한 마음으로 저희와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용호 의원은 11일 낸 입장문에서 "국민의당을 탈당하기로 결정했다"며 "잠시 어느 길도 선택하지 않고 자숙과 자성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고 했었다.

같은날 민평당에서는 광주 방문 일정을 잡으며 맞불을 지폈다. 민평당은 6.13 지방선거에서 호남 광역단체장 3곳(광주·전남·전북) 중 "최소 1곳에서 당선자를 내겠다"는 승리 기준까지 발표했다. 김경진 민평당 상임선대위원장은 광역단체장 1석과 지방의회 기초의원 절반 이상을 당선시키는 게 목표라면서, 더불어민주당과의 선거연대에 대해서는 "중앙정치에서는 협치나 정책연대도 가능하지만 호남 선거에서는 철저한 경쟁에서 승리를 이끌겠다"고 선을 그었다. 민평당 지도부에서도 안 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고 하는 등(최경환 광주시당위원장) 날선 반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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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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