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선 비트코인... 폰지사기인가 소확행인가

[삶은경제] '혁명 열차'는 엉뚱한 곳에 도착할 수도 있다.

정부가 오는 30일부터 실명이 확인된 사람에게만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를 허용해주는 거래실명제에 나서기로 했다. 만시지탄이나 당연한 조치다.

지난 칼럼에서도 지적했듯 한 달 전까지 대한민국은 확고한 암호화폐 무규범 국가이면서 동시에 국제 시장의 큰손이라는 다분히 문제적인 위상을 확보하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적인가? 거래 실명제 등 최소한의 규제도 없는 나라의 화폐로 결제되는 비트코인의 비중이 한 때 세계시장의 20%를 넘었다는 것, 정부가 강력한 규제를 선언한 지금도 엔과 달러에 이어 10%를 유지한다는 현실(실시간데이터는 다음을 참고)은 실물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재앙에 가까운 사태다.

금융당국 늑장 대응, 책임소재 가려야

당장 지난해 5월 자국 내 거래소 폐쇄 조치 이후 현금화가 막힌 '채굴대국' 중국의 코인들이 무법천지였던 우리나라 가상화폐 거래소들을 이용했으리란 우려가 크다. 이 문제는 지난해 8월 이후 국내 암호화폐 시장에 형성된 투기광풍과 '김치 프리미엄(한국 가상화폐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게 형성된 현상)'의 배후에 암호화폐거래소를 무대로 버블을 키우며 코인 떠넘기기에 나선 중국인들의 활약(?)이 있었다는 의혹까지 낳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가경제 측면에서 우리 정부는 암호화폐를 매개로 진행된 환치기와 국부유출을 막지 못한 것이며, 뒤늦게 암호화폐 투자에 나선 사람들 역시 폭탄돌리기의 피해자가 됐다는 얘기다. 관련한 시그널이 금융시장에서 포착됐는지, 당국의 조치는 무엇이었는지 등 정부와 금융당국의 늑장 규제 이슈와 책임소재 규명은 그래서 중요하다. 현재 암호화폐거래소들에 대해 정부당국이 진행 중인 조사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투자자들은 정부 탓하지 마라'는 식으로 정부책임을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기 VS 기술혁명... 암호화폐 거래, 어떻게 볼 것인가?

이상이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에 대한 평가라면, 남은 문제는 턱없이 커져버린 국내 암호화폐 시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즉 암호화폐거래소의 합법화 문제다. 이 문제의 핵심 쟁점은 지난주 7%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JTBC 긴급토론 '가상통화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 편에서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의 논쟁을 통해 드러났다.

블록체인기술이 중개 기관 없이도 당사자 간에 신뢰 가능한 직접 거래를 실현하는 혁명적 기술이라는 평가에 이견은 없다. 쟁점은 블록체인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핵심기술인 P2P네트워크, 암호화, 분산장부, 분산합의, 스마트 콘트랙트 가운데 분산합의를 구현하는 알고리즘인 암호화폐(비트코인 등 특정 블록체인서비스에서 적합한 거례나 정보만이 유지되도록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사용된다)가 블록체인 시스템 밖의 시장에서 매매되도록 놔 둘 것이냐는 문제다.

유시민 작가를 비롯해 암호화폐거래소 폐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암호화폐'라고 부르는 이 알고리즘이 현실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음에 주목한다. 어떤 알고리즘이 특정 블록체인 서비스 내에서 분산합의 과정을 구현한다고 해서 이것을 '코인'이라 부르며 재화로 취급해야할 이유는 없다. 17세기 튤립버블 당시에는 튤립뿌리라도 거래됐다는 말이 이 주장의 핵심이다. 현실에서는 아무런 쓰임이 없는 데이터 값에 '코인'이니, '화폐'니 하는 억지이름을 붙여 사고 파는 행위 자체가 사기다. 특별히 이런 행태는 신규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전부인 '폰지 사기'와 흡사하다.

반면, 정재승 교수 등 이 주장의 반대편에서는 암호화폐기술이 블록체인서비스 밖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재화로 거래되어야 이렇게 형성된 금융과 자본으로 블록체인 서비스산업이 발전하며 사회에 기여한다는 논리다. 기술혁명 과정에서 발생하는 버블은 필연이며 이를 적당히 통제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김동연 부총리의 최근 발언 등을 보면 정부의 정책방향도 후자의 입장에 선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의 갈림길, 폰지 사기와 소확행

사실, JTBC 긴급토론이 방영되기 하루 앞서, (낮은 청취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꾸준히 다뤄 온 팟캐스트 <삶은경제>가 정부 규제를 주제로 나름 치열한 끝장토론을 진행했다. 세 명의 출연자 중 진행자를 제외한 두 출연자가 거래허용과 금지로 팽팽히 맞섰다는 점은 마찬가지. 그러나, 현장의 금융노동자들이 벌인 이번 암호화폐 규제 토론에서 주목할 점은 이 토론이 JTBC의 경우와 달리 블록체인이 갖는 사회변혁의 가능성에 대한 평가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삶은경제>는 2008년 나카모토 사토시 논문이 세계 금융 위기로 기존 금융통화시스템에 대한 반성이 최절정에 달한 시점에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암호화폐를 폰지 사기로 규정한 출연자 중 한 노동자는 비트코인과 수많은 알트코인이 결국 권력의 통제와 분산이라는 역사의 방향을 역행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전체 거래자의 4%가 약 97%의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독점구조에서 우리는 블록체인의 이상을 볼 것이 아니라, 더 지독한 신자유주의를 확인해야한다고 지적한다.

반대편에는 언젠가 암호화폐가 법정화폐의 오랜 피로와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이 되리라는 노동자가 있다. 암호화폐는 이미 핵심기술인 스마트컨트랙트(중계기관 없이 당사자 간에 자동화된 직접거래를 가능케 하는 기술)와 결합해 인간을 무한한 탐욕으로 이끄는 구체제의 화폐가 아니라 소확행(小確幸), 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살 수 있는 새로운 수단으로 우리 앞에 서있다고 본 것이다.

이 논쟁에서 우리가 어떤 입장에 서 있든, 분명한 것은 인류가 발견한 기술 중 가장 혁명적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블록체인 기술혁명이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이다. 소확행을 꿈꾸며 시작한 혁명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폰지 사기라는 엉뚱한 곳에 도착할 수도 있는 갈림길.

*사무금융노조는 시민의 삶, 그 자체가 경제라는 철학으로 팟캐스트 형식의 오디오 경제 콘텐츠를 제작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본 칼럼에서 다루는 내용은 사무금융노조의 팟캐스트 '삶은경제'에서 더 풍부한 내용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삶은경제는 네이버 오디오클립과 팟빵에서 모두 검색 가능합니다. (☞팟캐스트 삶은경제 바로 듣기)

▲ 암호화폐는 어느 길로 갈 것인가.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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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현

풀뿌리신문 기자로 출발했지만 정의당에서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PD라는 명함을 얻었다. 짧은 국회보좌관 활동을 거친 뒤, 지금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일한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는 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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