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은 정말 개헌 의지가 있는 걸까?

유인태‧최태욱 "대통령 발의 개헌은 정쟁만 유발"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위한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개헌투표 동시 실시' 약속을 일방 파기했음에도 대통령 개헌안 발의 가능성까지 암시하며 적극적인 개헌 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놓치고 별도로 국민투표를 하려면 적어도 국민의 세금 1200억 원을 더 써야 한다"며 "국회의 합의를 기다리는 한편, 필요하다면 정부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국민개헌안을 준비하고 국회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과거에 비해 보다 구체화된 개헌 구상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개헌의 "개헌은 실제로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여야 정치권의 "최소분모 찾기"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소분모 속에 지방분권 개헌은 너무 당연하고, 국민 기본권도 너무 당연한 일"이라며 "(권력구조 문제에 대해선) 하나로 합의를 이뤄낼 수 없다면 그 부분에 대한 개헌을 다음으로 미루는 방안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4년 중임 대통령제에 대한 개인적 선호를 밝히면서도 정치권 합의가 어려운 권력구조 문제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지방분권과 기본권 신장 등을 담은 개헌을 6월에 추진하자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만약 국회가 의지를 가지고 정부와 함께 협의한다면 최대한 넓은 개헌을 할 수 있지만, 정부와 국회가 합의되지 않고 정부가 발의하게 된다면 국민들이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고 국회 의결을 받을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좁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뒤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 개헌특위에서 개헌안 합의가 안 되면 정부가 개헌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취지"라며 "정부가 단독으로 개헌안을 만들더라도 대통령이 직접 발의권을 쓸지는 다음 문제"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국회의 개헌 논의가 공전할 경우, 6월 지방선거와 개헌 투표 일정을 일치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수단은 대통령이 발의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문 대통령이 개헌 발의권 행사 가능성을 크게 열어놨다는 해석이 다수다.

개헌은 문재인-홍준표 '핑퐁 게임'?

이처럼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꺼져가는 개헌 논의에 동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선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권력구조 문제가 빠진 개헌안을 대통령이 직접 발의할 경우, 개헌의 실현 가능성이 더욱 낮아지는 문제를 외면하기 어렵다.

홍준표 대표와 자유한국당은 이미 '지방선거 이후 연내 처리'를 주장하며 상반기 개헌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입장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대단히 낮다. 116석으로 개헌저지선을 확보한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 개헌은 불가능하다.

최근 개헌자문위원회의 개헌 보고서가 보수언론과 홍준표 대표의 색깔 공세에 휘말려 논란이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개헌자문위는 권력구조에 대한 단일안을 담지 않은 채 분권과 기본권 강화에 역점을 둔 개헌안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이 정부가 하는 개헌은 좌파 사회주의 체제로 근본 틀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홍준표 대표의 한마디에 53명의 각계 전문가들이 11개월 동안 만든 440쪽 분량의 개헌 보고서는 사실상 폐기처분됐다.

개헌보고서 논란에 불을 지폈던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대통령 권력 분산만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원집정부제 등 분권형 권력구조를 문 대통령이 수용하라는 사실상의 압박으로, 문 대통령이 제시한 개헌 방안과는 정반대다.

이렇게 볼 때, 다른 야당이 모두 개헌에 동의하고 문 대통령이 '국민 참여 개헌' 방식으로 한국당을 압박하더라도 '여론전' 이상의 현실적 의미를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 대통령이 개헌안을 직접 발의할 경우 한국당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이 "개헌은 실제로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시동을 건 현실론적 개헌 로드맵이 되레 개헌의 실현 가능성을 낮추는 역설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유인태 전 의원은 "대통령 발의를 야당과 협의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대통령이 발의한다면 정쟁만 유발할 가능성이 많다"고 경계했다.

다만 유 전 의원은 권력구조를 뺀 개헌 추진에 대해선 "권력구조가 빠지면 앙꼬 빠진 개헌이 되겠지만, 합의하기 용이한 것부터 우선 하는 수밖에 더 있나"라며 "대통령은 합의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개헌을 하자고 국회에 압박을 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달리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선 권력구조 문제를 포함하든 아니든 의미가 없다"고 평했다.

그는 "한국당은 분권형 권력구조 개편이 논의되지 않으면 개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인데, 권력구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은 한국당과 협상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말 문 대통령이 개헌을 하고자 한다면 한국당을 만나서 '나는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지만, 당신들이 지방분권이나 기본권 신장, 선거제도 개편에 동의해준다면 권력구조 문제도 같이 논의해보자'는 식으로 협상을 해야 한다"며 "오늘 회견에선 그런 말이 전혀 없어 실망스럽다"고 했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최 교수는 "정치적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법적으로 개헌에 의미 있는 방안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한국당과 아무런 교섭을 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게 되면 개헌 무산의 책임을 한국당에 떠넘기기 위한 의도로 비칠 수 있다. 정쟁만 유발 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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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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