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력 완성" 선언한 북한의 진짜 속셈은?

[정욱식 칼럼] 병진노선과 국지전의 모순

국제정치 용어 가운데 '안전과 불안의 패러독스(security and insecurity paradox)'라는 말이 있다. '핵 대 핵'의 대결 상태에서는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큰 전쟁이 억제되는 경향은 강하지만, 그 핵의 위력 때문에 작은 전쟁은 오히려 잦아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이론에 근거해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그 위력을 믿고 국지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과 전망이 많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국지 공격을 가해도 남한이 북한의 핵 공격을 우려해 쉽사리 보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될 것이라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북한으로 하여금 이러한 기대 자체를 못 갖게 하기 위해서는 대북 억제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한미 양국은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과시해왔고 그 추세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억제만으로는 부족하고 또한 위험하다. 양측 사이에 억제와 억제가 확대재생산되면 안보 딜레마를 야기하기 십상이고 이는 무력 충돌의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가 중요하다. 필자가 올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가장 주목한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이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국지 도발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이 남한을 군사 및 평화 문제의 당사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9시(평양 시각)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병진노선과 국지전의 모순


먼저 김정은은 "무엇보다 북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남북한이 "공동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남북대화 재개시 평창 대회 참가뿐만 아니라 군사 문제가 우선적인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핵의 위력을 앞세워 국지 도발을 시도하거나 강압 외교를 추구하기보다는 군사적 긴장 완화 및 평화적 환경 조성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핵무력 건설 완성"을 통해 대미 억제력을 갖춘 만큼, 올해부터는 남북한 주도로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적 환경 조성에 나서자는 맥락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단순히 김정은의 신년사에만 기초한 것이 아니다. 병진노선과도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병진노선의 핵심은 "핵무력 건설"을 통해 안보 문제를 해결하고 재래식 군사력의 부담을 줄여 "경제건설"에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대북 제재가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선 국방 분야를 줄이고 민생 및 경제 분야로의 자원 투입 증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는 북한으로서도 국지 도발에 나서거나 우발적 충돌을 감수할 동기가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재래식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재래식 군비를 조절해 경제발전에 투입하겠다는 병진노선에 큰 부담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미 평화협정 주장에서 한국도 당사자로

또한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지금처럼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불안정한 정세가 지속되는 속에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이 어렵다고 강조한 부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 행간에는 남북한이 공동으로 평화체제 구축에 노력하자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는 크게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첫째는 북한의 인식 변화이다. 북한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북미 평화협정을 주장했었다. 작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올해 신년사에선 사실상 남한을 평화협정의 당사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보다 평화문제에 대해 비교적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한 화답의 성격이 짙다.

둘째는 국내외의 불필요한 우려, 즉 '코리아 패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려의 핵심에는 결국 북한과 미국이 한국을 배제하곤 핵 동결과 평화협정 체결을 맞바꾸고, 심지어는 이게 주한미군 철수 및 한반도 공산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똬리를 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평화협정 논의의 당사자가 되면 이러한 우려는 기우로 만들 수 있다.

끝으로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관련된 부분이다. 김정은 정권은 비핵화 논의를 꺼려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평화협정에 대해 공개적으로는 단 한 번도 언급한 바가 없는 게 현주소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포함한 포괄적인 논의 틀을 만드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즉, 곧 재개될 남북대화를 정례화해 평화협정과 평화체제를 중대한 유인책으로 삼아 북한의 비핵화 논의를 유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간의 인식 공유와 공동의 전략 마련이 필수적이다.

북한의 "핵무력 건설 완성" 선언은 분명 개탄스럽고도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비핵화(혹은 비핵지대)를 장기적인 목표로 삼고 '위기관리'라는 절박한 과제를 우선적으로 다뤄야 한다.

또한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는 북한에만 이로운 것이 아니다. 당연히 이 협정과 체제 속에는 '상호간의' 불가침 약속과 이를 제도적·구조적으로 보장할 내용들이 담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불가능해 보인다는 비핵화의 비전도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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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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