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개성공단 중단 때도 거짓말

폐쇄부터 해놓고 국정원 동원해 무리한 증거 맞추기

2016년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 당시 박근혜 정부는 공단 내 북한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임금이 핵과 미사일 등의 대량살상무기(WMD)를 만드는데 전용된다는 근거를 내세웠지만 이는 부정확한 정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근거가 됐던 정보 사항은 개성공단 중단 조치가 나온 이후에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만들어진 문건이었으며 작성 시기도 가동 중단 결정 이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28일 발표한 정책혁신 의견서에서 공단 가동 중단 결정 과정에 이같은 문제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개성공단 자금 전용 주장의 근거 자료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정보기관의 문건은 (2016년) 2월 13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개최 이후에야 청와대 통일비서관실을 통해 통일부에 전달됐다"고 밝혔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를 발표한 것은 이보다 사흘 앞선 2월 10일이었다. 또 홍용표 당시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임금 등이 대량살상무기에 사용된다는 우려가 있었고 여러 가지 관련 자료를 정부가 가지고 있다"며 임금 문제를 공식 석상에서 처음 언급한 것은 이보다 하루 앞선 2월 12일이었다.

문건 내용의 신뢰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위원회는 해당 문건에 대해 "주로 탈북민의 진술 및 정황 등에 근거해 작성된 것"이라며 "이 문건에 등장하는 탈북자들의 경우 근무 기관이나 탈북 시점을 고려했을 때 이같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원회는 "진술 내용 자체가 구체적인 정보가 아니라 일반적인 추측에 불과했다"며 "그동안 개성공단 임금의 대량살상무기 관련성을 부인했던 입장을 변경하기 위한 근거로 삼기에는 정보도 부족했고 논리적이지도 않았다"고 평가했다.

위원회는 "문건을 작성한 정보기관조차 문건 앞부분에 '직접적인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을 표기하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의 임금이 대량살상무기로 전용된다는 명확한 증거도 확보하지 못한 채 공단 가동 중단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증거로 보인다.

▲ 개성공단 전면 가동 중단 결정이 내려진 다음날인 지난 2016년 2월 11일 개성공단 내 남한 기업들이 공단에서 물품을 싣고 남한으로 내려오고 있다. ⓒAP=연합뉴스

개성공단 가동 중단, 헌법 위반 소지 있어

이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 결정 과정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 10일 오전 10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위원회에 따르면 가동 중단 결정은 이보다 이틀 앞선 2월 8일에 내려졌다. 이는 2월 7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인 '광명성 4호'를 발사한 바로 다음날이다.

위원회는 "정부가 밝힌 (가동 중단) 날짜 (2월 10일) 보다 이틀 전인 8일 당시 개성공단을 철수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구두지시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당시 통일부 및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2월 8일 오전 외교안보수석이 통일부장관에게 대통령 지시라며 철수 방침을 통보했다"며 "오후에는 국가안보실장이 회의를 소집해서 통일부에서 마련한 철수대책안을 기초로 협의를 통해 사실상 세부계획을 마련하였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통일부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회는 "2월 8일 이후에도 통일부는 철수 시기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며 "갑작스럽게 공단 운영을 중단하면 피해가 적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고, '폐쇄'가 아닌 '잠정 중단', '전면 중단'으로 용어를 변경하기 위한 의견 제시도 있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그러나 국가안보실장과 외교안보수석은 대통령의 지시를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통일부도 즉각 철수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전격 가동 중단 조치를 내린 배경에 대해 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위와 같은 지시를 하게 된 과정과 경위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 부분은 다른 절차를 통해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같은 가동 중단 과정이 헌법 및 법률에 위반되는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위원회는 "중요한 대외정책은 국무회의의 필요적 심의 사항인데 (헌법 89조) 가동 중단 결정 과정에서 국무회의의 심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위원회는 "헌법 82조에 따르면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해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는 구두로만 이뤄졌다"며 "남북 협력 사업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남북교류협력법'에서 근거를 찾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했어야 했지만 대통령이 지시에 따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실행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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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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