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닮아가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위험한 공존

[정욱식 칼럼] 트럼프의 '국가안보전략'이 위험해 보이는 이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보고서의 중간에 여러 차례 담긴 제목부터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라는 말을 수식어로 붙였기 때문이다.

익숙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유세 때부터 '미국 제일주의'를 천명해왔기 때문이다. 반면 낯선 이유는 미국의 전략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이 표현을 쓴 것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보고서에서 밝힌 네 개의 전략 축은 온통 '미국'이 차지했다. △미국 본토와 국민, 그리고 삶의 양식 보호 △미국의 번영 증진 △미국 군사력 증강을 통한 힘에 의한 평화 수호 △미국의 영향력 증대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내 개의 전략 목표를 인도하는 원칙으로 '원칙적 현실주의(principled realism)'을 제시했다. '현실주의인' 이유는 "국제정치에서는 힘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주권 국가야 말로 평화로운 세계를 위한 최선의 희망이라는 점을 확인하며 국가 이익을 명확히 정의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원칙적'인 이유는 "미국의 원칙의 증대야말로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확산시킨다는 지식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미국은 미국의 가치에 의해 인도되고 미국의 이익에 의해 통솔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원칙적 현실주의 전략은 이념이 아니라 결과로 인도될 것"이라고 밝혀, 이전 행정부들의 외교 전략 지침이었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의 차별성도 부각시켰다.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라들은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국제질서의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수정주의 국가들"로, 북한과 이란은 "깡패국가들"로 표현했다. 이들 나라에 더해 이슬람 국가(IS)와 알 카에다와 같은 "초국적 테러 집단"을 미국이 직면한 "3대 도전"으로 명시했다.

▲ 18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북정책 키워드 : 관여 인색, 압도적 무력, 경제제재 강화

우리에게 초미의 관심사인 대북정책의 윤곽도 담겨 있다. 먼저 '관여(engagement)의 인색'이다.

보고서에서는 "도전 세력들에 대한 관여와 국제기구로의 참여 유도가 그들을 선의의 행위자와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만들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을 뒀던 지난 20년간의 정책이 대부분 잘못된 것이었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트럼프가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더욱 기피할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북한이 지난 25년 동안 자신이 한 모든 약속을 깨트리면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추구해왔다"는 굴절된 역사 인식을 내비친 것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해준다.

둘째는 압도적 군사력 건설이다. 보고서에선 "북한이 핵무기로 수백만 명의 미국인을 살상할 수 있는 능력을 추구하고 있다"며 본토 방어의 최우선 순위로 미사일 방어체제(MD) 구축을 삼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본토 방어를 위해 "다층 방어망을 배치하고", 동북아 지역에선 "한국 및 일본과 협력을 강화해 지역 MD 능력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조지 W. 부시 행정부와는 달리 선제공격 옵션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동맹국들과 함께 강력한 군사력을 건설하는 목적은 "미국의 이익에 대한 도발을 억제하고 필요하면 격퇴하며 경쟁을 무력 충돌 없이 관리하면서 평화를 유지하는 가능성을 증진하는 데"에 두겠다는 것이다.

또한 도발 시 강력히 보복당할 것이라는 점을 적대국에게 주지시키는 "응징 억제"뿐만 아니라, 도발을 통해 어떠한 목적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해 도발 자체를 원천 봉쇄한다는 "거부 억제"가 목표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셋째는 경제 제재 강화 방침이다.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에 압력을 가중시키기 위해 현존 및 새로운 경제 대책을 사용하고 국제 행위자들의 힘을 모으겠다"는 것이다. 또한 대량파괴무기(WMD) 개발 및 사용에 이용될 수 있는 자금줄을 차단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정리하자면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대응할 태세를 갖추고 한반도 비핵화를 강제할 수 있는 옵션들을 강화해", "완전하게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싸우면서 닮아가는 트럼프와 김정은

이번 보고서에선 유독 '주권'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미국 제일주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자국의 주권을 그 어느 가치보다도 높게 두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세계화를 주도해왔다는 자부심이 강한 미국이 주권을 이처럼 공개적으로 강조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또한 이는 자국의 이익과 타국의 이익의 조화, 주권과 국제 규범 사이의 조화를 강조해온 국제 협력주의 정신과도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트럼프의 NSS에 담긴 국가 정체성과 전략이 정작 북한의 화법과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조선민족 제일주의"와 "자주권"을 입에 달고 있다. "힘에 의한 평화"도 양국 지도자들이 가장 즐겨 쓰는 표현이다. 싸우면서 닮아가고, 닮아가면서 싸우는 두 지도자의 향후 행보가 우려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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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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