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DJ 아니라 DJ 측근들 비자금일수도" 또 논란

박주원 9분 신상발언…국민의당 '봉숭아 학당'?

13일 아침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원회 회의는 이 당이 처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 'DJ 비자금 허위제보' 의혹의 핵심 인물로, 안철수 대표가 비상징계 결정을 내린 박주원 최고위원이 버젓이 최고위 회의장에 나타나 신상 발언을 했다. 이 와중에도 바른정당과의 통합 관련 논쟁은 계속됐다.

시작은 짐짓 평온했다. 당 대학생위원장이 준비했다는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인형을 당 지도부가 들어보이며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 안철수 대표는 수능시험 수험생들을 위로하고, 이날 출국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중 외교 관련 건의 사항을 발표했다. "한중 협력을 강화"해야 하며 동시에 "중국에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전날 저녁 당선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12월 임시국회 의제를 짚었다.

그러나 안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발언이 진행되는 중에도, 취재진의 눈은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 2008년 주성영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100억 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가 DJ 비자금의 일부'라는 폭로를 했을 때, 그 근거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지목된 박주원 최고위원. 그가 최고위원 자리에 앉아서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안 대표는 지난 8일 박 최고위원의 당원권을 정지시키고 최고위원직에서도 물러나게 하는 긴급 징계 조치를 취했었다.

안·김 두 대표에 이어 장진영·박주현 최고위원이 선거제도 개혁, 통합 논란 관련 발언을 했다. 최고위 의전 서열은 안 대표, 김 원내대표에 이어 직선제 선출직 최고위원인 장진영-박주원 최고위원 순이다. 당 여성위원장으로 당연직 최고위원인 박주현 최고위원보다 박주원 최고위원이 앞 순서다. 하지만 박 최고위원은 원래 자신의 순서가 아닌, 공개 회의 마지막 순서에서 사실상 신상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박 최고위원의 발언은 무려 9분간 이어졌다. 공개 회의가 전체 30분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공개된 회의 시간의 3분의 1을 혼자 쓴 것이다. 요지는 자신이 주성영 전 의원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고, 문제의 CD 증서는 "사건 수사 당시 범죄정보 수집·입수·분석 과정에서 입수·제보됐고 정보를 공우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취지였다.

그는 발언 후 회의장 앞에서 기자들과 또 한 차례 문답을 가졌다. 그는 해당 CD는 2003년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을 내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자신이 주 전 의원에게 말한 것도 그 정도 내용일 뿐 '이게 DJ 비자금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하며 자료를 건넨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 '현대그룹 CD'를 "그분(주성영)께도 드리고, 저와 같이 수사·내사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여러 분들께도 드렸다"고 했다. 다만 그는 'DJ 본인이 아니라 측근 비자금이라고 생각했었나'라는 질문에 "당시 저희가 그렇게 내사하고 수사했고, 제가 들은 바도 있고 고(故) 정몽헌 전 회장에게도 직접 들은 얘기가 있다"고 부인하지 않았다.

요약하면 '억울하다'는 취지의 내용이지만, 안 대표나 당 지도부가 박 최고위원의 신상 발언을 최고위에서 할 수 있도록 해준 것 자체도 이례적이다. 안 대표는 지난 8일 국민의당 당규에 따라 박 최고위원에 대해 '비상 징계'를 했다. 국민의당 윤리위 규정(당규15호) 28조는 "대표는 중대하고 현저한 징계사유가 있고, 긴급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당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당무위원회 의결로 당원 자격정지 이하의 징계처분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행자 국민의당 대변인은 회의 후 이 부분에 대해 "비상징계는 당무위 의결을 거쳐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오늘은 법적으로 최고위원직을 갖는 것이 맞다"고 했다. 안 대표의 한 측근은 '그래도 박 최고위원이 자중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건 맞는 말"이라면서도 '안 대표 등 지도부가 박 최고위원을 막거나 설득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본인이 억울하다며 '죽어도 오겠다'는 데 어떡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당무위를 아직 안 열었기에 법적으로 최고위원직은 유지되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박 최고위원의 최고위 참석이나 발언을 제지할 방법이 없다'는 식의 태도가 위기 상황에서의 당 대표 리더십으로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당규 조항이 정 마음에 걸린다면, 안 대표와 다른 최고위원들이 합의해서 최고위 자체를 안 열거나 전체 비공개로 진행하는 방법도 있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조차 바른정당과의 통합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통합파인 장진영 최고위원은 최고위 공개 발언에서 "박지원 전 대표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 대표 재신임 의견이 팽배하다'고 했고 일부 호남 의원들도 재신임을 거론한다"며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둘러싼 논쟁이 당내 대립의 핵심인데, 당헌상 합당은 당원 의사로 결정하게 돼 있기에 전 당원들에게 통합 찬반 여부를 묻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장 최고위원은 "바른정당 통합 문제를 전당원투표로 결정할 것을 정식으로 제안한다"며 "(이는) 당내 논란을 조기에 종식시킬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 결과에 따라 안 대표와 최고위원들의 거취도 결정하면 될 일이고, 통합 반대 의원들도 투표 결과에 따라 책임을 지면 될 것"이라고 했다.

안 대표도 회의 석상에서 5.18 특별법이 전날 국회 국방위를 통과한 것에 대해 "큰 물꼬가 트인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중심 역할을 한 국민의당 의원들과, 법 필요성을 강조해 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께 감사드린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통합 반대파도 기세를 올리고 있다. 박주현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 석상에서는 통합 관련 발언은 하지 않았으나, 전국여성위원장 명의로 안 대표의 '싸가지' 발언에 대해 비판하는 성명을 내며 재점화를 시도했다.

박 여성위원장은 "통합 문제를 둘러싼 당의 정체성 논란으로 인한 내부 갈등은 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국민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다주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당의 통 합문제를 토론하는 원외 지역위원장들과의 모임에서 발생한, 안 대표의 김기옥 원외협 위원장에 대한 '싸가지' 발언 논란은 국민의당이 과연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지향하는 정당인지 의심하게 한다. 만약 원외협 회장이 남자였다면 태도가 불손하다는 이유로 사과를 요구하였을지, 대표가 '싸가지 없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을지 고려한다면, 대표의 위 발언이 여성 비하라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광주·전남·전북을 각각 대표하는 천정배·박지원·정동영 의원 등 중진들이 참여하고 있는 통합 반대파 모임 '평화개혁연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토론회를 열고 여론몰이에 나선다. 통합 반대파 일각에서는 이번 '박주원 사태'가 안 대표 측을 공격하거나 그와 갈라설 좋은 빌미라는 인식도 엿보인다.

2년여 전인 2015년 5월, 당시 제1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는 수석 최고위원과 차석 최고위원이 "패권주의",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을 치는 게 더 문제"라는 말을 주고받은 끝에 한 쪽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파행이 빚어졌다. 모 최고위원은 이런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준비해 온 발언을 꿋꿋하게 하고 '봄날은 간다' 노래까지 열창해 자못 기이한 분위기까지 자아냈다. 당연히 '봉숭아 학당'이라는 여론의 비난이 빗발쳤었다.

2017년 12월 현재 국민의당의 상황이 이보다 딱히 나을 건 없어 보인다. 초대형 논란의 당사자는 자숙은커녕 당 최고위 회의에 나타나 신상 발언을 하고, 당 대표는 '막을 방법이 없다'며 손놓고 있다. 이 와중에도 통합 찬반 양측은 각자의 깃발만 휘두르고 있다. 앞으로 6개월 후, 지방선거가 있다.

▲13일 오전 국민의당 최고위원회 개의를 앞두고, 안철수 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가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인형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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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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