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2400만 세입자를 위한 약속 잊었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주거는 권리이고 집은 인권이다

지난 11월 30일 주거복지 로드맵이 발표되었다. 일부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실망이 크다. 가장 큰 문제는 주거복지의 기본 조건을 형성하는 주거인권 보장 제도가 빠졌다는 점이다.

세입자가 인구의 절반에 이른다. 세입자 가운데 민간주택 거주자가 90%이다. 계속거주권(계약자동연장)과 전월세상한제, 표준임대료 제도가 빠져 있다. 이들 제도는 민간임대 거주 세입자의 주거안정과 주거인권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주거는 복지다'는 기조는 의미 있는 방향이지만 '주거는 권리다', '집은 인권이다'가 빠져 있어 '주거는 복지다'는 외침이 공허하게 들린다.

또 빠진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제

과거에 야당 유력 정치인으로서 또는 야당 대표로서 문재인 대통령은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 제도 도입과 주거권 보장을 수없이 약속했다. 이번에 발표된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이들 주거안정 제도가 빠졌다는 것은 2400만 세입자를 절망케 하는 일이다.

세입자들과 주거비 때문에 분가를 못하는 자식 세대들이나 남의 집에 얹혀사는 사람들은 정권이 바뀐 의미를 못 느끼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세입자들의 생활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앞이 캄캄하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했기 때문에 더욱 절망한다. 자신이 약속한 주거정책안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의 주거 공약은 매년 "공적 임대주택 17만호 공급"이다. 우선, 공적 임대주택'이라는 말은 족보가 없는 말이다. 신조어의 남발은 인식의 혼란을 가져 온다. 구체적 내용은 장기 공공 임대주택 13만 호, 공적 지원 민간임대 4만 호다. 임기 동안 장기 공공 임대주택을 65만 호 공급한다고 공약했는데 이번에 발표한 내용을 보면 장기 공공 임대주택(30년 이상 임대하는 주택을 말함)은 28만 호에 불과하다.

또한 분양 예정 단기 임대주택인 '5년·10년 임대주택'은 공급을 줄인다고 하지만 계속 공급할 예정이고, '민간주택 전세자금 융자 지원 제도'인 전세임대를 연 3만-4만 호 공급할 예정이다. 전세임대는 공공 임대주택이 아니다. 민간주택을 얻을 때 전세자금을 융자해 주는 제도일 뿐이다. 2년마다 이사 불안에 떨어야 하고 임대료 인상폭에 대한 공적 규제가 작동할 수 없는 민간임대의 한 유형이다. 전세임대주택은 공공 임대주택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장기 공공 임대주택은 더더욱 아니다.

결국 연 13만호 내역은 박근혜 정부가 공약하고 추진한 '공공 임대주택 11.5만 호'와 성격이 같은데 왜 국민에게 '장기 공공 임대주택 13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말해 국민에게 희망고문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 국민을 속인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주거복지 로드맵이 왜 대통령 공약과 다른지 해명을 해야 한다.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1월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자곡동 더스마티움에서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무주택 서민에게 주택 100만 호 공급"을 말한다. 하지만 내용에 허수가 많고 조삼모사의 수치놀음마저 하고 있다. 정부는 5년 동안 공공 임대를 65만 호, 공적 지원 임대주택을 20만 호, 공공 분양주택을 15만호 공급해서 임기 중에 서민주택 10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분양주택은 저소득 서민에게 그림의 떡이다. 저소득층 주거 문제가 심각한 이 시점에 그린벨트까지 헐어서 분양주택을 지을 일은 아니다. 그린벨트를 허는 경우에는 장기 공공 임대공급 용지로 써야 한다.

적은 양의 장기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하면서 특정 계층에 더 많이 공급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눈속임용 조삼모사 정책이다. 신혼부부와 청년에게 집중해서 공급하겠다고 하는데 이들에게 관심을 더욱 기울이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공급될 공공 임대주택 물량이 적기 때문에 다른 계층에게 공급될 물량이 대폭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공적지원 임대주택'으로 변신한 뉴스테이

이번 주거복지 로드맵을 보면 '공공지원 임대주택'은 80% 이상을 기업형 임대주택인 뉴스테이를 통해 채우겠고 한다.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지금까지 쓰던 뉴스테이를 이름만 바꾼다고 성격이 다른 주택으로 변화되지 않는다. 그대로 뉴스테이라고 쓰지 왜 '공적 지원 임대주택'이라는 새로운 작명을 해서 사람의 눈을 속이려 드나? '공적 지원 임대주택'이라고 하면 마치 공공 주택처럼 느껴진다. 뉴스테이는 이름을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대개는 대기업 소유 민간임대다. 정부가 재벌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건설기업에게 엄청난 특혜를 제공한 반면에 공공성은 미미해서 박근혜 정권의 대표적인 주거 적폐로 인식된 게 바로 뉴스테이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 차원에서 뉴스테이를 중단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외면하고 뉴스테이를 계승을 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목적으로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게 바로 '공적 지원 임대주택'이다.

국토부는 뉴스테이 업자에게 공공 토지 제공은 중단하겠다고 하고 초기 임대료를 시세보다 5-10% 낮게 책정하겠다면서 이름을 바꾸고 성격도 바뀌었다고 한다. 이미 토지를 제공한 물량이 상당한데 이는 어쩔 셈인가. 5-10% 낮게 책정한다는 건 기술적으로 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수치가 미미해서 비판 회피용 생색내기일 뿐이다. 8년 동안 임대료 상한을 연 5%로 한다는데 실제로는 5% 꽉 채워서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물가가 1-2% 오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5%는 무지 높은 수치이다.

국토부가 말하는 '개선된 뉴스테이'는 서울 기준으로 90만 원 대의 임대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서민은 꿈도 못꾸고 중산층 대부분도 접근할 수 없으며 상류층 일부만 득을 보는 주택 형태이다. 토지를 제외하고 세제, 금융, 용적률 등에서 특혜를 계속 제공하겠다고 하는데 이들 자원은 저소득층과 평균소득 이하 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한 장기 공공임주택 건설에 쓰여야 한다. 대기업과 고스득층을 위해 저소득층 서민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더욱 큰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공적지원 임대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에게 특혜를 제공해 뉴스테이 물량이 늘어나면 대기업이 민간임대 영역에서 막강한 임대료 통제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대자본에게 민간임대료 인상에 대한 칼자루를 쥐어 줄 가능성이 높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공공 자원을 퍼주는 행위는 즉시 중단해야 한다. 주거 공공성을 망각한 행위다.

또 다른 문제점은 '공적 지원 임대주택'의 경우 '부지 확보'를 하면 공급되었다고 본다는데 실제로 집이 지어지는 것도 아니고 언제 준공될지도 모르는데 임대주택 통계에 포함시키는 것 역시 눈속임용이다. 임기 중 공약대로 공급했다고 뻥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세임대와 매입임대는 주택 총량의 증가 없이 추진하는 정책이어서 서민들 주거난 해소에 근본적 대안이 아니다. 특히 전세임대 거주자는 2년마다 이사 불안과 '인상되는 전세금' 마련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전세임대는 서민용 전세 주택의 가격 인상을 부추기는 정책이다. 그동안 저렴한 민간 임대주택 상승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임대인이 임대소득 노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집을 안주려고 하고 집을 주더라도 상태가 안좋은 집을 보여주거나 시세보다 훨씬 높여서 값을 부르고 있어 전세임대 당첨자 가운데는 입주를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집 구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세임대는 지양하고 장기 공공 임대주택 또는 매입임대를 확충하는 게 중요한 이유이다.

신혼부부와 청년에게 전세자금 대출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가계부채 증가를 가져오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전세금 인상을 부추기는 정책이다. 전세임대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주거급여 인상 또는 대상층 확대는 월세 인상을 부추긴다. 제도 간에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되어야 전세금 또는 월세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전월세 상한제는 주거 안전벨트다. 민간주택 거주자의 주거인권 보장과 주거안정 장치 마련이 시급한 또 다른 이유이다.

서민의 주거권이 보장돼야 '나라다운 나라'

'장기 공공 임대 13만호' 공약의 절반 이상이 허언이 되고 있어 화도 나고 실망도 크지만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발표한 것이라도 잘 지키기 바란다. '공적 임대주택 85만호 공약(공공 임대주택 65만 호 + 공공 지원 임대주택 20만 호)'이 실현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 이후 2년이 흐른 지금까지 '매년 장기 공공 임대주택 15만호 공급'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없고 지금도 여전히 의지가 미약하다.

공공 임대주택 공약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부실한 공약마저 실현하는 흉내만 낸다면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안철수, 유승민, 그리고 홍준표 후보 등 다른 대선 후보들도 대부분 공공 임대주택 공약을 했다. 공약만 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후보는 없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자신의 대선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증표가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 임대주택 공약이행에 발목 잡지 말고 공공 임대주택 확충에 발 벗고 나서기 바란다.

"못살겠다, 갈아보자"고 외친 국민의 촛불항쟁 덕에 문재인 정부는 탄생할 수 있었다. 2년마다 이사 불안에 시달리고 마을 주거 공동체에서 떨려 나게 만드는 제도가 온존하는 대한민국이다.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제대로 바꾸는 게 문재인 정부의 사명이다. 인권을 우선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주거 인권을 외면서면서 인권을 말하면 곤란하다. 언행일치하는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

어른들이 만든 잘못된 제도로 인해 이사를 해야 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친구와 헤어짐을 강요받는다. 이사한 할머니는 새로운 집을 찾아오기도 힘이 든다. 전월세는 계속 올라 식비, 의료비까지 줄여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말을 공허하게 만든다. '인권우선 정부'가 선거용 슬로건으로 전락해서는 안될 일이다.

정부는 계속 거주권(계약 자동 연장)을 보장하고 전월세 상한제 도입에 적극 나서라. 그동안 세입자와 예비 세입자들은 불안한 삶을 살아 왔다. 삶의 기본권을 부정하는 대한민국,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세입자 대중의 입에서 "이게 나라냐?" 하는 외마디 신음이 더 이상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주거 인권 보장과 주거 안정 제도 도입은 촛불 정부, 문재인 정부의 책무다. '국민 앞에 약속'이 천금처럼 소중하다는 걸 생각하고 촛불항쟁의 의미를 잊지 말기 바란다. 초심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최창우 '집걱정없는세상' 대표는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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