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우리는 누구인가요?

[복지국가SOCIETY] 기업은 착취했고 학교는 눈감았고 정부는 책임을 미뤘다

얼마 전 모두가 첫눈을 반가워하고 있을 무렵,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제주 지역의 한 음료 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18살 학생 이모 군이 산업재해를 당해 사망한 것이다. 이 군은 당시 혼자서 포장 라인을 오가며 작업하다가 기계 결함으로 압축기에 몸이 깔렸고 열흘 만에 결국 목숨을 잃었다. 당시 기계가 고장이 났고, 이 군이 고치려고 아등바등하는 동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고 현장을 발견한 것도 사고 후 4-5분이 지난 후였고, 그것도 또 다른 현장실습생이 발견했다.

현장실습생의 안타까운 사고들

현장실습생의 안타까운 사고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장실습 제도가 도입된 이래로 수십 건의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LG유플러스 전주 콜센터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홍 양이 회사의 실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작년 5월에는 성남 외식업체 조리부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김 군이 업무 과다와 선임의 괴롭힘으로 스스로 세상을 저버렸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의 김 군 역시 현장실습생으로 취업해 초과 근무 중이었다. 당시 구의역 9-4 승강장 앞에서 우리 모두가 미안한 마음으로 그를 추모했지만, 지난 1년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상해 사건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다.

현장실습 제도는 교실 수업과 실무적인 훈련을 결합한 제도이다.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된 것은 1963년 박정희 정권 시기로 당시 학교 내 실습 장비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 부족 및 훈련 체제의 미흡, 실습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권 침해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부침을 겪다가 이명박 정권 때부터 다시 활성화되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고등학교 직업교육을 선진화하겠다는 명목 하에 692개 특성화 고등학교를 정예화 해서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때 특성화고 중에서도 직업교육을 완전 전문화시킨 마이스터고가 설립되었다. 마이스터고란 '사업계의 수요와 직접 연계된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고등학교'(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제90조)이다. 담당 부처도 늘어났다. 교육부, 고용노동부에 이어 중소기업청(현 중소기업벤처부)까지 위탁받았다. 특히 2008년부터는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이 진행되면서 현장실습운영 과정에서도 개별 학교들의 자율성이 보장되면서 더 활성화되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도 '산학맞춤 기술인력 양성'을 국정 과제에 반영하여 힘을 보탰다. 특히 2013년 8월 '특성화고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을 도입해 그 이전까지는 주로 3학년 2학기에 이루어졌던 현장실습을 3학년 1학기에도 보낼 수 있도록 허용했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도 '중소기업 수요가 높은 산학맞춤 인력양성 프로그램 확대'가 포함되어 추진 중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고등학생 현장실습 제도의 효과

고등학생의 현장실습 제도는 교육 자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초기의 취지와 달리, 이제는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한 주요한 대책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체계적인 직업 훈련을 통해 청년을 취업으로 바로 연결시키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중소기업은 인력을 구하지 못해 인력난에 시달리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구직난에 처해 있는데, 현장실습은 이를 완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보통 6개월 정도 현장에서 업무를 배울 수 있고, 기업 역시 교육 훈련 기간을 통해 숙련된 인력을 수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교실 수업과 실무 훈련을 결합한 방식의 직업훈련 프로그램들이 많이 시행되고 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청년 실업률을 낮춘 결정적인 요인이 해당 직업에 대한 실무 훈련이 이루어지는 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된다. 교육 과정과 현장실습 간의 괴리를 극복함으로써 청소년의 직장 이전을 더욱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현장실습 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정부는 계속해서 보완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청소년들이 희생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기업 : 열악한 근로조건

첫 번째 문제는 기업들이 현장실습 제도를 값싼 노동력을 공급받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보면, 근무시간은 1일 7시간으로 제한하고, 동의하에 1시간 연장할 수 있다. 휴일 및 휴가는 사업주가 정한 취업규칙을 준용하되, 1주 2회 이상의 휴일을 줘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장실습을 지도할 능력을 갖춘 담당자 배치도 의무화돼 있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이 협약서에 가입하지 않거나 가입하더라도 실습생과 별도의 근로계약을 맺어 더 많은 노동을 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근로자가 아니라 현장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임금'이 아닌 '실습비'를 받고, 그 수준마저 일반 근로자 임금의 70-80% 수준이다. 연장근로수당을 못 받는 경우도 태반이다.

이 군의 경우에도 기업체와 협약서 외의 별도의 계약을 맺어 보통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거의 10시간을 일했고, 일이 많은 날에는 12시간까지 연장근무를 한 날도 있었다. 기계의 잦은 고장으로 부상을 당해도 회사의 업무 독촉으로 출근해야 하는 등 열악한 근로 환경 속에서 노동력만 착취당한 것이다.

② 정부 : 책임 방기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는 실습생들의 안전 보장과 근무 조건, 기업의 현장실습 지도 등에 대한 내용들이 자세히 명시돼 있다. 또한 기업들이 이 표준협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일을 시키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문제는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법 문구도 '부과할 수 있다'는 모호한 성격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감시감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표 1>은 지난 3월 교육부에서 실시한 '특성화고 현장실습 실태 점검 결과 현황'을 보여 주고 있다. 당시 부당한 대우나 근무시간 초과에 등 부당한 근무조건에 대해서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11월이 될 때까지 이 군의 노동조건은 딱히 개선되지 않았다. 교육당국이 실태조사를 하더라도 실효성 있는 제재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을 기업 측에서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군이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사망한 지금 이 순간에도 해당 기업체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또한 정부의 특성화고에 대한 지원 기준이 '취업률'이라는 정량적 지표에 한정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학교들이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의 열악한 처우를 모른 척 해버리는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현장실습생은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특수한 지위이기 때문에 회사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더라도 상담을 받을 만한 곳은 학교뿐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실습생이 근로 환경을 이탈할수록 취업률이 낮아질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억제하고, 오히려 교사와 학생을 압박하기까지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한 관련 부처가 여러 개로 쪼개지면서 궁극적인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지금 고등학생들의 현장실습 제도를 담당하는 부처는 교육부, 중소벤처기업부, 고용노동부 세 기관이다. 그런데 감시감독 책임은 서로 미루고 있다. 현장실습 제도는 관계기관이 학교, 기업, 그리고 중앙의 세 부처일 만큼 규모가 큰 사업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책임지고 학생의 노동조건에 신경을 쓰는 곳이 없다.

③ 실습생들의 질 낮은 일자리로 연계

이처럼 모두가 방치한 결과 일자리의 질은 악화되고 있다. 지난 20일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직업계 고등학교 졸업자 취업률은 50.6%로 전년(47.2%)에 비해 3.4%포인트 높아졌다. 정부는 특성화고가 취업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자부하지만, 일자리의 질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최근 국감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에 취업한 특성화고 출신 학생의 고용보험 가입자 비율은 2012년 79.6%에서 꾸준히 내려가 2015년 58.8%로 무려 20.8%포인트가 하락했다. 높아지는 취업률이 질 낮은 일자리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취업률 평가 대신 만족도와 노동조건 평가해야

이처럼 지금 우리나라의 고등학생 현장실습 제도는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근로자가 아닌 현장실습생의 지위를 이용한 기업들의 노동력 착취와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일자리의 질뿐만 아니라 생명권까지 위협당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현 제도의 개선을 통해 긍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바꾸어야 한다.

먼저 정부 당국의 철저한 감시감독이 필요하다. 매년 수백억의 예산이 학교로 지원되는 만큼 학교가 현장실습생의 노동 여건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도록 지속적인 감시감독이 필요하다. 특히 학교 내에 전문적인 취업지원관을 두고 상시적으로 실습 장소를 방문해 문제점 적발 및 시정 요구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예산 지원 시 취업률 위주의 성과 평가 시스템을 철폐하고 현장실습생의 만족도와 노동조건에 대한 질적 평가도 병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학교가 실습처를 선정할 때 노동조건을 고려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기업 역시 현장실습생을 하나의 근로자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교육시켜야 한다. 현장실습생은 실습과정 동안 기업의 업무뿐만 아니라 분위기 등을 사전에 경험하면서 익숙해지기 때문에 신규 채용자보다 해당 기업에 장기 근속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이런 이유로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들에서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실습과정 동안 드는 비용보다 해당 근로자를 직무 적합형으로 훈련시킴으로써 기업이 얻는 이득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적 시각에서 노동 비용을 낮추기 위해 열악한 근로 환경으로 내몰기보다는 장기적 시각에서 노동조건의 보장과 꾸준한 훈련을 통해 해당 기업과 함께 갈 사람으로 키워내야 한다.

현장실습생의 열악한 근로 환경에 대한 비판이 십여 년째 제기되고 있지만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LG유플러스에서 실습했던 한 여학생의 죽음 이후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하겠다고 했지만, 또 하나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이번에도 또 특별근로감독을 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땜질식 처방은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

각 부처가 서로 책임을 미루고 학교가 모른 척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청소년들이 부당하게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이들은 힘들게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고, 학교에 소속되어 있음에도 학교의 보호 바깥에 놓여 있다. 이들을 사회적 보호 안으로 끌어와야 한다. 아이들이 희망을 잃어버리고 삶을 버리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더 이상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기존의 현장실습제를 방치하지 말고 전면 개편해 아이들의 꿈을 짓밟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문대통령 노동이사제 공약, 노동자 경영 참여 시대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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