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게 동맹은 '봉'…방한 앞두고 日서 '발톱'

북한 핵·미사일 위협 빌미로 일본·한국에 통상 압력 본격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일 정상회담은 동맹국을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군사적 측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빌미로 미국 중심의 위계 질서를 과시하는 한편, 사업가 출신 답게 그에 따른 통상 분야에서의 경제적 댓가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또 다시 '무역 불공정성'을 거듭 강조했다. 취임 이후 첫 아시아 순방에서 통상 분야에서의 '미국 우선주의'를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과 불공평한 무역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중국과 무역도 불공정했다"고 밝혀 통상‧무역과 관련해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게 강한 압박을 가할 것임을 시사했다.

앞서 그는 이날 오전 주일 미국대사관에서 열린 미‧일 기업 경영자 대상 간담회에서도 미국과 일본의 무역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우리와 일본의 무역은 공정하지도 개방돼 있지도 않다. 자유롭지도, 상호 호혜적이지도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 무역이 불공정하다고 수차례 강조하는 이유는 대일본 무역에서 적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올해 1분기 무역 적자 자료를 보면 미국의 대일 적자 규모는 173억 달러(약 19조 2900억 원)로 중국에 이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대중국 적자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크다. 올해 1분기 미국은 중국과 무역에서 788억 5000만 달러 (약 87조 9500억 원) 적자를 봤다. 한국을 대상으로는 61억 4000만 달러(약 6조 84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같은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한국 등을 대상으로 양자 FTA(자유무역협정) 체결‧개정을 통해 자국에 유리한 무역 조건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같은 다자구조보다 FTA 등의 양자 협상이 자국에 더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실제 이날 오전 간담회에서 "양국 모두에 공정하고 더 나은 무역 협정과 개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TPP보다 거대한 무역을 하겠다. 구조가 복잡하지 않은 무역을 하는 것"이라고 밝혀 미일 양자 협상을 통해 일본을 압박할 것임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는 한미 FTA 개정 협상을 벌이고 있는 한국에게도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7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통상 압박을 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10월 31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국정감사에서 미국 측이 "무역적자를 줄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언급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 6일 일본 수도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 통상 압박 강화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아시아 순방 목적을 '무역 불균형 해소'에 맞춘 가운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기를 한미일 동맹 강화와 통상 압력의 무기로 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미일 정상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북한에 대한 압력을 최대한 높여가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북한과 대화가 아닌 추가 압력이 필요하다"며 "북한이 대화하자고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북한에 대한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일관되게 지지한다"며 "북한의 최신 정보를 분석하고 향후 취해야 할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는 7일 북한의 35개 단체‧개인의 자산을 동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세계에 위협이 된다면서 미일 동맹을 토대로 북한 위협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일 동맹이 지금처럼 긴밀한 적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및 가족과 만난 뒤 "아베 총리와 협력해 납치 피해자를 가족에 돌려보내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정치적 소재로 활용해 온 아베 총리에게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결국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 동맹과 북한의 위협을 앞세워 '찰떡 공조'를 약속하면서도, 통상 분야에선 일본에 대한 압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일본 입장에선 통상 분야에서 뒤통수를 맞은 격이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구실로 양국 간 군사 협력 강화 수순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양손에 들린 '대북 압박'과 '통상 압력'이라는 두 가지 목적이 모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문재인 대통령의 처지는 아베 총리보다 난처해 보인다.

우선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미일 군사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참여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커질수록 통상 분야에서의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적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또한 대북 강경책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아떨어지는 아베 총리와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대북 '군사적 옵션' 가능성을 여러차례 시사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북핵 문제에 대한 평화적, 외교적 해법을 설득해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과 오는 10일부터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도 북한 핵‧미사일과 통상의 방정식을 어떻게 풀어갈지가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외교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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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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