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0월 13일(현지 시각) 이란 핵협정은 "최악의 협정 중 하나이며, 미국이 역대로 체결한 것 중 가장 일방적인 거래"라고 비난하면서 "이란의 핵협정 준수를 인증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국내 보수 언론이 주장했던 것처럼, 핵협정이 경제제재를 앞세운 미국에 이란이 굴복한 것이라면, "가장 일방적인 거래"라고 분통을 터뜨렸어야 할 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이란이었어야 말이 된다. 하지만 이란은 협정 준수를 요구한 반면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불인증'을 선언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선 국내 보수 진영의 아전인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강력한 대북 제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란이 핵개발을 고집하다가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고선 굴복한 것처럼 묘사했었다.
하지만 이란 핵협정은 전형적인 '이익의 균형'이었다. 국제사회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사실상 제거하는 데에 성공했고, 이란은 경제 제재 해제에 따른 실리와 국제적 고립 탈피를 도모할 수 있었기에 협정 타결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눈에는 이게 탐탁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란이 핵협정 위반을 문제삼았지만, 정작 이란 핵사찰을 담당해온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이 한 핵 관련 약속들은 현재 이행되고 있다"며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탄탄한 핵 검증체제의 대상이다"이라고 강조했다.
협정 체결 당사국들이자 미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의 동맹국들인 영국, 프랑스, 독일조차도 "3개국 모두 협정을 완전히 이행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말한 이란의 핵협정 위반 주장은 '가짜 뉴스'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가 '불인증'을 선언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오바마의 유산 지우기'이다. 파리 기후협약에서 오바마 케어에 이르기까지 트럼프의 국정기조는 'ABO(Anthing But Obama)'라는 말로 압축된다. 오바마가 한 일은 무엇이든 문제가 있다며 이걸 뒤집는 게 주특기인 셈이다.
트럼프의 이번 결정은 '무기 상업주의'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트럼프는 5월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때, 1100억 달러(약 124조 원) 규모의 무기거래에 계약한 바 있다. 미국 언론들은 이 계약에 힘입어 미국이 향후 10년간 사우디만을 대상으로 3000억 달러가 넘는 무기 수출이 달성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이란과 경쟁 관계에 있는 사우디는 이란 핵협정을 반대해온 대표적인 나라이다. 이란 핵협정 '불인증'이 사우디의 대규모 무기 수입에 대한 트럼프의 답례라는 해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더구나 '불인증' 발표와 이란의 반발로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트럼프는 수니파 국가들을 상대로 무기 수출을 크게 늘리려고 할 것이다.
아울러 트럼프의 '불인증' 카드는 2020년 재선 전략도 그 의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트럼프는 '불인증'이 미국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는 이스라엘 및 친이스라엘 로비 그룹의 지지를 받는 데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의 선택은 오바마에 대한 적개심, 무기 상업주의, 친이스라엘 행보를 통한 재선 도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핵비확산 체제의 중대한 위기와 더불어 국제정세의 불확실성 증대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보수 언론도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하지만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아직(16일 현재)까지 관련 사설조차 싣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협정 불인정 선언으로 앞으로 북한과 협상에 나서더라도 이란 핵협정 같은 방식은 결코 안 하겠다는 협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라고 논평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동아>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정부 일각의 북핵 동결론도 한미 간 불협화음만 낼 뿐 더는 설 자리가 없음을 새삼 일깨운다"는 대목이다. 트럼프는 북한에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려고 하는 만큼,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해 다른 얘기를 할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투다.
하지만 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불인증' 선언이 북핵 문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미국의 현 정권과 합의를 하더라도 미국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 합의가 깨질 수 있다는 시그널을 북한에 줄 것이고, 이는 북한 내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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