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왜 이란 핵 협정 불인증을 선언했나?

워싱턴포스트 "트럼프 따르는 동맹국 많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 협정을 인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뚜렷한 국제정치적 철학이나 비전에 따른 결정이 아닌, 단지 '전임 대통령 업적 지우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 미국뿐만 아니라 동맹국들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이하 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이란과 관련한 본인의 전략을 발표하겠다면서 지난 2015년 체결한 "이란 핵 협정을 준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은 협정을 여러 번 위반했고 원심분리기 가동과 관련해 우리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협정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은 지난 2015년 당사국인 이란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인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에 독일, 유럽연합까지 참여해 만들어낸 국제적 협정으로, 전임 정부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주요 외교적 업적으로 꼽히고 있다.

이행단계에 있는 협정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이 협정을 위반했다"며 제동을 걸자 아마노 유키야(天野之彌)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이날 "이란은 강력한 핵 검증 체제 하에서 핵을 검증하고 있고 협정을 이행해오고 있다"고 즉각 반박했다.

협정의 참가국이자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실망했다며 협정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 국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불인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을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는 주요 언론들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고립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야당과 언론뿐만 아니라 공화당 내에서도 협정을 지키겠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15년 협정 체결 이후 '이란 핵 협정 검토법'을 제정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백악관은 90일마다 이란의 이행 수준을 평가하고 인증 여부를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대통령이 인증하면 의회는 이란에 대한 제재 면제를 계속 유지하게 되고 불인증할 경우 60일 안에 이란에 대한 제재 재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에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관건인데, 공화당의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과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핵 협정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코커 위원장이 이날 "미국이 이란과 협정을 지켜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로이스 위원장은 협정이 파기되는 것보다는 최대한 협정을 활용하길 바란다고 밝혔다"며 협정 유지에 무게를 실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각) 이란 핵 협정을 인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오바마 지우기에 혈안인 트럼프…대외 정책 철학도‧원칙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이른바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대외정책을 펴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비롯한 멕시코, 캐나다 등에 자유무역협정 개정을 압박하고 탄소 배출을 규제하고 있는 파리협정의 탈퇴를 선언한 것 등은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해 미국 기업들을 보호하려는 조치로 읽힌다. 실제 효과 여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공약을 이행하는 수준의 상징적인 조치였다고 해석해줄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란 핵 협정 불인증이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외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미국 내 사안을 우선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라면, 다자 간 이뤄진 협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대외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미국이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다.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국제사회의 현실과 '미국 우선주의'라는 정책적 목표를 결합해 결국 국제사회에서 "미국 마음대로 행동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대외정책이라고 해도 정책 실행의 명분이나 근거가 없다면 국제사회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국가수반들이 트럼프의 발언에 즉각 공동성명이라는 형태로 대응했다는 점을 보더라도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아무리 '독불장군' 식으로 자국의 뜻을 관철하려고 해도 그 영향력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체 트럼프 대통령은 왜 명분도 없고 실속도 없는 이란 핵 협정의 불인증을 선언한 것일까? 이를 두고 <워싱턴 포스트>는 14일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이란 핵 협정 불인증) 발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맺어졌던 국제적 협정을 되돌리기 위한 가장 최근의 시도"라며 "올해 초 그는 파리기후변화협약 철수를 이야기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이 언급한 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임 정부인 오바마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오바마 정부의 건강 보험 개혁법인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은 이러한 그의 의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물론 정부가 바뀌면 그에 따라 정책이 바뀌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를 예외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트럼프의 행태가 특정한 상황 변화나 정책에 기반하지 않은, 국내 정치적인 목적에 치우져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행보는 미국의 대외 위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를 지켜보고 있는 동맹국들이 "관리가 필요한 변덕스러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트럼프가 이러한 행보를 보이게 되면 그를 따르는 동맹국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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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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