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중단'이 비현실적? '쌍개시'로 위기 돌파해야

[정욱식 칼럼] 불안한 평창 올림픽, '쌍개시'로 평화 올림픽을!

2008년 12월 6자회담이 결렬된 이후, 한반도 정세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반전(反轉)이 사라졌다는 데에 있다. 기실 1990년대 초 한반도 핵위기가 대두된 이후 한반도 드라마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었다.

하지만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 관련 질환으로 쓰러지자 대북정책을 놓고 갈피를 못 잡던 이명박 정부는 흡수통일을 겨냥한 '기다리기 전략'으로 방침을 굳혔다. 2009년 등장한 오바마 행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견제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및 핵실험과 마주치면서 '전략적 인내'로 일관했다.

여기에는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삼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아시아 재균형 전략'도 크게 작용했다. 급기야 2011년 11월에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장을 안보와 경제건설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국가 전략의 핵심이라는 인식을 굳히고 말았다.

반전이 사라진, 그래서 막장으로 치닫던 한반도 드라마에 새롭게 등장한 트럼프 행정부 및 문재인 정부 역시 지금까지는 이렇다 할 반전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두 정부 모두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의 실패를 선언했지만, 정작 실패한 정책을 오히려 더 악화된 형태로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기대를 접은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말폭탄 싸움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핵보유국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전의 실마리조차 사라진 것일까? 위기가 극도로 고조되었다가 극적으로 대화가 이뤄졌던 오래된 과거의 일이 재현될까? 미친 자를 자처하고 또 즐기고 있는 트럼프와 김정은에게 이러한 요행을 바라는 것은 난망하고도 무책임한 일이다.

작년 2월부터 중국이 '쌍중단'(雙中斷,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북한의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 유예)과 쌍궤병행(雙軌竝行,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 병행)을 앞세워 중재와 조율을 시도해왔지만 이 역시 역부족인 상태이다. 중재의 핵심은 북미 양측으로부터 신뢰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중국은 북미 양측으로부터 삿대질을 받는 신세로 전략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러시아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는 우선 중국의 제안을 양국의 공동의 제안으로 삼으면서 포괄적인 문제 해법의 공론화를 시도하고 있다.

출발점에 해당하는 쌍중단은 같다. 하지만 쌍궤병행을 2단계로 나누면서 보다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쌍중단을 1단계로 삼으면서 2단계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3단계로 다자간 협의를 통한 동북아 지역안보체제의 확립 및 비핵화 협상의 병행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6자회담의 5개 실무 그룹 가운데 하나인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의장국이다. 이러한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북핵 문제의 근원적 해결 방안의 하나로 동북아 평화구축의 공론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러시아의 중재 노력이 말로만 그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6자회담 수석 대표인 조셉 윤을 초청해 회담을 가진 데 이어, 최근에는 북한의 외무성 북미 국장이자 6자회담 대표인 최선희를 초청했다.

그러나 이러한 러시아의 중재 노력이 결실을 맺기는 어려워 보인다. 입구에 해당하는 쌍중단을 미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니키 헤일리 유엔 대사가 9월 4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쌍중단을 "모욕적"이라고 비난한 것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해준다. 한국과 일본 역시 쌍중단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새로운 입구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나는 '쌍개시'를 제안하고자 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 '개시'를 출발점으로 삼아보자는 것이다.

한미일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정책의 철회"를 비핵화 논의의 전제 조건으로 삼으면서 평화협정 논의 시작이 그 유력한 출발점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쌍개시' 제안은 이러한 양측의 입장을 두루 고려한 것이다.

물론 북미 양측이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양측 모두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북미 관계의 현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한국이 이러한 제안을 공론화하면서 관련국들을 설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반도 운명의 주인으로서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시기적으로도 쌍개시는 절박하면서도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내년은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다. 2-3월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 및 패럴림픽도 열린다. 그런데 매년 이때에는 최대 한미 군사연습인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도 열려왔다. 평창 올림픽의 성공 여부는 물론이고 한반도 정세의 중대 분수령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쌍개시를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하는 것이다.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 개시는 그 자체로도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또한 군사적 긴장 완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대화 재개와 한반도 정세 호전은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을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이렇게 되면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분위기도 극적이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될 수 있다.

벌써부터 일부 국가들은 평창 올림픽 불참을 시사하고 있다. 올림픽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에서 올림픽 기간 중에 전 세계의 분쟁 중단을 촉구하는 '휴전 결의안'을 제안했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반도는 64년 넘게 휴전 상태를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정전체제의 모순이 임계점을 향해 하고 있다. 그래서 '평화' 올림픽을 향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에는 한반도의 휴전 상태를 평화 상태로 정상화하기 위한 담대한 여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쌍개시'는 그 유력한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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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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