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말폭탄', 북핵 키우는 거름된다

[정욱식 칼럼] 문재인, 트럼프에 대북정책 전환하자고 설득해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마겟돈의 문'을 대놓고 두드리고 있다. 그가 19일(현지 시각)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을 두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는 또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로켓 맨"으로 지칭하면서 "그가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정권에 대해 자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가 극단적인 발언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즉흥적인 발언이 아니라 참모진과 협의 끝에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도 세계 평화를 존재의 이유로 삼고 있는 유엔에서 전 세계 지도자들 앞에 두고 쏟아낸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을 자아내고 있다.

'전쟁 국가 미국'은 전통적으로 유엔을 '미국이 세계 평화의 수호자'라는 프로파간다의 장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 가면마저 벗어던졌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한 답은 그의 연설에 대한 국제사회 일각의 반응에서 찾을 수 있다. '정말 트럼프가 전쟁을 하는 것 아냐', '미친 것 아냐'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데, 트럼프는 바로 이걸 기대하고 말폭탄을 던진 것이다.

트럼프의 '미친 자의 이론(madman's theory)'이 겨냥한 국제사회의 대상은 크게 세 곳이다. 첫째는 북한이다. 북한에 최대의 위협을 가해 "북한은 비핵화가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미래임을 깨달아야 할 때"라는 점을 각인시키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중국과 러시아이다. 트럼프는 이들 나라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북한과의 무역은 불법행위"라며 경제 관계 단절을 촉구했다.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이를 완충지대로 삼아온 중국과 러시아에게 한반도 전면전은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트럼프는 이걸 노리고는 '북한과의 경제 관계를 단절하든, 북한의 완전 파괴를 각오하든 양자택일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셋째는 한국이다. 한반도 전면전은 한국에도 아마겟돈 그 자체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전면전 위협에 대다수 한국인들은 안심하기보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극단적 선택을 예방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 지난 19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는 바로 그 부담감을 이용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자신의 품 안에 가둬두려고 한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무기 판매를 최대한 늘리고 한미 FTA와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한다. 한미동맹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직접 겨냥한 김정은은 트럼프의 '광자(狂者)의 게임'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폭탄 발언' 다음날에 뉴욕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개들이 짖어도 행렬은 간다는 말이 있다"라는 자국의 속담을 소개하면서 "개 짖는 소리로 우리를 놀라게 하려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개꿈"이라고 받아쳤다.

이 발언 속에는 '완전히 파괴되는 쪽은 북한만 아니라 미국도 될 것'이고, '짖는 개한테 물리지 않으려면 몽둥이를 확실히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결기를 내포하고 있다. 즉 북한은 트럼프의 '두려움 주기'를 '두려움 돌려주기'로 응수하려고 한다. 공포의 불균형을 균형 상태로 맞추려고 안간힘을 쓴다. 핵탄두 장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그 유력한 수단으로 삼으면서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 미국 지도자의 '말폭탄'이 북한의 '핵폭탄' 생산에 거름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난처한 입장에 처한 당사자는 바로 한국이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와 미국의 전쟁불사론이라는 '이중 공포'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게 세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는 '공포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중의 공포심이 악순환을 그리면서 확대재생산되면, 한국이 처한 외부 위협과 내부 모순마저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극대화되고 만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시대에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교훈은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이다. (☞ 관련 기사 : 10조 더 쓰자는 그들…'사드 판촉사원'인가?)

둘째는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정부 고위 관료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군사 옵션'은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평화적 해결"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 원칙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견지되어야 할 대원칙이다. 하여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의 극단적 발언에 대해 분명하게 항의해야 한다.

끝으로 미국이 말하고 한국도 동조해온 '외교적 해법'을 재검토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있다", "현재로서는 외교적 해법을 선호한다", "외교로 안 되면 군사 옵션을 강구하겠다". 문제는 조건부 대화, 강력한 대북 제재와 무력시위, 그리고 중국 책임론에 경도된 외교적 해법이라는 것이 '실패한 외교'를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데에 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실패할' 외교가 실패로 끝나고 실질적이고도 감당하기 어려운 전쟁 위기가 다가오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단호한 결기와 구체적인 해법을 가지고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자고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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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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