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어떻게 미국에 선제공격을 했나

[정욱식 칼럼] 1차 세계대전과 태평양 전쟁의 교훈은?

"미국은 대북 원유 공급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관련국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북한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자신의 국가안보에 사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일본이 1941년에 선택했던 것, 바로 먼저 공격하는 것이다. 이건 전쟁을 의미한다.

북한은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외부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충분한 연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려고 할 것이다."

일본 환태평양경제연구소의 미무라 미츠히로 주임연구원이 9월 7일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와 인터뷰에서 내놓은 섬뜩한 경고이다. 그는 1996년 이후 45차례 북한을 방문해온 일본 내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이다.

일제가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침략 전쟁을 거듭하자 미국은 1941년 8월 일본으로 향하는 원유 수송로를 끊었다. 이에 대한 일제의 선택은 그해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 기습 공격이었다.

이를 두고 미츠히로는 "일본이 자위에 필요한 최소한의 연료가 바닥날 때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며, 유사한 상황이 한반도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정치체제가 당시 일본과 유사하다"는 분석과 함께.

이러한 경고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귀담아 들을 필요는 있다. 선제공격이든 예방전쟁이든, '전쟁불사론'은 워싱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발과 제재가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한반도는 '아마겟돈'의 문턱을 향해 가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판단할 때, 혹은 북한이 미국 주도의 제재와 군사적 압박이 북한식의 '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여길 때, 한반도 전쟁위기는 급격히 고조될 것이다.

그런데 이는 기우만이 아니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6차 핵실험에 대한 응징 조치로 대북 유류 공급의 30%를 끊고, 연간 10억 달러 정도의 북한 수출을 차단했다. 이에 대한 북한의 응답은 괌 타격 능력을 입증한 중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였다.

그러자 미국은 대북 원유 공급을 완전히 차단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에 동의할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추가적인 제재는 유류 공급을 더 차단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악순환이 거듭되면 북한은 미국 등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것처럼 '굶주린 양'이 아니라 '굶주린 야수'가 될 공산이 대단히 크다. 그리고 북한은 '굶어 죽느니, 싸우다 죽겠다'는 결기를 내보일 것이다. 그 결기에 '미친 자의 이론'을 즐겨 사용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물러설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그래서 누군가는 '게임 체인저'가 되어야 한다. 그건 바로 전쟁 발발시, 혹은 전쟁 위기가 고조될수록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정부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 제재와 사드 배치를 비롯한 군사력 강화를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과 그 이전에 있었던 1차 세계대전은 전쟁을 막고자 선택한 방법들이 전쟁을 재촉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미 관계의 양상이 이런 가능성을 키우고 있어 더욱 큰 우려를 자아낸다.

▲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15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하여 문재인 정부는 대북 원유 중단 요구 등 대북 제재의 선봉에 서려고 했던 실책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제재 만능주의'의 한계를 미국 등 국제사회에 분명히 지적하면서 냉각기라도 갖자고 설득해야 한다. 얼굴을 붉히고 언성이 높아지더라도 트럼프 행정부와의 '끝장 토론'에 나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햇볕정책의 계승·발전을 다짐한 바 있다. 그래서 그 진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자 남북 화해협력 정책인 햇볕정책은 얼핏 보면 북한을 상대로 한 정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절반만 본 것이다. 오히려 햇볕정책의 진수는 대미정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북정책을 놓고 갈 길을 잃었던 미국에 한국이 가야 할 길을 비춰주면서 양국이 동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초기와 비교할 때 문재인 정부가 처한 상황은 너무 다르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DJ 정부 초기 때에도 결코 만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연착륙론, 즉 북한의 평화적인(?) 붕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또한 1998년 8월에는 북한의 금창리 핵의혹 시설 논란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미국 내에서 대북 강경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당시 한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기금(IMF)에 경제적 생존을 위탁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김대중 정부는 공미증(恐美症)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을 갖고 클린턴 행정부와 때로는 얼굴을 붉히면서 미국의 대북정책을 견인해냈다. 이게 바로 햇볕정책의 진수다. 서울이 워싱턴을 움직일 수 있을 때 평양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DJ의 베를린 선언과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의 엇갈린 운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으로는 '페리 모델'을 검토했으면 한다.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이 총체적인 난맥상에 빠지면서 외교안보 라인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당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 지는 4개월 정도밖에 안 된다. 또한 주요 인사의 교체는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페리 모델'을 제안하는 것이다. 윌리엄 페리와 같이 실질적인 권한을 갖는 대북정책 조정관을 임명해 심기일전에 나서보자는 것이다. 그 대상으로는 '비상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교수뿐만 아니라 대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과 악연을 맺었던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도 그 후보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이를 검토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에게도 흡사한 제안을 해볼 것을 권고한다.

어느덧 한국은 운명적 순간에 다가서고 있다. 내년은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다.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는 정전체제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기를 간절히 희망하지만, 전쟁이 엄습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처지이다.

하여 문재인 정부는 다가오는 운명적 순간에 대비해 조속히 역사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전쟁 위기와 핵 문제를 평화체제라는 커다란 용광로에 녹여 내겠다는 단호한 결의와 구체적인 정책 로드맵을 가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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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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