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핵 재배치? 미국이 원하지 않는다

[기고] '국가 안보 전략' 없는 무책임한 발상

한반도에 '대화'의 단비가 내리지 않아 남북관계가 황무지로 변해가고 있다. 오랜 가뭄 탓이다. 주변 정세를 둘러보아도 단기간에 가뭄이 해소될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한국이 마중물 역할을 하고 미국과 중국이 큰 물꼬를 터주기를 기대했지만, 현재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북한은 정권수립 69주년인 9월 9일 <로동신문> 사설을 통해 '핵보유국'으로서 국력이 높아졌다면서 '최첨단 주체무기'를 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강력한 국가 핵무력이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확고히 담보하고 있다"고도 했다. 김정은이 이참에 미국과 담판을 지을 기세다.

반면에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배치로 여론이 악화되자 9월 8일 '입장문' 형태로 밝힌 글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드 임시배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탄생에 일조를 한 진보진영은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이다. 불과 집권 5개월 만이다.

여기에다 핵무장 담론의 둑이 터졌다. 여기저기서 전술핵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1000만 서명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은 워싱턴으로 가서 국내 분위기를 전달하겠다고 한다. 어차피 핵무기를 완제품으로 구매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한국 핵무장 허용을 잠시 언급하기도 했던 트럼프 대통령을 어떡하든 설득하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지상군 개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국내정치적 문제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상군 개입도 최소화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핵무기로 미국과 동맹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실제 일부 연구 자료를 보면 당시 전술핵 배치는 미국의 군사원조 감축과 한국군의 병력 감축을 이끌어내기 위한 도구적 성격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술핵 재배치(再配置)는 주한미군 축소 내지 철수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과 배치(背馳)되는 셈이다.

미국이 1957년 1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결정에 따라 1958년 1월에 배치하고 이후 1991년 12월에 일방적으로 뺀 전술핵을 다시 한반도에 반입하기에는 적지 않은 난관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질적으로 새로운 무기를 한반도 내에 배치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전협정을 위반한다는 주장은 논외로 하더라도,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는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야당과 일부 여당 인사들은 어떤 '정치·경제·군사적 전략'으로 미국 행정부(국무부와 국방부도 의견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려움)와 의회(공화당과 민주당)를 설득하려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언론 보도에 나타난 이들의 주장만 보면 마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격렬한 반발이다. 전술핵을 도입할 경우 고고도미사일방어망(THAAD‧사드) 배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경제·외교·군사적 보복조치가 불가피하다.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는 전술핵 배치가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미국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1956년 9월에 작성된 프로크노우(Prochnow) 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전술핵을 배치하는 결정적인 이유도 한국에 대한 단순한 군사원조가 아니라 외부의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역내 군사동맹국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었다. 한·미·일 대 북·중·러 세력 대결의 재현이다. 게다가 이념적으로 첨예하게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진보성향 정부가 국가적 응집력을 결속시킬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셋째, 세계를 관리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당장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함으로써 얻을 이익이 현상유지를 통해 얻는 이익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이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전술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 관점에서 한반도는 여전히 우선순위가 낮은 지역이다. 전술핵 배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反感)도 미국으로서는 적잖은 외교적 부담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전술핵 재배치를 지지하는 미국 정치인과 워싱턴 내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

전술핵 재배치 문제는 고도의 정치·경제·군사적 전략을 필요로 한다. 주한미군분담금 협상, 자유무역협정 협상, 전시작전권 환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한미원자력협력협정 등 외에도 중국, 러시아, 북한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설정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단칼에 해결할 수가 없는 구조다.

정부 내에서도 이를 두고 다각도로 검토 작업이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그러지 않고서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관계자에게 청와대 고위급 인사가 전술핵 이야기를 꺼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헨리 키신저는 "힘의 균형이야말로 평화의 전제 조건"이라고 했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마주하고 살면서 어느 정권도 힘의 균형은 고사하고 '국가핵안보 전략'조차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 개탄할 일이다. 설계도 없이 집을 짓지 않듯이, 국가핵안보 전략도 마련하지 않고서 전술핵을 요구하거나 핵무장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명분과 이치에도 맞지 않다. 자칫 본래 의도와 다르게 포퓰리즘적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핵무장의 깃발은 높이 드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현실 속에 깊숙이 묻어 두어야 할 '내밀한 과업(mission)'일 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북한 핵에 명민하게 맞상대하기 위해서는 일시적, 감정적 접근이 아닌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자세로 국가핵안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기술적 이행은 그 다음이다. 한반도에서 안정적인 평화를 유지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핵전쟁이 돌발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역대 최고로 높아졌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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