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옥인동 참여연대 건물에서 열린 토론회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정책, 이대로는 안 된다'에서 패널로 나선 김동엽 경남대 교수,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이혜정 중앙대 교수,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대표는 한목소리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사드 배치를 계속 추진하고,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지속 실시한 것이 북한에게 6차 핵실험 이외의 선택지를 주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제재와 압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의 실효성을 근본적으로 의심하면서, 이번 핵실험을 통해 북한이 노리는 바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한 국제사회로의 복귀와 경제 발전일 것인 만큼 결국 사태의 해법은 외교 협상에 있음을 강조했다. 다만 미국 정부의 준비 상태와 미국 내 여론, 그간 문재인 정부의 행적과 그에 대한 북한의 반응 등을 변수로 놓고 봤을 때, 협상을 통한 해법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토론자들 간에도 의견이 갈렸다.
김동엽 "사드 적폐 떠안는 게 촛불 정신이냐"
김동엽 교수는 "현 정부는 북한이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에 속도 조절을 할 것이라는 자기 희망과 최면에 빠져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 대북 전략·정책을 추진했다"며 "북한 김정은 정권과 미중관계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주변 정세 변화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10년 전의 시간 속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북핵 능력 고도화에 따라 '동결 입구론'을 앞세운 동결-비핵화 단계론만으로 북핵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고, 비핵화와 평화 체제의 맞교환도 불가(한 상황이 됐다)"며 "남북관계 개선에 앞서 트럼프의 '최대 압박과 관여'라는 모순에 동조하고, '미국을 설득한다'는 한미관계를 우선 고려한 정치적 판단으로 인해 북한을 (협상으로) 유인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사드 추가 배치에 대해서도 "대북 압박 효과도 미흡하고 미국으로부터 받았다는 '주도권'조차 무의의미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갈등만 심화된 비합리적·비전략적 선택"이었다며 "다른 분야에서 잘하고 있는 것을 안보 분야가 다 까먹고 있다. 지난 정부의 적폐를 왜 이 정부가 끌어안나? (사드 배치 등) 지난 정부 적폐를 '덮고' 가겠다는 것은 '촛불'에 대한 무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85%는 '집토끼'이니 15% 보수만 잘 구스르면 된다는 것이냐"며 "왜 15%를 버리지 못하고 '조중동' 눈치를 보고 미국에 뛰어가 허락을 받느냐. 그게 촛불 정신이냐"고 비분강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현 상황에서 북핵과 사드 문제는 국내정치나 국제사회 고려보다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을 통한 보다 대담한 모험적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통치권적 차원의 결단을 통해, 근본적 북핵 문제 해결과는 별도로 조건 없는 남북대화 개시를 통한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를 유예시킴으로써 (북핵의) '고도화'를 우선 차단해야 한다. 단계적, 다원적, 포괄적 '한국형 로드맵'을 작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또 "지금 북미 간 대화가 안 되는 것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도발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이 준비가 안 되어서"라며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오늘 선언하면 내일 당장 북미 협상이 이뤄질까? 턱없는 소리다.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도 아직 선임 안 됐다. 아직 오바마 때 임명된 사람이 대리 체제로 (업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북한은 미국 대선이 끝난 1월부터 약 6개월 후인 올해 7월에 맞춰서 미국과 한판 승부를 벌이려고 로드맵을 짰고, 그래서 지난 7월에 ICBM 발사를 한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그런데 미국이 (그 후로도) 2개월 동안 링 위로 올라오지 않으니 판을 다시 짜기 위해 핵실험을 한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 교수는 현재 미국 트럼프 행정부 내의 상황을 감안할 때 미국의 대북 외교 라인이 진용을 갖추는 시점은 빨라야 올해 12월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앞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올해 말쯤 돼야 미국이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본 것과 대강 일치하는 시기다. (☞관련 기사 : 정세현 "북한, 금년 내에 수소탄 실험 또 할 것")
이남주 "문재인 정부, 보수세력에 '하이재킹' 되면 안돼"
이남주 교수는 "압박과 제재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지난 10년간 압박과 제재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더 빠르게 만들었던 객관적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현재 한미 양국의 보수 세력이 "원유공급 중단 등의 행동을 중국에게 요구"하고 있는 데 대해 "중국이 북중관계를 적대적 관계로 만들 이려한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는 사실은 둘째로 하고, 만약 이러한 방식의 대북 제재가 이뤄진다면 한반도 상황은 준전시 상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이 북한에 원유 공급을 종단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북한이 붕괴될 경우 난민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고, 중국의 현실적 걱정은 그 후 전개될 준전시 상황, 군사적 긴장이 동북아를 위험하게 만들어 그것이 중국의 국가이익에 해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일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이 현재 사태의 원인이라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기존 정부와 뚜렷하게 차이가 있는 새로운 대북정책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라고 반박하며 "객관적 사실은 지금까지의 제재와 압박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강화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오히려 그 빌미가 되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제재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국민 정서를 이용하기 위한 성격이 크다. 한국의 보수가 안보 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생각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북핵과 관련한 수구적 논의는 사실 북핵 문제를 해결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정치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
이 교수는 "북핵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기대가 적지 않았지만 현실은 문재인 정부도 관성적 사고에 입각한 접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구체적 전략은 없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논리로 북한을 대화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를 했고, 여기에는 자신의 시도에 북한이 호응을 해줄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핵·미사일 실험을 반복한 결과 국제적 고립은 심화되어 북한은 북한대로 큰 비용을 치렀다. 때문에 단순히 대화를 재개하는 것은 결코 현재 북한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목표에 대해 "몇 년 전부터 나타난 것처럼, 경제적 이익을 조금 얻겠다는 게 아니라 동북아 질서를 바꾸는 현상타파적 전략을 실행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북한 도발에 대해 강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일단 국내 여론을 관리해 가자'는 접근은 결과적으로 대북정책에서 자신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머지않아 수구 세력에 의해 하이재킹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상태에서 사회 개혁이 순조롭게 추진될 리도 만무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단순히 북의 도발에 대한 감성적 (국내 여론의) 반응에만 영합하는 식의 대응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고, 그 과정에서 이후에 주워담기 어려운 발상과 주장들도 출현하고 있다"며 사드 배치에 대해 "현실 논리로 거짓 주장을 합리화시켰다. 이것이 지난 정부가 넘겨준 부담이라는 정상참작 요인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많은 주장과 결정은 온전히 문재인 정부의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향후 해법에 대해 "문제는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한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평화협정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라며 "당장 시급한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강화 속도를 늦추고, 이를 통해 마련된 초보적 신뢰를 다양한 교류협력 사업을 통해 확대시켜가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또 한국 시민사회 내의 과제로 "문재인 정부의 강경 대응에 대해 사람들이 '이렇게 강경하게 잘 하고 있다', '경제·사회는 진보적으로, 안보는 보수적으로 잘 하고 있다'고 평가하는데 이것은 극복해야 할 문제"라며 "'안보는 보수'라는 말이 그럴듯 하지만 이것은 보수가 아니라 거짓에 기초한 비현실적인 논리다. 수구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만족시키기 위한 '안보 담론'을 수용하고 따르는 것을 '안보는 보수'라고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고 시민사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혜정 "文정부, 골든타임 이미 날려…다 끝났다"
이혜정 교수는 참석자들 가운데 가장 비관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이 교수는 "군사적 대치는 한반도의 새로운 정상 상태, '뉴 노멀(new normal)'이 될 것"이라며 "촛불 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그 날의 한반도 평화에 대한 희망은 사라졌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에 적극적인 협력을 다짐하면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통해 남북관계를 타개할 카드는 버려졌고, 사드 배치를 확약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할 기회 역시 날아가버렸다"며 "워싱턴에서 굳은 한미동맹, 특히 한미일 군사협력을 다짐한 이후에 발표된 '베를린 선언'은 한반도의 영구한 평화체제를 위한 대범한 구상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한미동맹의 논리로는 절대 한국이 한반도 평화의 '운전석'에 앉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문 대통령은 베를린에 가기 전에 워싱턴에 가면서 '골든 타임'을 다 놓쳤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9년 동안 막힌 5.24 조치,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을 어떻게 뚫을지 기대했을 텐데, 특사도 안 보내고 대북제재 동참하겠다, 조건이 안 되면 (북한과) 아무 것도 안 하겠다고 하는데 북한이 한국이랑 뭘 하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요구한 '쌍중단'(한미 연합훈련과 북한 핵·미사일 연습의 동시 중단)에 대해 한국은 '미국이 요구하는 정답'을 냈다. '한미 연합훈련은 합법적 훈련이고 북한의 핵·미사일은 안보리 결의 위반이니 교환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미국이 기대하는 정답이지 한반도 평화의 정답은 아니다"라며 "사드의 절차적 정당성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에 (배치를) 확약해 주면서 중국은 기대할 게 없어졌다. 모든 게 다 날아갔다"고 통탄했다.
이 교수는 예방전쟁 불사 등 극단론을 배제한 미국 조야의 견해를 소개하며, 그러나 이 가운데 어떤 견해에 따르더라도 한국은 제3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전 라이스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주장한 '핵 억지론'과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제기한 '북미 양자 직접협상론',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예방적 외교론' 등의 관점을 소개한 뒤, 라이스의 주장에 따른다면 한국은 사드 등 방어체계 배치와 추가 제재 등 대북 억지력을 높이는 데 가세해야 하며, 클래퍼나 키신저의 관점에서 봐도 결국 협상 주도권은 미국에 있을 뿐 한국은 "구경꾼이나 보조 역할에 머무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긴장을 완화해야 할 책무가 정부에 있는데, 결국 송영무 국방장관이 주장하는 항시적 준전시상태로 가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정부는 그것(긴장 완화 실현)은 끝났고 희망은 없다"며 "굉장히 좋은 역사적 순간을 놓쳤다. 한국 보수는 지리멸렬하고 미국에도 공간이 있었는데 이남주 교수 표현대로 '주워담기 어려운 발상'들만 던져놓고 이제 어쩌겠다는 거냐"고 한숨지었다.
이승환 "文정부, '트럼프에 묻어가기' 했다"
이승환 대표도 현실 인식 면에서는 앞의 발표자들과 견해를 같이했다. 이 대표는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을 "트럼프 정부에 묻어가기"라고 규정하면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는 것은 무엇보다 북한의 핵능력 강화 명분과 계기를 박탈하는 것이나, 문재인 정부는 발빠른 한미 정상회담에 나서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희망적 사고'로 접근했고, 시간을 다투는 고강도 대응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압박과 대화 병행'이라는 어정쩡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북한에 보내는 신호가 분명하지 않거나 잘못 전달됐고, 북한 핵 폭주의 명분과 계기를 약화시키고 북한을 고민하게 만드는 카드는 던져 보지도 못하고 북한의 ICBM 발사 등 악순환에 말려들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 역시 이혜정 교수와 마찬가지로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합법이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은 불법이므로 양자의 교환은 불가하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준' 설정으로, 북한의 핵 폭주 명분과 계기를 박탈하고 대화에 대해 북한을 고민하게 만드는 유일한 입구는 봉쇄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행동을 할까 말까 고민하게 했어야 하는데, 전혀 엉뚱한 메시지를 내 버렸다"며 "그때부터 북한은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한반도 '운전자'가 아니라, 이미 한반도는 자율주행 모드로 넘어가 운전자가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고 비유했다.
이 대표는 향후 "북한은 중국이 말하는 '쌍중단'에서 '쌍궤병행'으로 가는 비핵화 경로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북한은 쌍중단이 아닌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전제조건으로 삼으면서 '동결과 평화체제'의 신(新)쌍궤병행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면서 "결국 향후 한반도의 남북관계는 핵 동결과 평화체제 병행의 협상이 초점이 되는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 대표는 "현재 북한에 대한 옵션은 이론적으로는 군사 옵션, 정권 변환(레짐 체인지) 프로그램, 제재 강화와 장기 압박 고립체제 유지(신 전략적 인내), 협상 타결 모색의 4가지"라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군사 옵션이나 레짐 체인지는 대안이 되기 어렵고 결국 "장기 압박을 유지할 것이냐 협상 타결을 시도할 것이냐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 대표는 장기 압박 체제라는 선택에 대해 "최종 도달점이 파국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고, 북한은 굴복 대신 괌 위협과 같은 행태 반복과 대남 군사도발 확대 등을 통해 집요하게 한미를 압박할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북방 신 경제지도 구상의 좌절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는 한국만 손해보는 구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협상 타결 가능성에 대해서는 협상의 출발점인 "북핵 동결과 장기 과제로서의 비핵화, 즉 사실상의 핵보유 인정"에 대해 "사실상 북미 모두 원하는 구도일 수도 있으며 이는 한국이 가장 원하지 않는 구도이고 (한국·일본의 핵무장으로 이어지는) '핵 도미노'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의 하나는 핵 동결 협상을 '종전 선언' 수준에서 처리하고 비핵화 협상과 북미·북일 수교 협상 등과 연계하는 프로세스를 통해 한국 역할을 확대하고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이끄는 '1과정 다단계 협상' 방안"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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