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게임체인저' 역할 할 때

[현안진단] '말폭탄' 잔치의 한반도 8월 위기

지난 7월 북한이 두 차례 화성14호를 발사하고, 이에 대응하여 국제사회가 UN 대북제재결의안 2371호로 대응한 이래 '한반도 8월 위기설'이 급속히 확산되어 나갔다. 북한과 미국 양측은 상호 전쟁 불사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상대방에 대한 군사공격 시 핵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한반도 8월 위기설은 8월 9일 인민군 전략군 사령관 김락겸의 언급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김락겸은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괌도 주변 네 곳을 동시 타격하는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는 고강도의 발언으로 미국을 압박했다. 김락겸은 화성12호를 발사하여 1065초간 3356.7km를 비행하여 괌 주변 인근 30~40km 해역을 타격하겠다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함으로써 실제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음을 암시했다.

이에 대해 미국도 고강도로 맞대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우리의 핵무기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며 북한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외교안보라인의 입에서도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에 대한 언급들이 쏟아져 나왔다.

북‧미 간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실제 북한이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그러나 사실 북한이 괌도 타격 발언을 실현할 의지가 있었느냐 하는 것은 달리 보아야 할 측면이 있다. 육상에서도 관측이 가능한 거리인 괌도 주변 인근 30~40km 해상에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떨어진다면 이는 선전포고를 넘어 전쟁행위에 가깝다. 괌에 대한 도발은 미국의 초강경 군사대응을 초래할 것이 명백하다는 점을 북한이 모를 리 없다.

실제로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호로 괌도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지금까지 북한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은 고각 발사 형태로 최대고도를 달성한 후 거의 수직으로 하강하는 형태를 보였으며, 단 한 번도 일본열도나 동해를 넘어 정상 각도로 발사된 적이 없다. 그동안 발사된 대포동 및 은하계열 로켓은 동해와 일본열도를 벗어났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우주 발사체이며 대기권 재진입을 시도한 적도 없다.

또한 북한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이 동시에 발사된 적도 없다. 스커드 또는 노동과 같은 단거리 미사일의 경우 2~4기가 동시에 발사된 적은 있으나 중장거리의 경우 모두 단발 발사형태의 시험발사였다. 특히 북한이 ICBM이라고 자랑하는 화성14호의 경우는 2차례 모두 이동식 발사대가 아닌 고정식 거치대에서 발사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정상 각도 및 동시 발사를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화성12호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괌 인근을 동시 4발 타격하겠다는 김락겸의 언급은 허언에 가깝다.

▲ 지난 23일 국방과학원 화학재료 연구소를 시찰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 ⓒAP=연합뉴스

상처 받은 한반도의 평화

8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한반도의 긴장국면은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김정은은 8월 14일 조선인민군 전략군 사령부를 방문하여, "미국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보겠다"고 언급함으로써 수위를 조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김정은이 우리를 존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으며, 같은 날 틸러슨 미 국무장관도 "머지않은 미래에 대화로 가는 길을 볼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초강경 대립국면을 벗어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대화 모색의 단초를 찾을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8월 위기의 진행 과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대립과정에서 양측 공히 전쟁불사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핵무기의 사용가능성까지 드러냈다.

문제는 비록 '말폭탄' 형식이었지만 북‧미간 대립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입지를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상황에 당사자인 한국의 입장이 중시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8.15경축사를 통해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만은 막을 것이며, 누구도 한반도에서 한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강조한 이유이다.

그러나 미국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미국 일각에서는 "미국은 외부의(한반도 이외의) 군사적 자산으로 북한을 공격하게 될 때 한국의 승인도 협력도 필요하지 않다"거나 "일본이나 호주 등 다른 동맹국들도 한국의 승인 없이 미군의 군사작전에 참여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등장했다. 버웰 벨, 제임스 셔먼 등 비록 전직이지만 모두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인물들의 언급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거져 나온 직선적 반응으로 볼 수 있지만, 핵전쟁까지 염두에 둔 전장(戰場)이 한반도라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결코 간과할 일이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무력을 사용해 해결한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파괴되고 말 것이며, 한반도의 미래는 절망에 빠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전쟁 불사'가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지킬 것이며, 한미동맹의 협력을 통해 전쟁을 막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나서야 했다.

한반도에서 불가피하게 전쟁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한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절대 명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반도 8월 위기의 진행 과정에서 한반도의 평화는 도전을 받았으며, 한국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되새겨야 할 교훈은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이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구조적 사고에 머물지 않는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주도의 비핵화‧통일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한국과 주변국들의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와 전략적 목표는 같지 않다. 미국과 중국에게 중요한 것은 남북한 통일이 아니며,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안정적 관리일 뿐이다.

"우리의 평화적 압박 캠페인의 목적은 한반도의 비핵화이다. 미국은 북한의 정권교체나 한국의 조속한 재통일(accelerated reunification of Korea)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북미 간 대립이 정점으로 치닫던 8월 중순 미국의 틸러슨 국무장관과 매티스 국방장관이 <월스트리트저널>에 공동 기고한 글에 포함된 내용이다.

중국 역시 중시하는 것은 미‧중간 패권경쟁에서 안전판 역할을 해주는 완충지대(buffer zone)로서의 북한이며, 중국의 영향력이 불확실해질 수 있는 통일 한반도가 아니다. 김정은 정권이 우선하는 것은 정권 안보와 체제수호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핵‧미사일 개발의 이유도 정권의 생존전략에 해당한다.

북핵 문제의 해결과 아울러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달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중장기적인 통일로드맵을 실현하는 과제는 한국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대북‧통일정책의 핵심적인 두 기둥으로 '비핵화'와 '남북관계'를 설정한 것은 타당하다. 국제협력을 통한 비핵화와 한국주도의 남북관계는 오랫동안 상식적인 등식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이 등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국제협력을 통한 비핵화 노력은 현재까지는 실패했으며, 북한은 이제 핵 무장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북핵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해관계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북한 및 주변국들이 한국의 전략적 목표와 다른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상존한다. 따라서 어렵더라도 한국은 비핵화 과정을 주도해야만 한다. 비핵화 협상이 한국의 전략적 목표와 상충될 가능성을 방지해야 하며,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또한 한국은 종국적으로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남북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북핵 위기의 엄중성과 장기적인 남북관계의 교착국면을 고려했을 때 단기간에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제2의 한반도 8월 위기의 반복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위기상황 발발 시 한국이 적절한 안보적 레버리지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한반도의 전시작전권조차 가지지 못한 우리의 처지는 북‧미 간 군사적 충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무력하기 그지없을 뿐이다.

전시작전권이 환수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는 문 대통령의 8.15경축사도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 지난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72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중요한 것은 북한 및 주변국들이 한국의 입장에 관심을 가지고 무겁게 보는 힘을 확보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 북핵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 스스로의 레버리지를 가져야 한다. 그 출발점은 전시작권권의 조속한 환수이며, 이를 토대로 한미동맹도 미래지향적으로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전시작전권은 유사시 한국이 스스로의 군사적 결정을 내리는데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며, 이는 한반도 8월 위기의 진행과정에서 이미 확인된 바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라면 미국에 대해서도 확실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처럼 전쟁이 일어날 경우 그 장소는 미국이 아닌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장과 관계없이 미국 내에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과 주한미군 철수라는 민감한 논의들이 심심치 않게 회자되고 있다. 모두 미국의 국익만을 고려한 일이다. 우리도 역시 국익과 한국의 안보를 우선으로 하는 동맹인식을 견지해야 한다.

북한에도 단호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북핵과 한반도 문제는 한국과의 협의와 동의 없이 북‧미 협상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우리도 언제든지 'NO'라고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북한의 핵능력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비핵화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단호한 반대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또한 남북관계 없이 북한 정권의 안정과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알게 해주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23일 "봄은 반드시 오는 것이므로 봄이 왔을 때 씨를 잘 뿌릴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튼튼한 씨앗이 아니면 폭염과 바람을 이기지 못하며 결국 결실의 가을을 맞지 못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튼튼한 씨앗은 주변국들이 한국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가 주도하는 비핵‧평화 프로세스에 동참하게 만드는 레버리지이다. 이제 우리가 게임체인저가 되어 한반도 비핵‧평화의 로드맵을 주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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