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공론화위가 문제? 프랑스에선 일상

[복지국가SOCIETY] 공론화위원회의 제도적 확립이 중요한 이유

지난 6월 27일, 국무회의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을 결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실천하려는 것이다. 이어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도 노조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던 이사회를 다음 날인 7월 14일 전격적으로 개최했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기간 중 공사의 일시 중단을 의결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는 원전 건설 공사를 재개할지, 아니면 영구 중단할지를 놓고 원자력 발전 지지 세력과 원전 반대 세력 간의 찬반 논쟁이 뜨겁다.

원자력 에너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원자력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원보다 경제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원전의 안전성 문제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원자력 에너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원전의 안전성 문제를 거세게 제기한다. 또 핵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고려하면 원자력 에너지는 경제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이처럼 양측의 이견은 좀처럼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출범한 것이 '공론화위원회'이다. 이 기구는 위원장 1명과 위원 8명으로 구성돼 지난 7월 24일부터 공식 가동에 들어갔다.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에는 대법관 출신의 김지형 변호사가 이낙연 국무총리로부터 위촉장을 받아 3개월간의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숙의된 공론을 모아내는 게 이 기구의 역할인데, 이 공론은 일반적인 여론과는 다르다. 통계학적으로 공정하게 선발된 수백 명의 시민들이 찬반 양측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공부하고 숙의해서 최종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숙의 모델의 참여적 의사결정(민주주의) 구조로 간주된다.

이번 결정은 3개월 내에 이루어져야 하므로 늦어도 10월 하순쯤이면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7월 11~13일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에 대한 찬성 의견은 41%였다. 공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37%)을 조금 앞섰다. 대통령 지지율이 80% 내외인 점에 비춰보면, 이는 매우 팽팽한 것이다. 장차 어떤 어떤 결정이 나더라도 우리는 이를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이게 숙의 민주주의의 절차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하의 글에서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프랑스의 공론화위원회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 탈핵 울산시민공동행동은 2011년 11월 15일 울산시청 앞에서 울산에 들어설 예정인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공공 토론을 제도화한 프랑스의 사례

우선 우리보다 20년 앞서 공공 토론을 제도화한 프랑스의 사례를 살펴보자. 프랑스는 이미 고속철도 지중해선(TGV-Mediterranée) 건설과 르와르(Loire) 지역 개발로 인한 환경 분쟁으로 인해 몸살을 크게 앓았다. 그래서 프랑스는 일찍부터 공적 갈등 예방의 필요성을 깨닫고, 정부 주도형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공공 토론의 제도화 방안을 마련했다. 그것이 바로 공공갈등 사전 예방기구인 공공토론위원회 CNDP(Commission Nationale du Débat Public)이다.

공공토론위원회는 '풀뿌리 민주주의 관련 법' 제2002-276호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는데, 프랑스 정부가 직접적인 개입을 지양하는 주요 부문들을 관리하는 독립 행정기관들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정부의 명령이나 지시로부터 자유롭다. 정부가 공공토론위원들을 임의로 해고할 수 없기 때문에 위원들의 5년 임기가 보장돼 자율적인 업무 처리를 할 수 있는 상설기구이다.

CNDP는 공적 갈등이 가장 많이 불거졌던 환경과 국토개발 사업의 기획 단계에서 대중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최근에는 그 실효성을 인정받고 공공 토론의 대상을 신기술의 안정성 검토 등의 여러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CNDP는 먼저 사업의 규모와 종류에 따라 의무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업의 공공토론 개최 여부를 결정하고, 공공 토론이 선택적으로 적용 가능한 사업의 경우에는 사업자와 국회의원 10명 등을 포함한 프로젝트 관리팀의 요청이 있을 때 공공 토론의 필요성 여부를 검토한다.

그리고 공공 토론 개최가 결정된 사업에 대해서는 임시기구인 공공토론특별위원회 CPDP(Conseil Particulier du Débat Public)가 공공 토론의 구체적인 조직과 운영을 전담하게 된다. 이때 토론 기간은 최대 4개월이지만, CNDP가 전문가 자문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2개월의 기간이 더 주어진다. CNDP는 공공 토론에 주민들의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토론이 객관적이고 형평성 있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감독하고, CPDP가 토론 종료 후 작성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한 종합보고서를 공개·발표하고 사업자에게 권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CNDP의 목표는 사업의 기획부터 종료 시까지 대중의 집단적 의사를 공론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권고 사항인 CNDP의 종합보고서를 사업자가 반드시 수용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공공 토론이 실시된 사업들의 70% 이상에서 이전의 사업 계획이 수정되거나 취소되었다. 이를 통해, 프랑스의 공공 토론이 사업자로 하여금 국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숙의 민주주의 제도로서 그 실효성이 입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갈등 해결을 위한 공론화위원회 제도의 올바른 발전 방향

그렇다면 프랑스에서 성공한 공공 토론 제도를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참고하고 도입하면 좋을지를 논의해 보자. 이는 '숙의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므로 장차 복지국가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할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첫째, 공론화위원회의 법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원전 공론화위원회는 법률에 근거한 프랑스와 달리 국무총리 훈령으로 운영될 따름이다. 프랑스의 CNDP와 같이 조직, 운영, 예산의 독립성을 완전하게 보장해주는 독립 행정기관으로 지정해서 공론화위원회를 상설 기구로 해야 한다. 그래서 각 사업의 공공토론을 전담하는 임시기구를 따로 만드는 조직 이원화 구조를 취하도록 함으로써 공공 토론의 관리와 운영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공론화위원회를 정부 부처로부터 독립적인 '국가 갈등 조정 기구'로 설정하면, 토론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또 공공 토론에 대중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여 집단의 의사를 공론화할 수 있도록 공공 토론의 운영을 전담하는 특별기구(ad-hoc 조직)을 만들어 공론화위원회가 공공 토론의 관리에 집중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갈등 조정 기구로서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공공 토론의 개최 여부를 의무적으로 검토할 사업의 범위를 정한다. CNDP의 공공 토론 대상 사업 기준을 참고하여 공공 토론 개최 여부를 의무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업과 선택적으로 검토하는 사업의 종류를 설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주도 사업들 중에서 사업의 규모가 5000억 원 이상인 것을 의무 검토 대상으로 정하고, 공적 갈등이 예상되는 원자력, 고속도로, 송전선, 대규모 댐, 터널 같은 특정 사업도 규모가 2000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공공 토론 개최 여부를 검토할 수 있도록 한다. 선택적 검토 대상의 경우에는 국회의원 10인이나 관련 지자체 등 특정 이해관계자들의 요청이 있을 시에 공공 토론의 개최 여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중립성 확보를 위해 공공 토론과 조정의 절차에는 그 사업에 개인적ž직무 연관성이 있는 위원들의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 토론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견지하기 위해 프랑스에서는 환경법 L.121-5조로 CNDP와 CPDP의 위원들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이 있는 사업의 토론과 조정에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원전 공론화위원회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수적인 경우, 프랑스에서 하는 것처럼 찬반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구하는 기간을 따로 마련해주면 된다.

넷째, 공공 토론을 위한 임시기구의 구성부터 공공 토론의 개최, 그리고 사업계획의 조정까지 충분한 시간을 보장하고, 의사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온·오프라인으로 토론의 모든 과정을 전부 공개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임시기구인 CPDP를 구성하는 데 4개월, 공공토론을 위한 사업자의 자료 준비에 6개월을 보장하고, 공공토론은 4개월 간 20~40회 정도 개최한다. 그 후 사업 계획 수정 등의 단계도 3개월의 시간을 보장해준다. 이처럼 토론과 조정 절차에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줘야 숙의 민주주의의 합의 형성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지난 20일 한수원은 이사회의 요구로 작성한 문건에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사업(사패산 터널)과 경부고속철도 사업(금정산-천정산 구간)의 사례를 언급하며 “찬반이 명백한 이슈의 경우 공론화 과정을 통한 합의 도출이 곤란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렇지만 두 사건 모두 공론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공론화위원회가 설립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공론의 장이 제대로 구축되었던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위에서 제안한 바와 같이 프랑스의 CNDP처럼 독립적인 상설 갈등 예방기구가 '중대한 사회경제적 효과를 가지거나 환경 또는 국토개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토개발 사업 및 설비사업'에 대해 직접 공공토론 개최 여부를 의무적으로 검토하고 결정하는 시스템을 제도화하여 공론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공토론위원회는 프랑스에서도 사실 이례적인 제도이다. 전통적인 의회주의 국가인 프랑스 사회에서 CNDP 도입에 대해 반발이 있었던 건 당연하다. 그러나 갈등 관리의 비용이 갈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 비용보다 적은 데다 갈등을 예방함으로써 국민이 얻게 되는 편익이 더 크다는 장점이 인정되었고, 이제 숙의민주주의 제도로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숙의된 공론을 형성하고 3개월 이내에 신고리 원전 공사를 재개할지 또는 영구 중단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그래서 공정성이 중요하다. 숙의된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갈등 공화국의 족쇄를 차게 된다. 숙의 민주주의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주춧돌을 놓는 것이다. 이것은 다당제의 합의제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으로 복지국가 민주주의 체제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행복의 역동적 복지국가가 시대정신인 지금, 우리나라에서 공론화위원회의 제도화가 중요한 이유이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근로기준법 59조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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