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배 든 안철수 "극좌·극우 아닌 '극중주의'로 간다"

'제보 조작' 일단락 3일만에…정치적 명분·실리 '악수' 우려

국민의당 대선후보였던 안철수 전 대표가 차기 국민의당 대표를 뽑는 8.27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당 당권 경쟁 구도는 크게 출렁이게 됐고, 이른바 '잠룡'으로 꼽히는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장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표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안 전 대표는 출마 이유에 대해 "결코 제가 살고자 함이 아니다. 당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라며 "제가 다음 대선에 나서는 것을 우선 생각했다면 물러나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제 미래보다 당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저는 지난 5월 대선에서 국민의 열망을 담아내지 못했다. 그 성원을 생각하면서 자숙하고 고뇌했다"면서 "하지만 지난 백여 일 간의 괴로운 성찰의 시간은 물러나 있는 것만으로 책임질 수 있는 처지가 못 됨을 깨우쳐줬다"고 했다. 그는 "지금 우리 국민의당은 몹시 어렵다. 당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이 예전 같지 않다. 당 자체가 사라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엄습하고, 절망과 체념이 당을 휩싸고 있다"고 당의 현주소를 진단했으나 '제보 조작' 파문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이 무너지면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는 빠르게 부활할 것"이라며 "국민은 그저 포퓰리즘의 대상이 되고, 정쟁에 동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중한 다당제의 축은 우리 국민의당이 살아야 유지되는 것"이라며 "선당후사의 마음 하나로 출마의 깃발을 들었다"고 했다.

당 대표로서의 비전에 대해 그는 "당 혁신"을 들었다. 그는 "당을 개혁의 출발점에 세울 혁신의 기수를 찾는 것이 이번 당 대표 선거"라고 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당의 혁신을 위한 방안은 치밀하게 준비해서 신속하게 실천해갈 것"이라며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이제는 인물 중심의 정당에서 시스템 중심, 그리고 가치 중심 정당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게 중요하고 그게 바로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다. 오는 6일 제가 고민해 온 개혁 방향에 대해 간담회를 열 생각"이라고 밝혔다.

극좌, 극우에 대비되는 '극중(極中)주의'라는 신조어를 설파하기도 했다. 그는 정동영·천정배 의원에 비해 자신의 강점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보통 극좌나 극우에 대해 말씀들을 많이 하지만 반면에 '극중'이 있다. 좌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실제로 국민에게 도움되는 일들에 치열하게 매진하는 것, 중도를 극도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극중주의'"라며 "이미 세계적으로도 극중주의로 정권 잡은 곳이 프랑스이고 전 세계적으로 파급될 거라고 확신한다. 대한민국에는 그 중심에 국민의당이 있다. 그 노선에 대해 보다 더 분명하게 국민에게 알리는 기회가 이번 전당대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당 혁신에 앞서 먼저 제 자신을 바꾸겠다"며 "소통의 폭부터 넓히겠다. 먼저 제 정치적 그릇을 크게 하고, 함께하는 정치 세력을 두텁게 하겠다"고 했다. '함께하는 정치 세력'이라는 표현이 바른정당과의 연대를 염두에 둔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바른정당과의 연대는 너무 앞서나간 얘기"라면서도 "우리 생각에 동의하는 정당들을 설득하고 우리 뜻을 관철할 수 있다"고 원론적인 언급을 했다.

그는 대선 패배나 '제보 조작' 사태 파문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 자숙의 시간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는 "대선 패배의 근본적 책임은 제게 있다"며 "스스로 제 한계를 뛰어넘겠다"고만 답했다. 당 내에 자신의 출마를 반대하는 의견이 높은 데 대해서는 "당을 구하는 마음은 같다. 그 방법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이라며 "제가 한 분 한 분 만나뵙고 최대한 소통·설득하고, 전당대회에서 겸허하게 당원들의 판단을 받겠다"고 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3일 오후 당사에서 8.27 전당대회 출마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도대체 왜?…쌓이는 의문

안 전 대표가 결국 전당대회 출마라는 선택을 내린 데 대해서는 여러 방향에서 우려와 의문이 쏟아지고 있다. 결심의 이유와 근거, 명분과 실리 면에서 모두 의문이 제기된다. 출마 선언 이전까지, 그의 출마를 요구하는 의견 자체가 당 내에서나 외곽에서 소수였을 정도다.

명분 면에서는, 기자회견에서 질문이 나온 대로 대선 패배 후유증과 '제보 조작' 사태의 파문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정치 일선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 유권자들이 보기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당 김종회·박주현·박준영·유성엽·이상돈·이찬열·장병완·장정숙·정인화·조배숙·주승용·황주홍 의원은 이날 성명서를 내어 "안 전 대표가 국민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반성과 자숙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고개를 숙인 것이 불과 보름 전이었다"며 "당 대표 출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의원들 가운데는 비(非)안철수계뿐 아니라, 소위 '친안'으로 분류되는 일부 의원도 포함돼 있다. (☞관련 기사 : 국민의당 의원 12명 '安 출마 반대' 성명, 측근들도 우려)

또 전날 안 전 대표와 만찬 회동을 가진 당내 초·재선 의원 그룹에서도 우려 의견이 상당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찬 회동 참석자들이 대개 안 전 대표의 측근 그룹으로 분류되는 이들이라는 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당 중진인 김동철 원내대표와 박지원 전 대표도 안 전 대표와 만나 그의 출마를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리 면에서도, 오히려 잠재적 대선 주자로서 안 전 대표의 정치적 미래를 염려해온 이들이 이번 출마에 대해 큰 우려를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서 야당 대표가 되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정치적 이미지 면에서 불리하다는 점, △이런 상황에서 당 대표로 지방선거를 지휘했다가 선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치명상이 불가피하다는 점, △대선 패배를 차분히 복기하면서 정치적 자산을 쌓아 재기를 모색할 공간이 사라진다는 점 등이 지적된다.

대선 시기 안 전 대표의 측근으로 꼽힌 김경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안 전 대표는 이번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아야 한다"며 "여러 측면에서 부적절하다는 것이 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진심의 정치를 원한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며 준비해야 한다"며 "안 전 후보는 새로운 리더십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국민의당이 추진하는 개혁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후견인 역할을 해야 한다. 과거 대통령 후보 자리도 양보했던 통 큰 정치인이 아닌가"라고 했다.

'조급증'이라는 지적은 김 의원 외에도 여러 이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다. 국민의당 의원 12인 성명에도 "성급하고 초조한 마음에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숱한 정치인들의 전철을 안 전 대표가 밟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이 들어갔다. 안 전 대표의 한 측근도 "조급함"이라며 "지금 안 전 대표의 출마를 요구하는 것은 안 전 대표의 미래를 생각해서 하는 얘기가 전혀 아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자세로 숙고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대선 시기 안 전 대표를 도운 한 핵심 인사 역시 "안 전 대표 출마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기가 살려고 하는 것"이라며 "안 전 대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말리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외곽에서 안 전 대표에게 조언을 해온 이들 가운데서도 '이번에 출마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려를 표시하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패배 후 당 대표직에 도전하는 모양새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비교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홍준표처럼 할 것도 아니지 않느냐. 홍준표와 안철수는 과(科)가 다르다"며 "홍 대표는 (탄핵 찬성 세력) 20%만 보고 가겠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대선 시기부터 안 전 대표에게 비판적 태도를 보여 온 한 의원도 "홍준표가 아주 모범 케이스가 됐다"고 비꼬았다. 안 전 대표 측에서 '홍준표도 당 대표를 하는데 안철수라고 왜 못 하느냐'는 말이 나온 데 대한 촌평이었다.

한 정치평론가는 안 전 대표의 출마 결정에 대해 "지금 가만히 있으면 더 아무 것도 안 되기에 정면돌파를 해야 오히려 살 길이 열린다는 생각, 그리고 정동영·천정배 의원이 당 대표가 된다면 '제3세력'이라는 국민의당 창당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당 일각에서 나온 '정계 은퇴' 이야기가 오히려 (원외 지역위원장 등) 안 전 대표 측의 위기감에 불을 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만약 대표에 당선된다면 이번 정기국회부터 개헌과 선거구제 개혁을 내세우는 것이 안 전 대표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일 것이다. (개헌 등을) 성공적으로 의제로 만든다면 지방선거 판에 유동성이 생길 수 있다"면서도 "다만 안 전 대표나 그 주변 그룹이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해낼 기획력과 실행력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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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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