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65주년이 아닌, 평화협정 원년으로!

[정욱식 칼럼] '협상을 통한 최대의 압박'으로 대북정책 전환해야

어느덧 한반도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4년이 흘러가고 있다.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멈춘 상태로, 그래서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가 64년간 지속되고 있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태가 언제 종식될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안타까움과 불안감은 더해 간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 시각) 베를린 연설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며,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북핵 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담대한 여정"의 첫발조차 내딛기가 대단히 녹록치 않다. 평화체제의 핵심 당사국 가운데 하나인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상대인 북한은 문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이미 때는 늦었다"며 "평화협정 체결의 환경도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괴롭더라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은 더 이상 등가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북한은 남한이 제안한 군사회담 및 적십자 회담에 대해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북한의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 준비설이 연일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남북관계 발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이러한 의지를 반영하듯,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연내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로드맵을 마련하고 2020년에 완전한 비핵화 합의에 도달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실질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 평화체제의 당사자는 남북한과 미국 및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 4자의 평화체제에 대한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문재인 정부는 평화체제 논의 개시는 비핵화 논의 이후로, 평화협정 체결은 북핵 폐기 단계로 상정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비핵화 논의에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조미 간의 적대관계를 평화 관계로 전환하는" 핵심적인 징표로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해왔다.

여기서 관건은 북한이 평화협정 논의 시 비핵화 논의에도 동의할 것인지, 또한 평화협정 체결 시 완전한 핵폐기에 나설 것인지의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협상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사안이라고 여겨진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아직까지 평화협정과 평화체제에 관한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고, 중국은 '쌍궤 병행'을 줄곧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종합해볼 때,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는 그 입구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공산이 크다. 핵문제 및 평화체제의 핵심 당사국이자 북미간 의 입장을 조율·중재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문재인 정부가 보다 창의적이고 주도적이며 담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할 까닭이라고 할 수 있다.

핵심은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비핵화'이며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핵 폐기 결단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한미 양국의 용단이 필요하다. 한미 양국이 선제적으로 평화협정 협상 개시를 제안하면서 이를 비핵화 논의와 병행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나는 이미 3단계 해법을 제안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유력한 北 비핵화 방안 놔두고 원유 공급 중단?)

문재인 정부가 평화체제 로드뱁을 작성하면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대목이 있다. 평화협정과 평화체제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평화협정을 체제와 동일시할 것인지, 아니면 평화협정을 평화체제의 중요한 일부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협정 자체를 체제와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우리가 정전협정을 정전체제의 일부로 간주하는 것처럼, 평화협정 역시 평화체제의 중요한 법적·제도적 기반으로 간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평화체제는 정전체제의 대체물이다. 이에 따라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고 상호간의 주권 존중 및 불가침을 확약할 평화협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전체제의 핵심은 강력한 군사력 및 준비 태세에 기반을 둔 전쟁 억제 및 억제 실패 시 승전을 추구하는 일방적 안보 추구에 있다.

그렇다면 평화체제는 일방적 안보 추구에서 협력 및 공동 안보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상호 간의 적대 관계 청산뿐만 아니라 군사력과 군사 태세의 대폭적인 하향 조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냉정하게 볼 때,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 즉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 이전에 한미동맹이 이러한 군축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평화협정을 평화체제의 중간 단계로 상정해 우선 북핵 동결과 연동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다.

이렇게 하면, 평화협정 체결을 평화체제 구축의 '중간 단계', 혹은 '전환기적 단계'로 설정할 수 있게 된다. 평화협정 체결은 협정 체결 이전의 성과를 반영하면서 협정 체결 이후에는 그 이행을 통해 평화체제 구축의 완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개념 설정이 보다 현실적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개념 및 목표 설정은 한반도 비핵화와 어울리는 짝이 될 수 있다. 평화협정을 평화체제의 핵심적인 요소이자 평화체제로 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과정으로서의 비핵화'라는 개념도 가능해진다. 이렇게 하면 단계적 비핵화를 상정할 수 있고, 핵동결을 비핵화의 중단 단계로 설정할 수 있게 된다.

강력한 무력시위로 북한의 안보 불안감을 자극하는 압박도, 대북 제재 강화로 북한의 경제난을 가중시키겠다는 압박도 모두 실패했다. 그 강도를 높인다고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압박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것은 바로 북한에 '핵무장에 의한 안보'보다 '평화체제에 의한 안보'가 훨씬 이롭다는 점을 납득시키고 실천하는 데에 있다. 비핵화를 유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자 그 자체가 목표이기도 한 평화체제를 앞세워 '협상을 통한 최대의 압박'으로 방향을 전환할 때이다.

나는 한미 양국이 조속히 북한에 평화협정 협상 개시를 제안하길 바란다. 그래서 내년이 정전협정 65주년이 아니라 평화협정 원년이 되길 희망한다. 이러한 비전과 목표를 가질 때에만 북핵이라는 폭주 기관차를 비핵화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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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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