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No'를 아우를 '하나의 Yes'가 필요하다

[정욱식 칼럼] '문재인 독트린'에 꼭 담겨야 할 비전은?

많은 기대와 우려, 그리고 요구가 교차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한미정상회담이 끝났다. 문재인 정부는 정상회담 준비 및 워싱턴 방문 중에 대북정책 및 사드와 관련해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이번 정상회담은 큰 마찰 없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물론이고 상당수 언론도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지만, 냉정하게 짚어봐야 할 대목들도 적지 않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많지만, 그 주도권 앞에는 '미국의 범위 내에서'라는 전제조건이 아른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공동성명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분석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에 "최대의 압박을 가해나가기 위해, 기존 제재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새로운 조치들을 시행하기로 하였다"고 했는데, 이는 미국의 대북 제재 강화 입장과 결을 같이 한다. 또한 "북한과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했지만, 그 앞에 "올바른 여건 하에서"라는 조건을 달았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주의적 사안을 포함한 문제들에 대한 남북간 대화를 재개하려는 문 대통령의 열망을 지지하였다"고 했지만, 이러한 합의 이면에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는 북핵 문제 해결에 상당한 진전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 표명이 깔려 있다.

이러한 대북 제재 유지 및 강화, 조건부 대화론, 남북경제협력과 북핵 문제의 연계는 뉘앙스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문재인-트럼프가 "실패했다"며 결별을 선언한 '전략적 인내'와 본질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 이에 따라 문제 해결에 돌파구를 마련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동성명에 명시적으로 담기지 않았지만, 한미 양국이 '네 가지 No'에 공감대를 이룬 것은 평가할 만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대북 4노(No) 원칙'은 한미 양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 정권의 교체나 정권의 붕괴를 원하지도 않는다. 인위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가속화하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는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5월 3일 국무부 직원 대상 연설 및 5월 18일 홍석현 대미 특사와의 면담에서 밝힌 것과 거의 일치한다.

문제는 이러한 네 가지 원칙이 현실에선 상당한 긴장과 모순을 보이고 있다는 데에 있다. 대북 제재 유지 및 강화, 전략자산을 비롯한 대규모의 군사력이 투입되는 한미군사훈련, "트럼프가 군사옵션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안보보좌관의 발언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원칙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정상회담 후속조치로 강구해야 한다.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은 7월 5~8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독일 순방길에 오른다. 이 기간 동안 '대북 4노(No) 원칙'을 골자로 삼아 대북정책 구상과 제안을 담은 '문재인 독트린'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이 기회에 문 대통령이 '네 가지 No'를 아우르는 꼭 필요한 한 가지 'Yes'를 주문하고 싶다. 내년으로 65년째를 맞이하는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기실 이 내용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또한 공동성명에 담겼어야 할 핵심적인 비전이었다. 한미 양국이 합의한 '네 가지 No'의 진정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이것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욱 크다.

한미 양국이 평화협정 및 평화체제에 대해 조속하고도 능동적인 입장과 비전을 가질 때에만, "최고의 공동의 목표"인 한반도 비핵화에 조금씩 다가설 수 있다. 한국이 이를 공론화하고 주도할 때에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주도적 역할'도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독일에서 밝힐 '독트린'의 키워드가 '평화협정', '평화체제'가 되어야 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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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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