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선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블랙리스트는 영원하다

[조선계 블랙리스트를 아십니까 ④] 벼랑끝 하청 노동자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2명이 4월 11일 '블랙리스트' 폐지를 촉구하며 새벽 울산 동구 남목고개 고가도로 기둥에 올랐다. 이들은 앞서 9일 하청업체가 폐업되면서 해고됐다. 통상 하청업체가 폐업할 경우, 소속 하청 직원들은 다른 하청업체로 이직하는 식으로 고용이 승계된다. 하지만 이들 2명은 하청지회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고용이 승계되지 않았다. 일명 솎아내기를 당한 셈이다. <프레시안>에서는 현재 문제가 되는 조선계에 만연한 '블랙리스트'에 대해 살펴본다. 이 기획은 다음 스토리펀딩에서도 공동 연재된다.

(☞바로가기 : 스토리펀딩)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현대중공업은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만든 사실조차 없다고 선을 그었다. 늘 반복되는 답변이다. 두 명의 하청 노동자가 블랙리스트로 취업제한에 걸려, 고공농성을 진행한 지도 오늘(19일)로 38일이 됐다. 맞은 사람은 있으나 때린 이는 없는 셈이다. 블랙리스트가 흡사 저주가 아닐까 싶은 착각까지 들 지경이다.

블랙리스트라는 문건이 공개된 적은 없으나, 그 존재는 조선소 안팎 사람들이 모두 인정한다. 기자가 만난 A씨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는 현대중공업에서 지난 2011년 5월 퇴사 전까지, 32년 동안 노무 관리 업무를 맡았던 인물이다. 현대중공업 해양도장부 운영과 과장으로 재직했다. 운영과는 부서 소속 노동자 노무관리가 주 업무다.

그의 이야기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우리는 '블랙리스트'라고 하지는 않고 '건강이상자'라고 한다. 그렇게 칭하는 명단이 위에서 내려왔다. 예전(2003년)에 하청 노조를 만들고, 지프크레인 등에 올라간 하청 노동자들 명단이 있다. 이들은 죽어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에서 막기 때문이다. 이들이 하청업체에 들어오는 것을 하청 총무를 비롯해, 원청 안전과장, 그리고 안전지원부 간부 등이 하나하나 체크한다."

ⓒ정기훈

"지회장 만나는 하청 직원은 배짱 좋은 사람"

A씨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하청 노조원만이 아니라, 이들에게 접근하는 노동자들도 국정원이 민간인 사찰하듯 감시한다고 했다.

"생각 있는 하청 노동자들은 하청노조 사무실 앞을 지나가지 않는다. 생각 없이 지나가도 의심받기 때문이다. 하청노조 위원장, 즉 지회장과 면담을 한다든가 인사를 하는 하청 직원은 정말 배짱 좋은 사람이다. 지회장이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도망가야 한다. 한 때는 지회장이 몇 시에 어디서 누구를 만난다는 것까지 다 기록했다."

A씨는 하청 노동자를 몇 차례 지회 사무실로 보내기도 했다고 했다. 회사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서 상담을 받는 것처럼 한 뒤, 지회 분위기를 살피도록 했다는 것.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실제 사무실 앞에 세워진 자동차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한다. 또한, 강성 직원인 것처럼 사무실을 찾아와 이것저것 물은 뒤, 이후로는 연락이 끊긴 하청 노동자도 여러 명 있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상한' 분위기, 즉 집단행동을 하려는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세작'을 심어놓는다고 설명했다.

"하청 직원들이 들고 일어나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제는 이들 숫자가 엄청나다. 그래서 하청 분위기는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 만약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하면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이라는 건 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 내용은 간단하다. '회사가 어려워 내달 2000명 정도를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러면 이상한 분위기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 대상자가 된다는 것은 누구보다 하청 직원들이 잘 알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세작을 원청만이 아닌 하청업체 총무, 대표 등도 심어놓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고 했다. A씨는 그래야 통제가 쉽다고 설명했다.

ⓒ정기훈

원청에 불이익 당할까 조합원 채용 못하는 하청

기자가 만난 하청업체 대표나 총무는 자기네 회사에 노조원이 있을 경우, 원청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에 조합원 신분의 노동자를 채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약 자기네 회사 직원이 노조에 가입할 경우, 여러 불이익을 준다고도 했다.

지난 8일 공개된 녹취록에는 이러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그 저(조합원)를 받았다카면 난리 안 나겠나, 우리 업 접으라카는 그카는 이 말이라. 지금 자꾸 노조원 숫자 많아져뿌면 그것도 불어나거든. 그래서 우리 업 접으라한다니까 그래돼뿌면 또... (중략) ....우, 우리가 떠안아뿌면 우리 쪽에 또 압박 들어온다니까. 분명히 압박 들어옵니다 그건 내가 알아, 회사(원청) 심리를 이게. 뭐 법적으로 어떻게 뭐 (원청)생산부서나 법적으로 이거 언제 그만두라 이 소리는, 이런 소리는 안한다니까. 뭔가 다른 쪽으로 압박이 들어온다니까. 그 그래가 내가 참지 못하는 상황이 돼뿌면은, 그래돼뿌면은 인제 기업(하청)경영이 악화돼뿌면은, 고마 그 핑계 저 핑계로 마 골치 아프니까 업을 접는 사례가 많다 말이지 보통." A하청업체 대표

또 다른 하청업체 대표는 하청업체 폐업으로 고용승계에서 배제된 하청노조 조합원 2명 관련, 1명은 원청 블랙리스트 전산에 걸려 고용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다른 1명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지는 않았기에 전산에 입력했으나 이후 원청 관리자가 직접 연락해서 채용하지 말 것을 압박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지회장 : 그 뭐라 합니까?
업체 대표 : 그 저 서류요?
지회장 : 예.
업체 대표 : 일단은 조금, 안돼고요. 저 뭐야 일단은 보자 내가, 일단 저쪽(원청)에다 얘기는 일단 해놨는데, 일단 입력 저기가 안 된 기라, 한 사람은 입력은 되기는 되는데 나중에 (원청에서)전화가 와가지고 꼭 써야 되냐 이렇게 연락이 오데.
지회장 : 누구, 누, 누가 입력은 되는데 그렇다고요?
업체 대표 : 저, 그, 뭐냐, 저.
지회장 : ○○○은 입력은 되는데 거기서 또 연락이 왔다고예?
업체 대표 : 네.
지회장 : □□□은 아예 입력도 안 되고요?
업체 대표 : 네.
지회장 : (한숨)어휴.
업체 대표 : 그래서 내가 여기 회사(하청업체) 업무만 보고, 일단은 보고 한 번 저기 좀 해봅시다. 일단 내 그래서 저, 아니 그런 그 이런 분들이 또 뭐 일은 잘 하는데 크게 뭐 해 끼칠게 뭐 있냐, 난 인제 그런 얘기는 했어요. 그랬더니 일단 한 번 봅시다 하고 연락이 왔거든.
지회장 :누가 저 연락이 왔든가예?
업체 대표 : 아니 이제 거, △△△(원청관리자ㄷ씨) ▽▽이
지회장 :누, 누구요?
업체 대표 : 아이 △△△(원청관리자ㄷ씨) ▽▽
지회장 : △△△(원청관리자ㄷ씨) ▽▽이 직접 연락이 왔더라고요?
업체 대표 : 네 아니 나하고 얘기 끝에, 얘기 끝에 이제 (원청)전산에 걸린 사람들은, 내가 이거를 이제 얘기를 돌려서 한 번 얘기를 했어요. (원청)전산에 걸려 있는 사람들을 지금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게 회사(원청)에서 지금 뭐냐 그랬더만은, 하청노조에 가입돼 있는 사람들, 응 인제 이 얘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아니 그 사람들도 뭐 가입만 했지 활동은 안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거를 조금 더. 지금이야 물량이 없고 그러지만은, 이제 굳이 이런 거예요. 물량이 없는데 왜 굳이 (하청업체에서)등록을 하려고 하느냐, 어 그 얘기를 하더라고. 지금 사람도 지금 뭐라 그러냐 지금, 지금 얘기 들었어요? 지금 업체들을 지금 통폐합시키려고 하잖아요.
지회장 :예, 예. 그라하데예.
업체 대표 : 어 5월 달에 그래가지고, 어 전체적으로 또 그런 얘기도 하고 막 이랬다고요. 어 그래서 저, 사람을 지금 통폐합시키고 보내야 되는데 왜 또 사람을 집어넣어야 되는데, 또 사람을 집어넣는 이유가 또 왜 그쪽에 문제성이 있는 사람들(하청노조 조합원)을, 물론 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활동은 안하지만은,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왜 또 쓰려고 하느냐 이런 얘기에요 쉽게 얘기하면.
지회장 : 예, 예.
업체 대표 : 일단 그런 것들은, 뭐 그 사람들(하청노조 조합원)이 활동적인 거는 아니니까, 일단 좀 저 규제를 좀 풀어줘라. 그거를 이제 각 업체에서 받는 데서 알아서 관여하면 되지 않느냐, 일단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보소.
지회장 :일단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채용은 모두 거부됐다.

ⓒ프레시안(허환주)

문재인 대통령,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까

근로기준법 제40조 '취업 방해의 금지'를 보면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사문화된 법이나 다름없다. 하청구조가 사문화를 견고히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 두 명이 38일째 하늘 끝에 매달린 이유다.

이야기를 돌려보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그의 행보가 연일 언론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사회 각계에서 다양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 실제 어느 정도 기대에 부응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2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은 첫 외부행사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비정규직 1만 명의 정규직화를 선언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정규직의 절반수준이라 아주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이 있고 그로 인한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통합과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입니다. ... (중략) ... 공항공사가 모범적인 공공기관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체 근무인원 중에 84%(지난해 2월 기준 전체 직원수는 7420명, 비정규직은 6282명.)가 비정규직이라는 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돼 고용이 안정되고 처우가 개선돼 더 당당하게 자부심 갖고 일할 수 있다면 인천공항공사의 경쟁력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주어만 다를 뿐, 이는 조선소 비정규직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규직보다 세배 넘는 인원인 비정규직들이 조선소에서 하는 일들은 대부분 주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환경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해서 블랙리스트로 노조활동조차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재인 대통령에게서 노동계의 적폐로 불리는 블랙리스트를 엄벌하겠다는 선언이 나오는 날이 올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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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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