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후보는 27일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동성 결혼 합법화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다만 "동성애는 찬성 또는 반대, 허용 또는 불허의 사안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안 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 25일 열린 TV토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군 동성애가 국방 전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하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동성애 찬반에 대한 입장을 묻자, 문 후보는 "반대한다"며 "차별 금지와 동성애 합법을 구분 못 하느냐. 동성애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일약 논란이 됐다.
이날 안 후보의 답변은, 자신이 앞서 했던 발언에 비하면 오히려 입장이 후퇴한 것으로 평가된다. 안 후보는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는 동성혼이나 차별방지법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날은 명확히 "동성혼 합법화 반대"라고 했다.
안 후보는 또 지난 20일 국제앰네스티가 공개한 인권 의제에 대한 대선후보들과의 서면 질의응답에서는 "헌법의 평등 이념에 근거해 성소수자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며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공론화는 상당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2007년부터 10여 년간 3차에 걸친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에도 불구하고 법 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성소수자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 문제들(차별금지법 제정, 동성결혼 합법화)을 공론화해 적극적인 토론을 통한 합의점을 도출해 내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답했었다.
때문에 인권 전문가들은 안 후보의 이날 발언에 대해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이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TV토론 등 이전에 발언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 문제가 논란이 되고 또 문재인 후보가 궁지에 몰리게 된 시점에서 이야기를 한 것 자체가 납득이 안 간다"며 특히 "당 내에서 전혀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 두 마디를 던져서 해결될 문제냐"고 지적했다.
홍 교수의 지적은 지난 20일 문병호 국민의당 최고위원이나 26일 이동섭 의원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동성애·동성결혼 법제화를 절대 반대한다", "차별금지법 같은 악법은 통과될 수 없다"고 말한 부분에 대한 것이다.
홍 교수는 "'동성애가 찬반 사안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적절하지만,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아무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며 "그래도 문 후보는 '차별 금지 노력을 하겠다'고는 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나 입장도 없이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만 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책임 있는 발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확한 입장을 알 수 없고, 진지한 고민이 담겼다고 보기는 미진하다"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도 "대선 후보들이 지금 '동성혼 반대'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며 "표를 의식해서 그런지 몰라도,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동성혼에는 반대한다는 것은 사실 그 자체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물론 법제화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만, 그렇다면 법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하는데 '동성혼 반대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동성애 반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안 후보의 이날 발언에 대해 "2008년에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미국에서는 그 이후에 사회적 논의가 훨씬 더 진전된 상황"이라며 "과거 논의를 되풀이하는 것은 동성애자 인권 문제에 대해 생각이 없다는 것이고 이 문제가 보편적 인권 문제임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한채윤 씨는 "동성애가 찬반의 문제가 아니고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동성혼은 반대라는 것은 무슨 생각인지 알기 어렵다"며 "생각을 하고 판단해서 내리는 결정이라기보다는 인권 의식 없는 사람으로 몰릴까 봐 일단 '찬반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은 던지고, 또 보수 쪽 표를 잃을까봐 '동성혼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 마디로 양쪽에서 욕 안 먹고 표 잃지 않겠다는, 아무 생각 없는 발언을 후보들이 다 하고 있는 게 제일 큰 문제"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 씨는 "안 후보가 (동성혼에 대해) '공론화하겠다'고 하다가 '반대한다'고 한 것은 입장이 후퇴한 것으로, 훨씬 반인권적이고 유연하지 않은 입장"이라며 "반동성애 세력의 표를 얻겠다는 것이다. 최근 조사를 보면 동성혼 찬성 비율이 20대에서는 70%에 가깝고 30대에서도 50%를 넘는데 연령이 높아질수록 비율이 준다. 이것은 고연령 세대의 표를 얻겠다고 작심한 것"이라고 분노를 드러냈다.
한편 이날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관훈클럽 초청 토론에서 동성혼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성 간, 동성 간 결혼은 다 축복받아야 한다. 동성혼 합법화는 국제적 추세이고 그렇게 돼 나가는 게 옳다"고 선명한 찬성 입장을 밝혔다. 정의당은 이날 성소수자 인권 단체 연대체 '무지개행동'과 정책 협약식을 맺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심상정 "공동정부 참여 열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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