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성주의 절규에 응답하라

[정욱식 칼럼] 대선 이후 배치될 사드, 후보들이 중단시켜야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시선이 5월 9일 대통령 선거로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또 하나의 힘겨운 싸움터가 있다. 사드 대란이 벌어지고 있는 경북 성주 소성리가 바로 그곳이다. 소성리에선 공사 장비와 자재를 차량을 이용해 롯데 골프장에 반입하려는 황교안 권한 대행 정부와 이를 온몸으로 저지하고 있는 현지 주민들 사이의 충돌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이 작은 마을의 힘겨운 저항은 대한민국의 미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기어코 사드 배치가 강행될 경우 한국이 처하게 될 경제적, 외교적, 안보적 피해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기약하고 있는 대선 후보들은 소성리 현지 주민들의 절규에 응답해야 한다.

일각에선 사드 발사 차량 2대가 이미 반입되었고 주한미군에 기지 공여도 완료되었다는 점을 들어 '이미 끝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대선 이전에 사드 배치가 완료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 23일 원불교 성직자가 소성리에 반입되는 사드 관련 장비를 실은 차량을 막아서고 있다. ⓒ참여연대

3월 내로 온다던 X-밴드 레이더는 4월 24일 현재까지 반입되지 않았다. 중국과의 북핵 공조를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의식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설사 미국이 서둘러 사드 배치를 추진한다고 해도 현장 사정은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사드는 너무 무거워 롯데 골프장까지 육로로 수송해야 하는데, 현지 주민들이 결사 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사드 문제의 최종적인 결정권은 차기 정부로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드 문제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고 있는 문재인 후보에게 강력히 요구하고 싶다. 가능한 빨리 '당선 즉시 사드 배치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선언해달라고 말이다.

이러한 요구는 문 후보의 사드 공약과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그는 사드 배치 찬반에 대해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도 사드 배치시 국회 동의는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이는 곧 일단 사드 배치를 잠정 중단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성립할 수 있다. 차기 정부가 현장에선 사드 배치를 계속 밀어붙이면서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러한 입장 표명이 한미관계를 헤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역시 기우에 불과하다.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는 사드 배치 속도를 높이면서 미국의 동의를 받아내려는 황교안 대행 체제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차기 정부가 '사드 배치는 시간을 갖고 신중히 검토하자'는 제안에 호응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재인 후보와 트럼프 행정부가 접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문재인 후보는 사드 배치 완료 시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외교적 지렛대를 상실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과도 대동소이하다. 이에 따라 문재인 후보는 집권 시 트럼프 행정부와 '사드 배치를 유보하고 한-미-중이 단결하여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자'는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법적으로 보더라도 차기 정부는 미국에게 재검토를 요구할 수 있다. SOFA 2조 3항에 따르면, 주한미군에 기지 공여가 완료되어도 "어느 일방 정부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시설과 구역에 관한 협정을 재검토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는 본인 당선 시 사드 문제를 풀 수 있는 "외교적 복안"이 있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보수 진영 후보들은 집요하게 사드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있고, 황교안 체제는 물리적 충돌을 유도하면서 사드 문제를 부각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주 소성리 현장은 문 후보의 복안을 기다릴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많은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철야 감시와 차량이 진입하면 온몸으로 이를 막는 저항이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문 후보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신해서 싸우고 있는 현장 주민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한다. 이들의 외침에 응답할 때, 비로소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의 건설'도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 사드 관련 장비를 실은 차량을 막아선 주민들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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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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