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하얗게 마당을 덮은 새벽, 먼동이 틀 무렵 방문을 나선다. 아침 불을 넣으려고 마당을 가로질러 보일러실로 총총 걸어간다.
"시상이 을매나 좋아졌는디 그러고 있으까. 스위치 탁 올리먼 따땃해지는데, 뭔 고생이여."
앞집 아짐의 말이 아직 귓전을 울린다. 상주로 귀농한 친구 전화도 왔다. 올해부터는 힘들어서 나무를 안 하고 기름을 사서 돌린단다. 이 녀석 오랫동안 나무만 때던 놈인데. 다른 얘기는 아득하고 나무 얘기만 머릿속을 맴돈다. 겨울이면 날마다 귀찮고 피곤한 일인데, 난 정말 왜 이러고 있지? 비용으로 봐도 결코 싸지만은 않다. 쪼그리고 앉아서 골똘히 불만 쳐다본다.
문득 어릴 때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또래들이 다들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밥 먹기 귀찮고 빨리 나가 놀고 싶을 때였다. 밥 대신 알약을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밥 준비하는 엄마도 편하고 시간도 아끼고. 우주비행사들도 그리한다니 아마도 미래에는 성가신 음식은 사라지고 간단한 알약이 대신할 거야. 완벽한 필수 영양소를 모두 갖춘 알약 밥상.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스위치. 나무를 자르고 장작을 패고 땔감을 쌓고 불을 넣는 일을 한 번의 스위치로 끝낸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가 보다. 난 그렇게 바쁘지도 않다. 몸이 아프지도 않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인간은 필요의 존재가 아니라 욕망의 존재다. 사람은 필요만으로 살 수 없다. 내 삶을 스스로 기획하고 책임지고 느끼고 싶다. 자연의 격렬한 리액션을 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또, 아침 불을 넣는다.
우리 집은 축열조가 붙은 보일러를 쓴다. 심야 전기보일러가 밤에 싼 전기로 물을 데워 물탱크에 열을 저장해놓고 쓰는 것과 비슷하다. 전기가 아닌 화목을 쓰는 것만 다를 뿐이다. 밤새 열을 빼앗아 썼기에 더 식어 들기 전에 불을 넣어야 한다. 너무 온도가 떨어지면 온도를 다시 일정 정도 끌어올리는 데 애를 먹는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연료가 들어간다. 아침에 때서 빼앗긴 열을 좀 보충해둬서 저녁에 다시 불을 넣으면 시간도 절약되고 나무도 적게 든다. 이치는 구들이나 벽난로도 마찬가지다.
큰돈을 들여 벽난로를 들였다가 효율이 없다고 난로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열을 배터리처럼 저장해서 쓰는 축열난방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열을 저장해서 쓰는 것들은 열을 저장하는데 시간이 많이 든다. 쇠는 빨리 달구어지고 금세 식는다. 돌이나 흙은 천천히 열을 받고 서서히 열을 뿜는다. 무거운 것들이 보통 그렇다. 금방 방의 온도를 올리려면 열을 저장하는 게 아니라 발열하는 가벼운 쇠난로를 써야 한다. 주말에 나가는 별장에 벽난로를 놓으면 방이 따뜻해진다 싶을 때 돌아와야 한다. 어쩌다 한 번 불을 넣으면 나무는 많이 들고 열은 시원치 않다고 불평한다. 너무 식었기 때문이다. 구들방에 팔뚝만 한 나무 서너 개만 넣어도 방이 절절 끓는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다. 식기 전에 빼앗긴 열만큼 날마다 보충해주니까 가능하다.
슬로에너지 축열난방
'슬로푸드'가 있다면, '슬로에너지'라고나 할까. 축열난방은 그런 의미가 있다. 처음 불을 때서 달구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열을 품으면 오래간다. 손을 댈 수 있는 난로다. 등을 기대거나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몸을 딱 붙여서 바로 열을 전달받는다. 바닥이 따뜻하고 공기는 서늘하니 기운이 돌고 쾌적하다. 그런데 요새는 머리 위로 온풍기가 건조한 바람을 불어대니 입술이 마르고 머리가 띵하다. 공기를 데우니 단열을 잘해야 한다. 찬바람이 들까 봐 문도 못 열고 숨을 쉬니 좋을 리가 없다. 식물도 말라죽는다. 방 공기를 데워 집을 난방하는 것은 여러모로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이 아니라 집을 데우기 때문이다. 한겨울 텐트 안에서 침낭에 핫팩(hot pack) 서너 개를 넣고도 하룻밤을 너끈히 보낸다. 무엇을 따뜻하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예부터 두한족열(頭寒足熱)이라고 했다. 머리는 차게 손발은 따뜻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건강비결이다. 바닥을 축열해서 쓰는 구들난방이 단연 으뜸이다. 바닥을 뜯어낼 수가 없고 벽난로는 너무 부담스럽다면, '로켓매스히터'를 권한다. 웜벤치(warm-bench)라고 해서 구들의자, 구들 침대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발열하는 난로와 축열하는 구들의 조합이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손수 만든다면 값싼 난로값만으로 가능하다.(자세한 것을 알고 싶다면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에서 만든 '한 장으로 배우는 적정기술 매뉴얼 : 로켓이 구들을 만나다, 로켓매스히터'를 참조하기 바란다.)
불을 잘 피우려면
불 피우는 게 귀찮은 사람도 있다지만 나에겐 이렇게 재미난 일이 또 없다. 아궁이 명상이라고 들어나 봤나.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아무리 떨치려 해도 끊이지 않던 잡생각들이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보고 있으니, 스르르 불구멍 안으로 다 빨려든다. 불길이 나도록 작은 틈을 주면서 잔가지를 조밀하게 올려놓고 종이 한 장에 불을 댕긴다. 입김으로 후우욱 불면 불꽃이 번지며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난다. 한 번 더 불면 그르렁 소리를 내며 불길이 세차게 일어난다. 입으로 불씨를 키워내는 일은 다 죽어가는 생명에 숨을 불어넣는 듯 경이롭다. 야생에서 나무 작대기 하나로 불을 피우는 사람을 본다. 길고 둥근 막대를 긴 널빤지에다 눌러대고는 두 손바닥으로 마주 비빈다. 연기가 피어난다. 마찰열로 생긴 작은 불티같은 숯을 조심스레 모아 놓은 마른 풀 무더기에다 담는다. 두 손 모아 뭉치를 들어 올려 입김을 불어 넣는다. 두세 번 숨을 불어 넣으니, 불씨가 커져 불길로 확 번진다. 바로 그 풍경이다.
불을 잘 피우려면, 우선 팔뚝만 한 나무를 가로로 쌓고 세로로 쌓아 올린다. 오래 탈 수 있는 나무들이다. 손가락 굵기의 나무를 그 위에다 얹는다. 불씨를 만들 나무들이다. 그런 다음 맨 위에다 불쏘시개를 올려놓고 불을 붙인다. 위에다 붙인다고? 사람들은 불은 밑에다 붙여야 상식이라는 생각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불은 장작 위에다 놓아야 효과적이다. 이걸 이해하려면 불이 생기는 세 가지 조건을 알아야 한다. 높은 온도(발화점), 충분한 산소, 탈 것. 이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불은 살지 못한다. 그 말은 불을 끄려면 세 가지 연소의 조건 중 하나만 제거해도 된다는 얘기다.
불을 자세히 보면 나무가 그냥 타는 게 아니다. 나무 전체가 타지 않고 집중적으로 뜨거운 곳이 먼저 탄다. 그건 나무가 타는 게 아니라, 뜨거운 열이 나무를 분해해서 가스를 만들고 그게 타기 때문이다. 숯이 되는 불 밑이 가장 뜨겁다. 아래서 분해된 가스가 올라가고 위에서 불꽃은 핥는 듯 잡아챈다. 분해된 나무가스가 올라가면서 불꽃을 만나니 연기도 나지 않는다. 밑에다 불을 놓으면 탈 것들이 위에 있으니, 가스는 많이 나와도 불씨는 잘 안 만들어진다. 잘 붙었던 불씨도 그 위로 나무를 추가로 던져 올려놓으면 연기만 가득 생긴다. 아까운 연료를 연기로 날려 보내는 셈이다. 캠프파이어 할 때도 장작을 올려놓고 불을 위에다 붙여보아라. 너울너울 타오르면서 연기가 거의 없다. 서서히 오랫동안 위엄 있게 타들어 간다.
불씨를 잘 만드는 법, 불길을 만들어라. 물은 아래로 흐르니 물길을 내려면 낮은 곳으로 물꼬를 튼다. 불은 반대로 위로 타오르도록 불길을 낸다. 잘게 쪼갠 나무들을 비스듬히 불이 타들어 올라가는 쪽으로 뉘어 쌓는다. 나무 사이사이 틈을 줘서 불이 타고 오를 길을 내면 빨려들 듯이 불타오른다. 부뚜막 아궁이는 안으로 깊게 들어가 있어 나무를 위로 쌓아 올릴 수 없다. 불길이 드는 방향으로 타고들 수 있도록 뉘어서 쌓고 안쪽으로 불을 붙인다. 또는 불씨를 만들어 안으로 밀어 넣는다.
찬 공기가 들지 않게 하는 게 불을 잘 피우는 요령이다. 방문을 활짝 열면 춥다. 아궁이 문도 마찬가지다. 활짝 열면 불길이 사그라들고 살짝 열어두면 거세어진다. 찬바람이 들지 않게 한다. 아궁이 둘레를 단열하면 고온을 유지할 수 있다. 고온연소는 빨아들이고 내뱉는 힘이 세져서 불길이 세차게 타오른다. 또 뜨거운 공기가 가스를 만나서 생기는 불은 드세다. 달궈진 공기가 올라오도록 불받이(grate)를 만들어 불 밑에서 산소를 들이면 더 효과적이다. 화실 안으로 쇠파이프를 놓아두기만 해도 효력이 대단하다. 화목보일러가 연통으로 연기가 많이 났다면 한 번 해보라. 확 줄어든 연기를 확인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뜨거운 공기를 보충해주는 것을 2차 공기(secondary air) 주입이라고 한다. 모든 난로나 화덕에 적용할 수 있다. 비용 대비 효과로 비길 데가 없다.
젖은 나무나 생나무는 물을 날려 보내는 데 열을 많이 빼앗긴다. 그을음만 많이 생기니 쓰지 않는 게 좋다. 잘 말려서 써야 한다. 잘 마른 장작은 서로 두들기면 맑고 가벼운 소리가 난다. 구들장이든 가마솥이 든 열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라면 거센 불길로 온도를 높여야지 효율이 높다. 그럴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질질 오래 타는 건 비효율적이다. 가마솥에다 밥을 할 때도 센 불로 때야 설익지 않는다. 큰 토막나무가 아닌 마른 잔가지를 쓴다. 잔가지가 면적이 넓다. 열분해 되어 나오는 가스의 양이 많기에 큰불을 만든다. 함실아궁이도 불을 넣고 구들장을 데운 다음에는 문을 닫아 열을 빼앗기지 않게 한다.
땔감과 장작 패기
상농(上農)은 땔감을 말려 놓고 중농(中農)은 때에 맞춰 장작을 들인다. 역시 하농(下農)인 나는 봄기운이 시작되는 입춘에도 나무를 패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날 팬 장작으로 그날을 때운다. 땔감 더미로 성벽을 쌓은 집들을 보면 부럽기만 하다. 그래도 위안이라면 날마다 운동하듯 장작을 패고 있다.
처음에는 톱만으로 나무를 잘랐다. 지름이 한 뼘이 넘는 것들은 기백 번은 왕복하는 톱질이 있어야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목을 꺾었다. 톱질은 달리 방법이 없다. 많이 한 만큼 는다. 자를 때는 무릎 위로 올라오지 않을 길이라야 적당하다. 너무 길면 아궁이 크기에도 안 맞을뿐더러 쪼개기도 힘들다. 엔진톱을 쓰지 지금 생톱으로 나무를 자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도끼질이다. 도끼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다치기 때문에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도끼도 잘 골라야 한다. 장작을 패는 도끼머리는 두텁고 뭉툭해야 한다. 쐐기의 각도가 커야 잘 쪼개진다. 그에 비해 자르는 도끼는 날 폭이 넓고 도끼머리도 얇다. 자루는 곧고 발라야 한다. 휘어 있으면 비켜 찍게 되어 위험하다. 물푸레나무가 좋고 잘 뻗은 참나무도 튼튼해서 쓰기 좋다. 껍질은 벗겨내지 않아야 오래 쓴다.
도끼질에는 받침 나무인 '모탕'이 필요하다. 뿌리 쪽 나무가 단단해서 알맞다. 도끼날이 상하지 않게 한다. 보통 나무를 올려놓고 쓴다. 나는 한팔 남짓 긴 통나무를 뉘어서 모탕으로 쓴다. 쪼갤 나무를 모탕 앞으로 두고 내려친다. 모탕 위로 올려놓을 필요가 없이 모탕을 굴려서 쪼갤 나무 쪽으로 갖다 댄다. 쪼갤 나무들을 먼저 쫙 깔아놓으니 더 편하다. 바쁠 때는 끈으로 예닐곱 개씩 묶어 놓고 한 번에 여러 개를 쪼갠다. 모탕에 올려놓고 칠 때는 폐타이어를 올려놓고 쓰는 것도 방법이다. 쪼개진 장작개비들이 달아나지 않아서 덜 수고롭다.
나무는 가장자리부터 쪼갠다. 사과를 칼로 쪼개어 내듯이 돌아가면서 가장자리부터 잘라낸다. 큰 나무를 반으로 쪼개려고 한가운데를 내려치면 날은 계속 박히기만 할 뿐이다. 작은 나뭇가지라도 하나는 잘 부러뜨릴 수 있지만 한 단은 부러지지 않는 것과 같다. 가로 돌아가면서 쪼개어나가면 도끼질 한 번에 하나씩 착착 쪼개어진다. 쐐기처럼 도끼날이 깊게 박히면 자루를 들어 올려도 잘 빠지지 않는다. 이때 보통 망치보다는 우레탄 망치를 써서 도끼날 머리를 치면 쉽게 빠진다. 억지로 자루를 잡아 들면 자루가 꺾여 부러지기 일쑤다.
도끼질하는 법
도끼자루 끝을 왼손으로 잡는다(오른손잡이). 오른손은 도끼머리 가까이로 잡아서 머리 위로 가볍게 든다. 힘을 빼고 도끼날의 무게로만 내려친다는 느낌으로 한다. 이때 오른손은 방향을 잡는 역할만 하고 주로 왼손으로 들고 내려친다. 그러면 자연스레 왼손이 있는 자루 끝 쪽으로 오른손을 모으면서 내려찍는다. 아니, 벤다. 미야모토 무사시의 검처럼 단칼의 기세로 베어야 한다. 한낱 나무토막이지만 기세에서 밀리면 쪼개질 나무도 퉁겨버린다. 도끼가 나무에 닿기도 전에 이미 쪼개져야 한다. 그러면 쪼개진 길로 칼이 지나가듯 갈라친다. 걸림 없이 내리친다. 그러니 베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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