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직속 주택청 만들고 주거를 '복지'로 접근하라"

[정권교체 사용법] 조명래 단국대 교수 "'하우징 레짐' 교체로 이어져야"

5월이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국정 공백은 메우겠지만, 새 정부는 곧바로 험난한 내외적 도전을 이겨내야 한다.

대외 요인으로 가장 시급한 과제가 사드 배치 논란으로 인한 외교적 마찰 해소라면, 국내적 요인은 무엇보다 가계부채 문제로 상징되는 부동산발 경제위기 요인 해소다. 사드 배치 논란이 급성 질환이라면, 부동산 문제는 오랜 기간 묵은 숙환(宿患)이다. 당장은 덜 아파 보이지만, 실은 한국의 근본을 뒤흔드는 위협이다.

지난 9년에 걸쳐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주택 분양과 관련한 온갖 규제를 해제한 데서 우리는 부동산을 둘러싼 강력한 이해관계가 한국 경제 숨통을 틀어쥐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말기, 부동산 급증세가 지속되자 정부가 꺼낸 종합부동산세 제도와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하향 규제에 보수 언론이 기를 쓰며 반발한 일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

새 정부는 연말 15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심각한 가계부채 누적 문제, 30대를 중심으로 급증하는 전세대출 문제, 날로 심화하는 젠트리피케이션 피해자 문제, 2년 마다 집을 옮겨야 하는 임차인의 권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할까. 나아가, 우리 사회의 온갖 욕망이 뒤얽힌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 차원에서 고민하려면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할까.

지난 23일 오후 서울시청 지하 카페에서 부동산 문제를 가장 근본적 차원에서 지적해 왔으며, 정치권의 주요 인물에게 부동산 정책을 조언해 온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를 만나 차기 정부에 바라는 부동산 철학을 물었다.

첫 질문은 '차기 정부는 부동산 정책 기조를 완화 중심으로 가야 하느냐, 규제 중심으로 가야 하느냐'였다. 이 질문부터 우문이었다. 조 교수는 "'하우징 레짐(housing regime)'을 근본적 차원에서 교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을 '시장'으로 보는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의 철학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 규제냐 완화냐는 차원의 이야기는 필요치 않다고 했다. 부동산 철학을 긴 시간을 두고 근본적 차원에서 고민하지 않는다면, 규제냐 완화냐는 수준의 정책은 어떤 효과도 내지 못하리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조 교수는 청와대 직속 기구로 가칭 주택청을 설치하고, 이 기구가 부동산 정책을 시장이 아닌 복지 차원에서 고민하게끔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집 개념을 소유물에서 임대물로 바꾸고,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조 교수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하우징 레짐' 교체해야 부동산 변한다

프레시안 : 정권 교체 기대감이 커지면서, 차기 정권이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도 강해진다. 차기 정권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의 하나로 부동산 시장 안정화가 꼽히는데, 일각에서는 규제 일변화에 따른 거부감도 읽힌다. 경기가 하강하는 상황이니 지나친 규제는 시장을 죽인다는 주장이다.

조명래 : 당장 기자부터 부동산에 '시장'이라는 말을 붙였다. 그 말에서 현재 한국 부동산의 모든 문제점이 드러난다.

차기 정부가 부동산을 규제해야 할 것이냐, 완화할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부동산 시스템이다. '하우징 레짐'이 문제다. 집을 시장으로만 보고, 주거권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현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게 핵심이다.

프레시안 : 집을 시장으로 보는 체제는 왜 문제인가?

조명래 : 주거 복지가 버려진다는 문제도 있지만, 시장 관점에서도 문제가 뚜렷하다. 가장 문제는 국토부를 중심으로 부동산 카르텔이 만들어져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이다.

국토부를 위시해 건설업, 금융업, 언론 등 부동산이해관계자가 부동산의 모든 가치를 산업 논리에 끼워 맞추고 있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의 규제 완화가 문제,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 도입이 문제라는 식의 관점은 중요하지 않은가?

조명래 : 근본인 하우징 레짐에 대한 고민이 없이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결국 부동산 공급 중심 정책에서 독립적일 수 없다. 이 시스템을 깨뜨리지 않는 한,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봤자 한계는 뚜렷하다. 국토 정책의 주도권은 계속 산업론자들이 쥐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차기 정부에 우리가 바라야 할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결국 '부동산 카르텔 깨뜨리기' 혹은 '하우징 레짐 전환'이 되겠다.

조명래 : 그렇다. 이제 부동산을 바라보는 관점을 시장에서 주거복지로 옮겨야 한다. 부동산 규제를 강화한다고 부동산 시장 죽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정부에서 나오는 건 말이 안 된다.

주거약자 버린 한국 부동산 정책

프레시안 : 어떻게 해야 하우징 레짐을 바꿀 수 있나?

조명래 : 해법을 말하기 전에, 우선 한국 하우징 레짐의 특징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체제는 자가주택을 사라고 끝없이 주문하지만, 정작 수요는 이를 따라가지 않는다. 자가주택 보유가 세계적으로도 손꼽을 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주택 실수요는 매매에서 임대 중심으로 옮겨갔다. 이미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 유럽 수준에 근접했고, 특히 젊은 세대는 주택 소유욕이 나이 든 세대보다 적다. 지금 집을 사는 사람 중에도 그간 지속된 정부의 대출 완화 기조, 치솟는 전세 임대료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임대 대신 매입을 선택한 이가 적잖다.

또 다른 특징으로 저소득층을 완전히 주택 정책에서 배제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집이 소유의 대상이고 상품이니, 자연히 주택정책은 소득 3분위 이상의, 주택 구매력을 지닌 이들만 바라본다. 소득 2분위 이하 계층은 한국 주택정책에서 완전히 배재된다.

정부가 임대 시장을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도 현 하우징 레짐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주거약자가 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함에도, 아무도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서울 임차인의 평균 거주기간이 2015년 기준 3.5년에 불과하다. 반면 독일의 경우 12년에 달한다. 한국 자가주택 보유자는 11년이다. 주택 소유권자와 세입자 삶의 질 차이가 너무 크다.

프레시안 : 한국 하우징 레짐의 특징을 요약하는 구체적 사례를 든다면?

조명래 : 공공임대주택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공공임대주택은 정부가 통제한다는 점, 주거약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은 연간 3만 호 수준에 불과하다.

프레시안 : 국토부는 지난해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이 12만5000호였으며, 역대 최대치라고 발표했다.

조명래 : 거짓 통계다. 그 중 상당량(4만3000호)이 대출 상품인 전세임대주택이다. 이건 공공임대가 아니다. 저소득층이 실제 입주하는 영구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 공급량은 오히려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진짜 공공임대주택은 연간 3만 호 수준에 불과하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가 공공임대 상품의 핵심으로 홍보한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는 어떻게 보나?

조명래 : 뉴스테이 실거주가 가능한 이가 누군가? 저소득층은 불가능하다. 재력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월세 아파트에 불과하다. 주거복지가 필요한 사람은 외면하고, 엉뚱한 정책에 세금을 쓰고 있다. 폐지해야 하는 정책이다.

▲ 주거 약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은 점차 줄어들거나 제자리걸음을 한다. 주택 정책이 약자를 바라보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주거 복지 실현은 불가능하다. 박근혜 정부가 홍보한 '뉴스테이' 홍보자료집. ⓒ국토교통부

새 정부, 주택청부터 만들라

프레시안 : 결국, 하우징 레짐 변화의 방향을 세부적으로 보자면 부동산 정책의 중심에 주거약자를 놓자는 것, 임차인을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 같다.

조명래 : 그렇다. 그 같은 전환은 국토부가 할 수 없다. 청와대 직속의 가칭 주택청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부동산 카르텔인 국토부는 온갖 방법으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울 것이다. 새 정부가 정말 제대로 된 주택 정책을 펴고자 한다면 카르텔 권력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직속기구를 만들고, 이 기구에서 단기, 중기,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정권이 변해도 주거복지를 전담해서 고민하는 기구가 있어야만 한국 부동산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

프레시안 : '국토부 해체'로 요약해도 되나?

조명래 : 꼭 국토부 해체가 아니라도 방법은 많다. 국토부에서 주거복지 관련 부서를 떼낼 수 있고, LH공사를 주택청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임차인 보호할 4대 정책

프레시안 : 주택청을 설립한다면, 이 곳에서 어떤 주거 정책을 고민할 수 있을까? 당장 단기적으로 효과를 낼 정책이 필요하지 않겠나?

조명래 : 임대차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핵심은 임차인 권리 강화다. 전 국민의 절반이 임차인이다. 그런데 한국 임차인은 짧은 주거기간, 지나치게 오르는 전세 보증금 등으로 인해 불안한 삶을 산다. 집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한국인의 삶이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네 가지 정도의 제도 도입을 요구한다. 첫째, 임대료 관리다. 공공임대료, 적정임대료 기준을 만들자는 얘기다. 지금처럼 집 주인이 터무니없는 재계약 조건을 내걸어 임차인을 함부로 내쫓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임대인의 재산권만 보호하지 말고, 임차인에게 대항권을 줘야 한다.

둘째, 임대사업자등록제 전면화를 통한 임대소득 과세다. 우리나라 전월세 보증금 총액을 530조 원 정도로 추정한다. 예금금리를 2%만 잡아도 연간 10조 원이다. 이 보증금 거치 예금이익에 관한 과세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임대인이 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로소득이다. 이 불로소득을 얻을 만한 사람, 임대사업자는 결국 재정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강자가 약자로부터 가져가는 돈이 전혀 규제되지 않는 셈이다. 조세정의 차원에서도 말이 되지 않는다. 등록제는 필히 시행해야 한다.

셋째,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위해 장기주거가 가능토록 임대차 계약 기준을 바꿔야 한다.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해 임차인의 주거 기간을 늘려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략 2+2 방식(임차인이 2년간 거주한 후, 자동적으로 2년을 더 연장 가능토록 하는 방안)을 선호하는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3+3을 이야기한다. 우리 생애주기(중, 고교 3년제)에 더 맞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임차인의 거주 기간을 늘리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넷째,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설립 및 임차인 법률 지원이다. 세 들어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전등이 깨질 수 있고, 집이 낡아 물이 샐 수 있다. 유럽의 경우, 대체로 이와 같은 여러 상황에 관한 조항이 임대차계약서에 꼼꼼히 기록된다. 우리는 어떤가? 달랑 종이 한 장뿐이다. 월세로 들어갈 때 임대인이 도배를 새로 해 주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임차인 부담이다. 이러니 임대차 관계는 법률적 계약관계가 아니라 재산을 매개로 한 권력관계가 된다. 갑을이 나뉜 상황에서 임차인은 항상 약자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세 들어간 집에 전기 문제가 발생해 닷새 간 전기를 사용하지 못했다고 해 보자. 계약관계로 보면 나는 정당한 비용을 지불한 집의 가치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한 법률적 협상이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갑인 집주인에게 이를 요구하기란 어렵다.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는 지역별로, 권역별로 일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를 전면화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주택청을 신설해 주거복지 정책을 총괄하게 하고, 청 주도하에 임차인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나아가야 한다고 요약된다.

조명래 : 그렇다. 아울러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20%까지 늘려야 한다. 아주 기본적인 주거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이가 너무 많다. 당장 어렵다면 준공공임대주택(임대인에게 세제 혜택 등을 정부가 제공하는 대신 임대료 등을 직접 규제해 공공성을 높인 주택)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모든 개혁은 큰 변화를 수반할 것이다. 당장 임차인의 주거기간이 길어지면 이사업체가 타격을 입을 수 있고, 건설업체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주택청이 굳건히 서야만 이 같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장기적으로 부동산 철학의 중심을 시장에서 복지로 옮겨갈 수 있다.

이 모든 개혁은 중장기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업계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산업 구조조정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 주택청이 있어야만 장기 목표, 즉 사회적 약자의 주거권 보장 목표가 흔들리지 않는다.

▲ 임대차 계약을 맺은 순간, 임차인은 2년 후를 두려워하며 살게 된다. 아무리 비싼 돈을 내도 말이다. 임차인은 약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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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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