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파행' 출발점 2013년 9월, 박근혜는 왜?

DMZ 평화공원 만들지 못한 까닭은…

박근혜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인 류길재 전 장관이 지난 2013년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을 일주일 연기한 이후 북한과 합의했던 이산가족 상봉이 취소됐던 일을 거론하며, 이 사건이 박근혜 정부 내내 남북관계가 사실상 파행으로 치닫던 시작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핵심 공약으로 내놓았던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 역시 여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사)통일미래포럼 창립 기념 대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류 전 장관은 "지난 2013년 개성공단이 정상화됐고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을 하기로 했다"면서 "그랬다가 우리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을 일주일 연기하자고 했고 북한이 결국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재개 회담을) 다 거부했다"고 말했다.

당시 2013년 9월 25일부터 이산가족 상봉을 실시하기로 합의한 남북은 금강산 회담 일자를 두고 줄다리기를 벌였다. 북한은 9월 22일 금강산 재개 관련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고, 남한은 9월 25일에 회담을 열자고 역제안했다. 그러자 북한은 다시 8월 말에서 9월 초에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고, 남한은 이산가족 상봉이 끝난 직후인 10월 2일 회담을 제의했다.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 중 어느 것을 먼저 하느냐에 대한 시기 문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 셈이다. 결국 상봉 이후에 하자는 남한의 제의에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취소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를 두고 류 전 장관은 토론회에서 "박근혜 정부가 신뢰 프로세스를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공약을 했고, 실제로 남북 간 신뢰를 쌓으려면 그동안 닫혀있던 것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금강산 관광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당시 북한은 김정은의 치적인 마식령 스키장을 필두로 원산 특구와 금강산을 연결하고 싶었고, 정부도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에 착수하려면 금강산 관광 재개는 필연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류 전 장관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지 않으면 평화공원 조성은 어려웠다. 실제로 북한에서 나중에 이를 비공개로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야만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금강산) 회담을 연기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멈춰졌다"고 평가했다. 류 전 장관은 "이것이 지금 남북관계가 경색 또는 파행이 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정부 내에 금강산 관광과 관련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류 전 장관은 "당시 내부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을 정부 차원에서 한다고 해도 바로 관광 재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가 회담을 통해서 북한에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싶다면 핵 문제에서 진전된 행동을 보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대통령의 의중이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내부 정책 결정 과정에서 통일부의 의견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 (사)통일미래포럼 창립 기념 대토론회에 참석한 전직 장관들. 왼쪽부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사드, 차기 정부로 넘기라고 말하면 끝나는 일 아냐

이날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로 인해 중국과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엑스밴드 레이더가 중국이 반발하는 핵심적인 이유인데, 우리가 중국에 '북한으로부터 핵과 미사일 개발을 동결한다는 선언을 받아오라'라고 요구해야 한다"며 "그래도 안되면 할 수 없이 배치해야 한다는 식으로 명분을 쌓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MD(미사일 방어체제)와 사드가 다르다는 말은 산에는 갔는데 등산은 가지 않았다는 말과 똑같은 뜻이다. 사드는 아시아에서 중국을 둘러싸는 방어망에 같이 들어가 있는 것"이라며 "사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막기 위해 배치하는 것이니 중국은 신경쓰지 말라고 하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야권 대선후보들 사이에서 사드 배치를 차기 정부로 넘기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차기 정부로 넘기라고 이야기하려면 사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확실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며 아무런 방안이 없는 상태에서 넘기라고만 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류 전 장관 역시 사드와 MD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장관을 할 때는 사드에 대해 '3NO'(미국의 요청도, 한미간의 논의도, 결정된 바도 없다) 정책을 유지했다"며 "사드 도입은 아무리 (박근혜 정부 당시 당국자들이) 아니라고 해도, 미국의 MD에 편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한편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 송 총장은 아직 미국의 정책이 확실히 정립되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미국의 정책을 기다리기 보다는 우리의 정책을 먼저 세워야 한다"며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워싱턴이 아니라 서울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역시 "지금 미국 국무부의 동아태차관보 임명도 예정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면서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서 대북 정책을 면밀하게 짜고,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우리의 대북정책이 미국 대북정책의 원본이 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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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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