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겪은 조선, 사드로 똑같은 실수 되풀이하나

[정욱식 칼럼] 한국이 사드 배치에 대비하는 자세

최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논란은 임진왜란 직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된 조선의 통신사들은 상이한 내용을 조정에 보고했다.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고, 김성일은 침략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논란 끝에 조정은 김성일의 손을 들어주곤 사실상 방비를 포기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드 논란도 이와 흡사한 점이 있다. 중국 내 한국인 전문가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은 사드 배치를 강행하면 경제, 외교, 군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전방위적인 보복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사드 배치가 완료되면 중국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현 정부에서 마무리되면 차기 정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거나 "중국이 차기 한국 정부와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는다.

미국의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부소장도 여기에 가세했다. 그는 최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공산당·정부·재계·외교계 인사들을 만났다"며 그 소감을 <중앙일보>를 통해 국내에 전해왔다.

그린은 "중요한 점은 베이징이 사실 미국이나 한국이 사드 배치를 철회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오히려 "한반도 문제를 연구해온 중국 인사들은 중국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한·중 관계가 악화되면 안타깝게도 북·중, 중·일, 미·중 관계에서 중국의 국익이 손상된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예상으로는 "탄핵이 이뤄질 경우인 5월 선거 이후에는 (베이징이) 서울과 신속하게 관계 회복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지금 당장은 소나기를 맞고 있지만, 대선 이후에는 날에 갤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을 지낸 마이클 그린은 미국 내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이자 미사일 방어체제(MD)를 기반으로 하는 한미일 삼각동맹 옹호자이다. 그가 부소장을 맡고 있는 CSIS의 주요 후원 기업에는 'MD 빅4'로 불리는 록히드마틴, 보잉, 노스롭그루먼, 레이시온 등 군수산업체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에 따라 그린의 주장은 그의 전략관과 CSIS의 경제적 이익이라는 필터로 걸러내고 들어야 한다.

사드 배치를 강행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미래의 일이다. 그래서 아무도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하나는 '사드 보복을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식의 일부 언론과 전문가의 주장을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의 공식적인 입장에 무게 중심을 둘 것인가의 문제이다.

중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분명하다. 중국은 미국이 MD에 다시 시동을 건 1990년대 후반부터 MD를 21세기 최대의 전략적 위협으로 간주해왔다. MD의 일환인 사드의 한국 내 배치와 관련해서도 "견결히 반대, 즉각적인 중단, 강행시 한국과 미국이 감당할 수 없는 대응"을 3대 기조로 삼아왔다. 이러한 공식적인 입장을 무시하고 일부 인사들이 전하는 말을 믿었다간 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래의 시나리오 가운데 어느 쪽에 방비를 할 것인가이다. 사드 배치 강행시 중국의 대응 및 한중 관계에는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관계 회복, 현상 유지, 관계 악화가 바로 그것들이다. 세 가지 시나리오가 동일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선택해야 할 미래는 자명해진다.

현재 한중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이고, 그래서 대선 이후에 현 상태가 유지되더라도 우리에겐 '차악'이 되고 만다. 현상 유지가 차악인 이유는 사드 배치 강행시 중국의 대응 수위가 현재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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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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