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기록부 "분위기 좋아", 13일 후 저수지에 몸 던져

[어느 여고생의 자살 ⑥] 고3 실습생이 자살할 때까지 학교와 교육청은 무엇을 했나

특성화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 현장실습생 홍은주 씨(가명)가 지난 1월 22일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2014년 10월 이곳 콜센터 직원이 자살한 이후 2년 3개월 만에 두 번째 자살자다. 2014년 10월 LG유플러스 상담팀장이 자살하며 남긴 메모에는 "수많은 인력의 노동착취"와 "정상적인 금액(임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언이 남아 있었다.


이후 이곳에서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은 실습생이 살인적인 노동 환경 속에서 취업 5개월 만에 자살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에서는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학생 건강 및 안전 사항에 특이점 없음. 근로시간 및 임금은 표준협약을 잘 이행하고 있음. 동료직원들과의 관계도 원만함. 학생 적성도 잘 맞아 향후 취업연계 가능성이 있어보임. 실습 간에 손님응대에 어려운 점이 있어 보이나,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함.


현장실습생 홍은주 씨(가명)를 면담한 담임선생이 홍 씨를 평가한 내용이다. 담임선생은 홍 씨 관련 '산업체 적응도, 현장실습 만족도, 업무 파악 정도' 등을 모두 10점 만점 줬다.


뿐만 아니라 상중하로 나눠 평가하는 '건강상태', '근로시간과 임금', '복지와 후생문제', '취업으로 성장 가능성' 등도 모두 '상'으로 평가했다. 홍 씨가 이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은 12월 21일에 진행한 면담 결과였다.


해를 넘겨 다시 1월 9일에 진행된 면담에서도 결과는 동일했다. 건강상태 등에서 '상'을 줬고, 산업체 적응도 등에서도 10점 만점을 부여했다. 평가 내용도 거의 흡사했다.


학생 건강 및 안전사항 특이점 없음. 근로시간 및 임금은 표준협약을 잘 이행하고 있음. 업무스트레스가 약간 있으나, 극복하려 하며 잘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함. 팀내 분위기가 좋아, 동료들과 개인적이 만남이 많다고 함.


하지만 홍 씨는 이 면담, 즉 순회 지도를 받은 지 13일만에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업무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여고생을 저수지로 떠밀었다.


▲ 1월 9일, 담임교사가 홍 씨를 만난 뒤 작성한 순회지도결과 복명서

각각 다른 계약서, 그리고 다른 월급


확인된 바로 홍 씨에게는 각각 다른 월급액을 명시한 두 개의 계약서가 존재했다. 홍 씨가 실습 나가기 전인 2016년 9월 8일 체결한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보면 월급은 160만5000원이지만, 6일 뒤 실습업체와 체결한 근로계약서에는 1개월(113만5000원), 2개월(123만5000원), 3개월(128만5000원), 4~6개월(133만5000원), 7개월 차 이후(134만5000원) 등으로 명시돼 있다.


현장실습표준협약서는 학생, 업체, 그리고 학교 삼자간 협약을 맺고 있다. 실습학생의 업무조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학교에서 개입할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반면 근로계약서는 학교를 배제하고 학생과 업체 간 일대일로 계약을 맺는다.


실습학생을 대상으로하는 근로계약서는 2012년 4월 현장실습생 노동조건 보호 강화를 위한 대책으로 도입됐다. 사실상 취업과 연계돼 현장실습이 이루어지는 경우, 표준협약과 동시에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것. 이는 현장실습생이 사업장의 다른 노동자와 동일하게 일할 경우, 현장실습생에게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근로계약이 표준협약보다 불리하게 맺어지는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홍 씨의 경우가 그렇다.


일선 현장에서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회사 사정에 의해 부득이한 경우' 등 단서 조항을 넣어 표준협약서를 무력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표준협약서보다 후퇴한 근로계약서를 적용하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표준협약서에는 월급 160만 원이 명시돼 있으나 근로계약서에는 120만 원을 주기로 했으니 120만 원을 준다는 식이다. 그나마 홍 씨는 근로계약서상 명시된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홍 씨 월급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면 1개월째에는 86만4520원, 2개월째에는 116만362원, 3개월째에는 127만2900원, 4개월째에는 137만1020원을 받았다.


물론, 홍 씨의 경우, 법률상 표준협약서대로 회사는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 여러 계약이 있을 경우, 노동자에게 유리한 계약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 신분으로 소송까지도 감내해야 한다. 노동법이나 현장실습표준협약 등을 알지도 못하는 고등학생이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 현장실습표준협약서에는 매월 160만5000원을 지급한다고 돼 있다.

▲ 반면, 근로계약서에는 1개월(113만5000원), 2개월(123만5000원), 3개월(128만5000원), 4~6개월(133만5000원), 7개월 차 이후(134만5000원) 등으로 명시돼 있다.

실습학생이 자살할 때까지 학교와 교육청은 무엇을 했나


결국, 이런 문제점은 일선 학교와 교육청에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홍 씨 관련해서 학교와 교육청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확인된 바로는 담임교사는 홍 씨가 일하던 업무현장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업체에서 이를 꺼린다는 이유였다. 홍 씨와의 면담은 모두 작업 현장 이외의 공간에서 진행됐다. 그나마도 홍 씨가 근무한 5개월 동안 단 두 차례만 진행됐다.


면담에서 홍 씨는 업무적 스트레스가 있었음을 밝혔으나 학교 측은 이를 직장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가벼운 스트레스 정도로만 생각하며 넘어갔다. 심지어 홍 씨가 LG유플러스 내 '욕받이 팀'으로 불리는'SAVE'팀에서 일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교육청도 마찬가지였다. 홍 씨의 죽음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자 그제야 뒤늦게 수습책을 마련하고 있다. 전북교육청은 지난 8일 정신건강을 해치는 사업체에 학생이 실습 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기로 했다. 이와 함께 부당 노동행위 전력이 있는 업체를 실습금지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아울러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들에 대한 관리와 현장 점검을 강화하고 학생들을 상대로 안전과 노동, 인권 교육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홍 씨가 죽은 지 40여 일만에 여론에 등 떠밀려 대책을 발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애초 학교와 함께 실습학생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교육청이 실태파악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 홍 씨가 자살한 저수지. 홍 씨의 시신은 자살한 다음날에야 저수지 내 팔각정에서 발견됐다. ⓒ프레시안(허환주)

교육청 "SAVE팀 배치는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홍 씨가 애견학과임에도 전공과 상관없는 상담사로 간 것은 학생이 희망해서 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장실습은 학교 재량권에 맡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지역의 한계로 아이들이 취업할 곳이 그리 많지 않다"며 "그래서 학생이 취업에 나가고자 할 경우, 최대한 학부모와 학생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현장 순회면담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을 두고도 "담임선생이 전화를 수시로 했고 문자도 자주했다"면서 대면 조사 때 작업현장을 방문하지 못한 것을 두고는 "업체가 불편해하는 것에 대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3년 전 똑같은 업체, 그리고 부서에서 자살한 곳에 홍 씨가 배치된 것을 두고는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이라며 "회사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부분이라 알지 못했다. 좀더 관심을 가졌다면 하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홍 씨의 사례를 보면 현재의 현장실습 제도는 학교 입장에서는 취업률을 위해, 그리고 업체 입장에서는 값싼 노동력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청을 비롯한 누구도 현장실습 실태를 면밀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편, 해당 업체측은 "이 같은 일이 생겨 안타깝고, 진행 중인 경찰 조사를 통해 원인이 밝혀지길 바란다"며 "협약서에는 수습 해제 후 받게 되는 급여가 기록돼 오해가 발생한 것으로, 수습기간 급여는 일반 신입사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홍양의 급여는 근무 이력과 기준에 따라 정확히 지급됐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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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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