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되면 온 나라가 순실이 밥상이 될텐데..."

[프레시안 books] <또 하나의 가족> 박근혜는 최태민 일가 '또 하나의 가족'

황해도 출신의 최태민이 포항 과부 임선이를 만난 때는 한국전쟁 직전이다. 당시 최태민에게는 이미 이북에서 얻은 애꾸눈 아들 광언이, 두 번째 결혼을 해서 얻은 최광숙과 최광현, 세 번째 결혼으로 얻은 딸 최광희가 있었다. 임선이는 아들 조순제와 일곱 살 터울의 딸 조순영(훗날 최순영으로 개명)을 갖고 있었다.

둘의 만남이 정확히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둘의 포항에서의 만남이 60년이 넘게 흐른 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만든 계기가 되리라고는 당시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임선이는 최태민과 합친 후, 가장 먼저 최태민의 전 부인을 쫓아냈다. 그리고 둘 사이의 첫 딸, 최순득을 1952년에 낳았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둘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최태민은 역마살의 운명이었던 듯싶다.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가끔 들어올 때마다 배가 남산만큼 부풀어 오른 여자를 데려오기도 했다. 이런 일은 그의 말년까지 이어졌다.

부산으로 이사한 임선이가 이런저런 장사를 시작하며 가계를 꾸려갔다. 임선이는 남편 대신 돈을 악착같이 모으기 시작했다. 1956년 최태민과의 사이에서 얻은 두 번째 딸 최순실을 임신했을 때는 암달러장사꾼이었다. 그 무렵, 최태민은 도를 닦는다며 산에 들어가 있었다. 장사, 종교, 아이. 겉보기에는 그저 바람 잘 날 없는 일가족의 풍경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악의 시작이었다.

<또 하나의 가족-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조용래 지음, 모던아카이브 펴냄)는 한국 현대사 무대를 되돌릴 수 없는 어딘가로 옮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핵심인 최순실의 의붓조카 조용래(최순실의 의붓오빠 조순제의 아들)가 쓴 악의 연대기다. 2016년 박-최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터지고, 이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기록된 조순제 녹취록이 알려지자, 이때부터 그는 이번 사건의 뿌리를 할머니 임선이와 최태민의 만남에서 찾아내, 그 잘못된 만남을 기록해나갔다. 임선이는 물론, 자신의 아버지인 조순제에 관해서도 저자는 최대한 거리를 둔다. 그들의 인간적 흠결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 독자의 신뢰를 높이는 데 집중한다.

임선이는 한국전쟁 후 서울로 올라와 일수를 시작했다. 타고난 장사꾼이었다. 이내 독립문의 영천시장, 서소문의 중림시장에서 임선이 소유가 아닌 방앗간 기계가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가 되었다. 최태민은 변한 게 없었다. 최태민이 사방에서 얻은 아이들이 의붓엄마 임선이를 찾아 자택으로 몰려들곤 했다. 당시 어머니를 증오하던 조순제는 김경옥과 결혼했다. 김경옥은 이내 임선이의 일꾼이 되었다.

역사의 수레바퀴와는 거리가 있던 이들의 삶이 달라진 건 1974년,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이다. 전국에서 박근혜를 위로하는 편지가 날아왔다. 최태민의 편지도 있었다. 최태민은 육영수가 자신에게 빙의한다고 주장했다. 어렸고, 깊은 상실감에 빠졌으며, 사회적 경험이 전무했던 박근혜는 미끼를 물었다. 이 대목을 우리는 그간 박근혜의 무지를 드러내는 장면, 혹은 최태민의 교활함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이해해 왔다. 조용래는 달리 해석한다. 최태민이 박근혜의 마음 속 꿈틀댄 권력욕을 포착해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박근혜가 왜 최태민에게 집착했는지를 설명할 때도 조용래는 이와 같은 시각을 어느 정도 유지한다.

1975년, 최태민은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들어 직접 총재가 됐다. 박근혜는 명예총재에 올랐다.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끌고 세계의 지도적 국가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이렇게 박근혜의 권력욕은 구체화했다. 박 씨와 최 씨 가문이 운명 공동체가 된 순간이다. 대한구국선교단은 대한구국봉사단을 거쳐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영애를 등에 업은 사이비 반공 단체의 권력에 돈이 따랐다. 최태민은 돈을 긁어모았다. 부패가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조순제는 이 괴상한 공동체에서 실무를 진행했다. 박정희 사망 후, 조순제는 박정희가 남긴 돈을 최태민 일가로 옮겼다. 금덩어리도 나왔고, 달러와 채권 뭉치도 나왔다. 외국 은행의 비밀 계좌에서도 돈이 나왔다. 박정희가 청렴했다는 말은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저, 부패 산물을 차지한 이가 최태민 일가였을 뿐이다. 책에서 조용래는 말한다.

(...) 박근혜 각본, 최태민 연출의 드라마에 조순제가 조연출 역할을 했다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박근혜 입장에서는 부정하고 비밀스러운 돈이었기에 나라에 헌납할 수 없었다. (박정희는) 청렴한 대통령 이미지가 한 방에 무너질 터였다. 커도 너무 큰 단위의 돈이라서 크게 당황했고, 어쩔 수 없이 최태민에게 의지했을 것이다. 자금을 옮기는 일이 마무리되자 조순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고맙다는 인사를 박근혜로부터 들었다.

하지만 훗날 조순제는 폐암에 걸려 죽기 얼마 전 자신이 평생 한 일 중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박정희의 자금을 최태민에게 옮겨다 주는 데 일조한 것이라고 아들 조용래에게 고백했다.

5공화국이 들어섰으나 박근혜와 최태민의 밀회는 지속됐다. 밀회 장소는 역삼동 최태민 일가의 집이었다. 임선이가 두 눈 부릅뜨고 있는 집 안에서 외간 여성과 최태민의 만남이 이뤄졌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박근혜는 사실상 최 씨 일가와 한 가족이 됐다. 김경옥은 박근혜 생활 관리자가 됐다. '또 하나의 가족'의 탄생이다. 저자 가족의 이야기다. 신빙성이 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중요한 건, 임선이가 왜 이 상황을 눈감았느냐는 점이다. 저자는 '대통령 박근혜 프로젝트'의 최초 지휘자가 임선이었다고 본다.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 있다.

(...) 박근혜가 오는 날에는 식구들 모두 자리를 피하고 숨었으며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았다. 이 일에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 임선이는 낚시꾼 최태민이 끌어올린 물고기가 월척 정도가 아니라 용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진짜 낚시꾼은 임선이였고 최태민은 임선이가 낚싯바늘에 꿰놓은 미끼였는지도 모른다. (...) 훗날 벌어지게 될 비극적인 사태는 바로 임선이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조순제는 이렇게 아들에게 설명했다.

"그 할매는 보통사람이 아니다. 만일 학교라도 다니고 공부를 했더라면 나라를 들었다 놨다 했을끼다. 여자 치마 들추기에만 정신 팔린 정신병자 수준의 최태민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할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렀다. 1994년 최태민은 죽었다. 최태민 사망 즈음부터 최순실이 최태민의 역할을 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조순제는 머리가 나쁘면서도 적극적인 의붓동생 최순실을 '여자 최태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최순실은 특별대우에 익숙했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검색 없이 통과하도록 조치해달라며 주변을 귀찮게 했다. 이에 조순제가 최순실에게 붙인 이가 정윤회다. 최순실을 위시해 임선이의 딸들은 곧 최 씨 일가를 장악했다. 임선이조차 딸들의 기세에 눌려 뒷전으로 밀려났다. 한 집안 내에서 권력 교체가 일어난 셈이다.

5공은 무너지고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드디어 박근혜가 잃었던 권력을 되찾기 위해 나섰다. 대구를 발판으로 거대 정치인으로 성장한 박근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섰다. TV토론회에서 청문회 패널 중 한 명이 박근혜에게 "조순제 씨를 아느냐"고 물었다. 박근혜는 모른다고 답했다. 죽음을 앞둔 조순제에게 박근혜의 모르쇠는 비수와 같았다.

조순제는 이명박 캠프 관계자를 만나 인터뷰했다. 이것이 지금 남은 조순제 녹취록이다. 녹취 작업에는 <연합뉴스> 기자 출신의 전 언론인과 신문사 논설위원 출신이 참여했다. 이명박 캠프는 강력한 무기를 얻었으나, 이 무기를 꺼낼 필요 없이 승리했다. 그렇게 녹취록은 묻혔다. 조순제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날 새벽 5시 사망했다. 조순제로서는 박근혜 대통령 체제를 보지 못해 다행인 셈이기도 하다. 조순제는 생전 이런 말도 남겼다. 현실이 된 말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온 나라가 순실이의 밥상이 되고, 박근혜는 순실이의 젓가락이 될 테니 장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냐?"

▲ <또 하나의 가족-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조용래 지음, 모던아카이브 펴냄) ⓒ프레시안
<또 하나의 가족-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에는 조순제가 2007년 한나라당 당시 강재섭 대표에게 보낸 친필 진정서 사본과 함께 문제의 조순제 녹취록이 수록돼 있다. 이 책이 지금 세간의 관심을 끄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일부는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한 녹취록은 구어체 그대로 정리되어 있다. 비록 결정적 증거는 없으나, 책의 내용에 신뢰를 더하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우리는 결국 촛불을 들어 부패한 권력자를 끌어내렸다. 그러나 박-최 게이트는 사법적으로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아니, 진실을 향한 전진은 이제 막 시작됐다. 우리는 1970년대부터 이어진 이 괴상한 운명 공동체가 이 나라를 어디까지 헤집어놓았는지, 정확한 실태를 모른다. 이 책은 박근혜 신화를 엄벌하고, 박-최 공동체의 실체를 까뒤집고, 나아가 부패한 이들을 향한 청산 의지를 되새기게끔 한다.

앞으로 검찰 수사가 이어질 것이다. 박근혜는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온 사회가 나설 것이다.

그러나 잊힐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정확한 실상을 영원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공백이 생길 수 있다. 이 책은 그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사실과 진실의 사이에서 표류할 역사적 진실의 어느 단면을 후세에게 드러낸다.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비극이자, 극적인 전진을 이뤄낸 박-최 게이트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는 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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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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