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절벽', 재앙이 아닐 수도 있다

[초록發光] '축소의 시대', 더 나은 삶 위한 계기

인구 위기는 위기일까? 애써 찾아보지 않아도 저출산·고령화로 한국사회가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를 하루에도 몇 건씩 접한다. 2017년 한국사회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신생아 수까지 30만 명 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등 인구 절벽으로 인한 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는 진단이 차고 넘친다.


경제성장과 국부를 걱정하는 입장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생태적 탈성장의 시각에서 장기적인 인구 감소는 그리 우려할 일이 아니다.

<인구 폭탄>의 저자로 유명한 미국의 생물학자 에를리히가 제안한 공식, I = PAT(환경 부하=인구*풍요*기술)은 여전히 기본 공식처럼 통용된다. 에를리히의 공식은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받지만, 급진적 생태주의자인 커머너도 근본적으로 부정하진 않았다. 다만 커머너는 I=TAP로 공식을 변형하며 인구보다는 기술과 풍요의 문제를 더 지적했을 따름이다. 그만큼 인구 축소는 생태적 탈성장의 시각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일각에서 제기된 '자발적 인류 멸종 운동'(VHEMT, Voluntary Human Extinction Movement)이 '갑툭튀'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인구 위기는 위기다. 특히 인구 절벽이 초래할 급격한 단절의 시기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지방 인구의 급격한 감소, 교육 체계의 개편, 복지 재정 및 연금 제도의 강화, 산업 구조 개편 등 산적한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고용 불안정, 소득 및 주거 불평등 등 인구 절벽을 초래한 당면한 과제들도 산더미다. 설상가상으로 인구 위기는 생태 위기, 고용 위기, 경제 위기 등 다른 위기들과 동시에 찾아올 것이다.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는 물론 인공지능과 제4차 산업 혁명, 장기적 저성장 등 위기 담론은 더 보태지 않아도 될만큼 많다. 우울한 예측으로 가득찬 2025년, 2030년, 2050년 전망은 익숙하지 않은가.


과연 한국 사회는 이와 같은 다중적 위기를 헤쳐나갈 역량이 있을까? 약간이나마 희망섞인 이야기를 하자면, 한국 사회도 이미 다가오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대응 노력이 충분한지, 위기를 지연시키거나 예방시킬 수 있는 적합한 조치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나아가 개별 사안, 개별 분야를 넘어서 다중적 위기에 대처할 통합적인 대응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개별 사안에 대한 정확한 진단, 처방과 더불어 다양한 위기를 가로질러 공통의 문제를 발견하고 공유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내야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에너지 전환, 조금 넓혀서 생태적 전환은 고령사회 대비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단편적이지만 고민하고 눈여겨볼 만한 사항이 세 가지있다.

우선 '전환'의 사회적 조건으로서 고령 사회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정의로운 전환'이 시사하듯이 전환만큼 중요한 것은 전환의 '과정'이다. 에너지 전환은 계획서 상의 시나리오나 컴퓨터 상의 시뮬레이션이 아닌 사회적, 물질적 변화의 과정이다. 전환의 시나리오는 언제나 사회 속의 행위자, 기술 등과 상호작용하며 예측을 벗어날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의 과정은 실행을 통한 학습(learning by doing)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제 고령 사회는 전환 과정에서 피해갈 수 없는 사회적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전환의 사회적 조건을 아직 크게 고려되고 있지 않는 듯하다. 단적으로 지역 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은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어떻게 확산될 수 있을 것인가? 고령화로 지역 사회, 지역 공동체의 활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에너지 전환의 동력은 유지될 수 있을까? 질문은 더 다양하게 확장될 필요가 있고, 아마도 지역화된 재생 에너지가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답 이외의 해법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각각의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의미한 변화들을 연결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생태 도시·전환 도시와 고령 친화 도시가 예가 될 듯 싶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활기찬 노년(Active aging)'과 '정든 곳에서 나이 들어감(Aging in place)' 등을 주요 기치로 노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이 살기 좋은 도시 환경 조성을 위한 고령 친화 도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고려 친화 도시 가이드 라인을 보면, 특히 도시 환경과 교통, 주거, 건강 및 여가 등의 분야에서 생태 도시나 에너지 전환과 연결될 만한 것들이 많다. 예컨대, 도심 공원의 확대, 대중교통의 확충과 보행권 보장 등은 녹색인프라(green infrastructure)를 구축하는 것과 맞닿아있다.

도시 녹색 공유재(urban green commons)로 주목받는 커뮤니티 가든은 공유적 실천을 통해 먹거리의 자립성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령층의 건강한 여가 활동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영유아와 고령층이 미세 먼지나 대기 오염에 더 취약하다는 점에서 태양광 등 재생 에너지의 확산은 에너지 자립을 넘어 고령 사회에서의 건강권 문제와 직결된다. 곳곳에 흩어져있는 변화의 시도들을 모아서 생태적 고령 친화 도시를 구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생태적 전환의 문제 의식은 고령 사회에서 제기될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길을 찾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월 설립된 한살림 어르신 방문 돌봄 센터가 본보기가 아닐까 한다.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삶의 자립을 이루는 돌봄'을 취지로 만들어진 한살림 어르신 방문 돌봄 센터는 형식적으로는 방문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가 장기 요양 기관이다. 그러나 먹거리에서 시작된 한살림의 살림, 돌봄, 자립의 철학을 반영하여 지역에서의 삶의 자립을 추구하고 있다. 이제 막 씨앗이 뿌려진 만큼 어떤 싹이 트고 꽃을 피울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조금 더 나은 요양 서비스에 그치진 않을 것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출생아 60만 명에 맞춰진 사회 시스템을 앞으로 그 절반 수준에 맞춰 재설계해야한다고 한다. 걱정이 앞서지만, 생태적 탈성장의 시각에서 '축소의 시대'는 더 나은 삶을 위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만 고령사회라는 '전환의 계곡'을 넘어서야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고난한 길이겠지만 달리 피해갈 수도 없다. 에너지 전환, 생태적 전환의 고민도 조금 더 커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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