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은 잘 나가는데, 당원은 '죄인' 되는 나라

[하승수 칼럼] 모두가 당당히 정당 활동하는 사회 만들어야

대한민국에서 "나는 OO당 당원"이라고 밝히기란 참 낯선 일입니다. 대한민국은 정당 혐오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정당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중립성' 명목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정당 당원을 여러모로 배제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정당의 당원이 된다는 것은 때로는 불이익이나 낯선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매년 3월이 되면 각 정당의 팩스에는 'OOO가 정당의 당원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문서가 들어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일부 지역의 교육청과 학교에서 정당 당원은 학교운영위원조차 맡지 못합니다. 조례나 각 학교 자체 규정에서 '정당의 당원은 학교운영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제한을 두지 않은 지역교육청과 학교도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누가 정당의 당원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정당의 당원명부는 비공개이기 때문입니다. 매년 봄마다 각 정당의 팩스로 누가 정당의 당원인지를 확인해달라는 팩스가 들어오는 이유입니다. 물론 정당이 응답할 의무는 전혀 없습니다. 참 웃기는 일입니다.
학교 단체뿐만이 아닙니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위촉하는 위원의 자격에도 정당의 당원을 배제해 놓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원의 중립성을 해치는 것은 정당 당적이 아니라, 이해관계 충돌입니다. 최근 월성1호기 수명연장과 관련해서 서울행정법원이 '위원자격이 없는 사람이 원자력안전위원이 되어 있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습니다. 문제가 된 위원 2명은 원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사내위원회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는데, 원전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런 사례가 문제이지, 단순히 정당의 당원이라는 이유로 위원회에서 배제하는 것은 비합리적입니다. (☞ 관련기사 : 정부의 원전 안전 관리가 '개판'이었음이 입증됐다)

대한민국이 정당 혐오 국가임은 수많은 사람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교사, 공무원의 정당 가입은 여전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정당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 가입을 이렇게 포괄적으로 제한해 놓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민주주의 선진국인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교사나 공무원이 자유로이 정당에 가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것도 문제입니다. 지금 스웨덴 교육부 장관은 1983년생입니다. 2014년 32살의 나이에 교육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구스타프 프리돌린이라는 이 스웨덴 교육부 장관은 11살에 스웨덴 녹색당 당원으로 가입했습니다. 19살에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32살에 교육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등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청소년의 정당 가입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진보적 성향의 정당뿐만 아니라 보수적 성향의 정당도 청소년 조직을 만들고, 일찍부터 정당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반면 대한민국은 정당에 헌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정당의 후보 추천에 의해 대부분의 선출직 공직자를 뽑으면서도, 국민은 정당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끔 합니다.

이 때문인지, 거대 정당들은 진성당원이 아닌 '페이퍼 당원'을 끌어 모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껍데기 정당'이 되었습니다. 거대정당의 당원 중 자신이 당원으로 가입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분이 많을 겁니다. 당비도 내지 않는 당원이 90% 안팎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사람의 부탁에 의해 당원으로 이름을 올려놓은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선거마다 후보자로 나오려는 사람들이 지인들을 당원으로 끌어들이는 경우도 봅니다.

한편으로는 정당혐오를 조장하고, 다른 한편으로 페이퍼 당원을 모아서 껍데기 정당을 만들어 운영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희망도 발견합니다. 이런 현실에도 굳이 당비까지 내면서 자발적으로 당원이 되고, 자신이 정당 당원임을 감추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며칠 전 제가 찾은 강연의 뒤풀이에서 한 청년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OO당은 생애 첫 정당이고, 마지막 정당일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다른 정당의 당원도 있었는데, 이 청년을 계기로 여럿이 자신이 어느 정당의 당원인지 자연스럽게 밝히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지지하는 정당은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각자 의견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국민 다수가 한 정당만 지지하는 국가라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당이든, 정당에 가입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정당 당원이 자신의 당적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숙한 민주주의가 가능합니다.

저는 녹색당 평당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녹색당이 창당한지 3월 4일로 정확하게 5년이 됩니다. 아직 인지도가 낮은 정당이지만, 세계 90여 개국에 존재하는 국제적인 정당입니다. 생명, 평화, 인권, 풀뿌리 민주주의와 같은 시대적 가치를 담아내고자 하는 정당입니다. 이런 정당이 대한민국에서 자리잡아가는 것을 보면서 당원으로서 느끼는 자부심이 큽니다.

녹색당뿐만 아니라 정의당, 노동당, 민중연합당, 그리고 최근 청년들이 창당을 준비하는 '우리미래' 당까지, 한국에도 거대 정당 외에 다양한 소수정당이 존재합니다. 정당의 당원이 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에 만연한 정당 혐오, 정치 혐오를 깨는 중요한 실천입니다.

정당 가입조차 금지된 사람들의 정치적 권리를 살리는 것은 우리가 동료 시민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단 한 명이라도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이 있는 사회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회가 아닙니다.

▲ 정당은 모든 국민에게 열린 존재라야 합니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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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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