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진짜 '사드 실리주의'란 이것이다

[정욱식 칼럼] 안희정의 사드 '착각' <상>

대선 레이스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안희정 충남 지사의 사드 입장이 화제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사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국가 간에 이미 협상해 놓은 걸 이제 와서 뒤집는다는 건 쉽지 않다"고 했다. 사드 배치 결정이 "현실은 유감스럽지만, 중국도 존중해 줬으면 한다"고도 했다. 사실상 사드 수용 입장을 밝힌 것이다.

왜 이런 걸까? 크게 두 가지 때문으로 보인다. 하나는 "전통적 한미 전략적 동맹관계를 그렇게 쉽게 처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분단과 전쟁을 겪었고, 한미연합작전이라는 안보체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한미동맹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드 배치를) 거부하는 것은 한미동맹을 근본부터 흔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하나는 사드 배치 수용이 "5000만 국민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진영을 떠나 합리주의적 생각을 견지"하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진영 논리를 초월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에 정말 필요한 일"이자 "진정한 정치 지도자의 용기"라고 믿는다. 논란이 되고 있는 대연정 발언도 이러한 믿음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일 게다.

하지만 나는 착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먼저 안 지사는 "사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결정이 잘못됐다"고도 했다. 이는 그 역시 사드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를 고수하고 이에 반발하는 중국의 보복 조치로 한국민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미동맹과 중국·러시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북한은 '사드 대란'을 즐기는 모양새다.

그런데도 안 지사는 "5000만 국민의 이익"을 운운하면서 사드 배치 결정을 존중하자고 한다. 본인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드를 국민들에게는 수용하자고 호소하는 셈이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안 지사는 사드 배치를 "전통적 한미 전략적 동맹관계"와 동일시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대단히 위험천만한 발언이다. 그는 '전략적 동맹'이라고 했는데, 이것부터가 큰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전략적 동맹은 한미간의 양자동맹을 지역동맹, 더 나아가 글로벌 동맹으로 확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중국에 대한 견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전략동맹을 선언했을 때,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한미일 군사정보보호 약정과 한일 군사정보보호 협정을 체결했을 때, 중국이 "냉전 시대의 유물"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안 지사는 "한미 전략적 동맹"을 위해 사드 배치를 수용하자고 한다. 이는 대놓고 중국과 맞서자는 얘기와 진배없다. 안 지사의 의도와 관계없이 말이다.

착각의 백미는 "국가간에 이미 협상해 놓은 걸 이제 와서 뒤집는다는 건 쉽지 않다"는 발언에 있다. 안 지시의 시야에 최근 중요한 국가간의 합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드 배치 결정이고, 또 하나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다. 그는 이들 합의 모두 문제가 있지만, 미국과의 합의는 존중해야 하고 일본과의 합의는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냉정하게 보면 사드 합의가 위안부 합의보다 재협상 여지가 더 많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관심사는 사드 배치가 아니라 임박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 저지이다. 그런데 사드 배치 결정으로 대북 국제 공조는 이완되고 한중,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다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흐리게 하는 사드 배치를 최소한 유보하고 북핵 해결에 적극 나서자고 말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와도 충분히 협의 가능한 의제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여론의 변화 및 성주와 김천의 강력한 저항은 대미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는 국내적 기반이기도 하다.

안 지사가 미국을 의식해 사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면, 한일 위안부 합의를 재협상하거나 개선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해진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호응할 가능성도 거의 없지만, 위안부 합의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미일 3각 동맹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일간의 역사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보고 양국을 집요하게 설득·압박했다. 합의가 나오자 가장 환영한 나라도 오바마의 미국이었다.

인권을 중시한다는 오바마 행정부조차도 군사전략적 관점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배후 조정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인권 자체에도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동맹국의 역할과 비용 증대를 중시한다. 이런 트럼프를 상대로 위안부 문제는 "전쟁 범죄와 인권유린은 역사 시효가 없다"며 "일본에게 용서를 빌게 해야 한다"는 안 지사의 발언이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드 배치 강행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도 더욱 불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밖에 없다. 북한, 중국, 러시아의 반발은 한미일의 군사 협력 강화의 빌미로 작용할 것이고, 이는 차기 한국 정부가 일본과 미국을 상대로 위안부 합의를 거론한 것 자체를 더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드와 같은 안보 문제는 진영 논리를 초월해야 한다는 안 지사의 주장은 일견 수긍할만하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사드 배치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미국만 보더라도 그렇다.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MD)에 본격 시동을 걸었던 때는 민주당의 존슨 행정부였다. 하지만 이에 제동을 걸고 중국 및 소련과 데탕트 시대를 연 정권은 '냉전의 전사'로 불렸던 공화당의 닉슨 행정부였다. 스타워즈(전략방위구상)를 앞세워 신냉전을 초래했던 공화당의 레이건 행정부도 임기 막바지엔 MD 수위를 크게 낮추고 소련과의 협상을 선택했다. 그리고 레이건의 바통을 이어받은 공화당의 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전략방위구상을 아예 철회했다. 반면 "냉전은 이미 끝났다"고 호언장담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MD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신냉전이라는 말이 지구촌 북반구를 맴돌고 있다.

진영 논리 탈피는 이념보다는 실리를 우선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미국의 여러 보수 정권이 위와 같은 선택을 한 데에는 MD가 초래할 경제적 부담과 공멸의 위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반면 오바마는 개인적으로는 MD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보수파들의 안보 공세를 의식해 강력한 MD를 추구하고 말았다.

안희정 지사가 진정 진영 논리를 초월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진보 진영을 향해 사드를 수용하자고 말할 것이 아니라, 보수 진영을 향해 사드의 득실관계를 제대로 따져보자고 제안해야 한다. 이래야 탈이념적 실리주의에 걸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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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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