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과학자 박상표가 남긴 글들

[프레시안 books] <구부러진 과학에 진실의 망치를 두드리다>

과학은 이론을 구축하고 진실을 추적해 사회와 소통한다. 우리가 과학을 존중하는 이유는 과학이 우리 삶을 윤택케 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과학에 불편부당함을 기대한다. 지금 우리가 다다를 수 있는 가장 절대적 진실의 세계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자신을 되돌아보게끔 하리라 기대한다.

불행히도 과학이 언제나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압도적 자본의 힘은 과학을 무릎 꿇리기도 한다. 과학적 진리가 우리 삶을 흔드는 논리 앞에 흔들리는 순간을 우리는 자주 목격했다. 4대강 사업이 강을 살리리라 말한 과학자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름을 드높이려는 욕망에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연구 결과를 조작해 세상을 시끄럽게 한 과학자도 안다. 과학의 진리는 나쁜 이들에 의해 때로 구부러져 시민의 삶을 위협했다.

지난 2014년 별세한 고(故)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과학의 사회적 책임을 누구보다 깊이 통감하고,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을 누구보다 깊이 모색한 이다. 그가 집요하게 파헤친 과학적 사료는 2008년 광우병 정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강화하는 결실로 이어졌다. 박 국장의 연구 결과는 대만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마저 바꿀 정도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박 국장은 담배회사의 이익에 복무하며 학자로서 양심을 버린 과학자의 이름을 실명 비판하기도 했으며, 지금도 한국을 뒤흔드는 조류 독감(AI) 문제의 원인으로 공장형 축산업의 폐해를 이슈화하는 데도 앞장섰다. 단순히 연구실에 머무르는 과학이 아니라, 시민의 삶과 함께 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신념이 이룬 성과였다.

<구부러진 과학에 진실의 망치를 두드리다>(박상표 지음, 따비 펴냄)는 고인이 생전 <프레시안>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남긴 글을 목차별로 정리한 책이다. 책은 크게 세 챕터로 나뉜다. 광우병 사태, 인플루엔자(조류 독감, 돼지 독감), 조작(유전자 조작)이 큰 줄기다.

개별 주제 아래에서 박 국장이 생전 쓴 글은 수년이 지났음에도 빛난다. 특히 인플루엔자 부문의 글은 지금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가 생전에 남긴 경고를 무시한 결과가 이토록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울 정도다.

▲ <구부러진 과학에 진실의 망치를 두드리다>(박상표 지음, 따비 펴냄) ⓒ따비
특히 '돼지 독감(신종 플루)보다 정리해고가 무서운 나라' 부문은 그의 가치관이 어디 있는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2009년 국내에 돼지 독감이 대유행해 사람에게까지 옮을 정도로 큰 피해가 두드러질 때 쓴 이 글에서 박 국장은 돼지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은 없으나, 쌍용자동차 총파업 과정에서는 4명이 사망했다며 한국의 현실을 날카롭게 진단한다. 이어 그는 돼지 독감이 번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정부가 왜 노동자의 희생은 방치하느냐고 지적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책에서 사회운동 단체의 잘못된 관행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한국의 쇠고기 역시 안전하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피아를 가리지 않고 진실을 추구한 박 국장을 기리며 "지금도 우리는 그가 찾아 놓은 줄기세포 자료로 현재의 줄기세포 규제 완화의 문제점들을 짚어 나가고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박 국장 사망 1년 후, 중국의 썬얼 영리병원이 제주도 진출을 막은 건 그가 생전 찾아놓은 자료였다. 박 국장은 워낙 집요하게 연구 자료를 찾고 분석했던 탓에 '자료 대마왕'이라는 별칭을 동료들로부터 얻었다.

우 위원장은 "오늘 우리가 든 촛불에는 박상표가 들고 있는 촛불도 있다"고 단언한다. 2008년 광우병을 반대하며 타오른 촛불의 정신이 여태 이어지고 있으며, 그 바탕에는 생전 박 국장이 추구한 과학적 진실 탐구 정신이 자리한다는 뜻이다. 이 책은 그의 생전 글의 기록이지만, 그 내용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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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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