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 화재, 만약에 잠실 롯데서 일어났다면…?"

[안종주의 안전 사회] "안전 소홀한 기업 모두 망하게 해야"

인재(人災), 안전불감증이란 말이 우리 사회에서 언제 사라질까? 지난 4일 경기도 동탄 메타폴리스 단지 내 66층 복합 건물 가운데 상가 건물이 있는 3층 뽀로로 파크 점포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4명이 숨지고 47명이 부상을 입었다. 재난 박물관에 또 하나의 식구가 들어왔다. 이 화재 사건으로 또 인재와 안전불감증이란 말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재난, 특히 사회적 재난 대부분에는 이 두 단어, 즉 인재와 안전불감증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어 다닌다. 이번 화재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철거 작업에 투입된 작업자들을 조사하니 방염포, 불티 비산방지 덮개 등 화재 예방을 위한 조치 없이 용단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또 당시 작업 현장 주변에는 합판 조각이나 카펫, 우레탄 조각 등 가연성 물질이 있었으며, 작업 중에도 여러 차례 불티가 주변에 옮겨 붙어 물을 뿌려 불을 끄면서 작업을 했다고도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형적인 인재이며 안전불감증이 확실한 셈이다.

용단 작업은 가스를 사용해 금속을 절단하는 것을 말한다. 용접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용접·용단 작업은 화재의 위험이 매우 높아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 등에서도 안전 작업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용접·용단 작업을 벌이던 곳에서는 화재·폭발 등 사고 확률이 매우 높아 작업 중 인명 피해가 자주 발생했다. 지난해 6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 지하철 4호선 공사 현장에서 용단 작업 중 가스 폭발사고가 나 4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작업자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작업자 안전교육은 제대로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또 비용을 아끼고 작업을 빨리빨리 하려다 보니 작업자가 희생된 것은 아닌지 묻고 따질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재난들이 안전보다는 돈이 먼저인 고질적 사고방식과 문화 때문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가 그랬고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그랬다.

123층 잠실롯데에서 화재, 생각만 해도 아찔해

이번 사건은 여러 모로 우리 사회에 의미심장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66층 초고층 빌딩에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만약 123층이라는 초고층 높이의 서울의 랜드마크인 잠실롯데빌딩에서 대형 화재가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상상을 해보면 정말 아찔하다.

누군가가 말했다. 현대사회에서 위험은 피할 수 없다고. 현대 사회, 아니 과거 사회에서도 재난과 위험은 늘 있었다. 단지 현대 사회에 올수록 위험의 종류가 많아지고 위험의 크기가 더 커졌을 뿐이다. 초고층 빌딩의 화재나 붕괴 등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이다.

돈이 최고 가치인 사회에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빨리빨리 건물을 짓거나 철거한다. 석면이 가득 들어 있는 건물도 감시가 소홀하면 석면 먼지를 풀풀 날리며 후딱 해치운다. 때론 야음을 틈타 일반 건물처럼 석면 건물을 마구 철거해버린다. 노동자도 당장에 질병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쥐꼬리만한 품삯을 받고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악덕 불법업자에게 내맡긴다.

산소 용접이나 절단을 하는 노동자들도 방염포, 불티 비산 방지 덮개와 같은 화재 방지 장비나 조치가 필요한 것을 알지만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으므로 설마 화재로 목숨을 잃겠는가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안이함과 안전불감증이 이날 이 건물 피부관리실에 왔던 손님들의 생명마저 앗아갔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합동으로 8일 화재 원인에 대한 감식을 벌인다고 한다. 재난에서 사고의 원인규명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유사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직접적인 사고 원인 말고 비용 절감과 같은 간접적 사고 원인이다. 때론 이것이 제2의 동탄 빌딩 화재를 막는 근본 처방일 수도 있다.

유해 제품 판매 기업, 안전 소홀한 기업 모두 망하게 해야

불안사회에서는 돈 있는 사람들이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돈 잘 버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위험한 작업을 돈 못 버는 업체에 하청을 준다. 규모가 큰 하청업체는 다시 영세기업에 재하청을 준다. 위험과 재난의 폭탄 이어 안기기다. 그래서 영세업체 종사하는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는 늘 목숨을 담보로 하루 끼니를 때울 돈을 벌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위험과 재난을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고, 매우 위험한 일은 하청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법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또 안전에 대한 투자는 버리는 비용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버리고 안전은 외려 돈을 벌어준다는 인식을 갖도록 기업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안전사회는 안전의 가치를 아는 기업이 더 번창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문화가 하루 빨리 우리 사회에 뿌리를 박기 위해서는 대형 재난을 유발한 기업과 사람, 상습적으로 악성 산재와 재난을 일으키는 사람과 기업에 대해서는 징벌적 처벌을 하고 손해 배상에서도 징벌성을 가해 안전을 소홀히 하거나 유해 제품을 내놓으면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동탄 화재는 먼 나라에서 벌어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재난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자신이 아무리 조심하고 주의하더라도 재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피부 관리를 받던 손님 2명 사망이 방증하고 있지 않은가.

국정농단에는 "염병하네" 새로운 세상에서는 "안전하네"

안전에 대한 개인의 인식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가 더 안전한 쪽으로 나아가도록 시스템과 법 제도를 개혁하고 그러한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정치지도자와 정치 세력을 선택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중요할 것이다. 재난을 당한 피해자와 유가족과 공감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 안전의 가치를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도록 만드는 지도자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얼마 전 특검이 입주한 건물에서 청소하는 아줌마가 최순실이 특검 조사를 받으러 호송차에 내린 뒤 특검을 욕하며 들어가자 그 등 뒤에다 대고 "염병하네, 염병하네, 염병하네"를 연발해 국민의 답답한 속을 확 풀어주었다. 동탄 화재를 비롯한 세월호, 가습기살균제, 메르스 등 이 땅에서 일어났던 많은 재난과 안전사고로 고통을 겪었던 피해자와 유족, 그리고 이를 지켜보고 우울했던 많은 국민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새로운 세상에서 "안전하네. 안전하네. 안전하네"를 외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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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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