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신뢰의 정치인 박근혜' 누가 만들었나?

[안종주의 안전 사회] '신뢰' 무너지면 '안전'도 없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해 교수 등 식자층은 식자층대로, 대선 잠재후보들은 그들대로 사자성어로 과거를 평가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한다. 병신년을 한마디로 표현한 사자성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군주민수(君舟民水)이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이 사자성어는 '강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임금)를 뒤집을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보다 더 지난 한 해를 오롯이 담고 있는 사자성어를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올해는 정유년이다. 정유년이 끝날 때 <교수신문>은 또 어떤 사자성어로 한 해를 평가할지는 그 누구도 가늠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은 제각각 포부가 섞인 사자성어를 내놓고 있다. 대선 예비후보들의 사자성어는 야권 잠룡들이 워낙 많아 일부러 열심히 익히고 기억하지 않는 한 일일이 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다.

'재조산하(再造山河)'(문재인) '사불범정(邪不犯正)'(이재명) '마부위침(磨斧爲針)'(안철수) '혁고정신(革故鼎新)'(박원순) '민주주의(民主主義)'(안희정) '노적성해(露積成海)'(김부겸) '국태민안(國泰民安)'(손학규) 등이다. 그 참뜻까지 훤히 꿰차려면 더 공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력을 들인 만큼 각인 효과가 크므로 참뜻을 살피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악취 풍기는 대한민국에서 재조산하(再造山河)라는 탈취제를 기다리며

민주주의와 국태민안을 말한 안희정, 손학규 두 잠룡의 사자성어는 별도의 해설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익히 아는 말들이다. 사자성어는 이를 고른 사람의 생각을 담고 있는 표현이다. 일반인보다는 사자성어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한 한문학자는 탄핵과 그에 따른 조기 대선, 그리고 지난 4년간 헌법 유린과 국정 농단을 해 온 박근혜 정권의 민낯을 통찰한, 올해 가장 어울리는 선택으로 문재인의 '재조산하'를 꼽았다. 물론 그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터이다.

박근혜 정권 4년은 정치·외교·통일·경제·사회·문화·언론·인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위기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그 위기는 해소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거의 모든 부문에서 국정 농단으로 구린내가 진동하고 있다. 이 악취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서는 국민이 결코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국가 대개조, 국가 대개혁이 하루빨리 확실히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이, 또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기는 모든 개인과 조직에서 일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개인과 조직은 크고 작은 실패를 할 수 있다. 어떤 개인과 조직은 실패를 거울삼아 과거보다 더 나은 성취를 일궈낼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것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그런 사례를 많이 보아왔다.

작은 위기를 큰 위기로 만들지 않은 개인과 조직은 위기 대응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 위험이든, 위기든 절체절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난 사례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정직, 즉 진실이다.

거짓말 자판기 박근혜, 새해 첫날에도 가동

박근혜 정권의 실패는 정직·진실이 아니라 거짓을 국정 기조로 삼은 결과물이다. 지금 대통령 박근혜는 한 때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사람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거짓의 화신(化身)이 되어버렸다. 새해 첫날부터 기자들을 청와대에 불러 모아놓고 거짓말의 향연을 펼치는 거짓말 자판기 노릇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다.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정직이다. 위험(위기) 소통(커뮤니케이션)에는 7가지 원칙이 있다. 흔히들 7가지 황금 원칙(seven golden rule)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이다. 정직은 개인과 조직이 신뢰를 쌓게 만들어주는 으뜸 덕목이다.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자(話者, speaker)의 공신력이다. 늑대가 오지 않았는데도 여러 차례 늑대가 마을로 내려와 양들을 잡아먹는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거짓을 말한 양치기 소년이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늑대가 왔다고 했음에도 늑대를 쫓으러 주민들이 오지 않아 자신이 기르던 양들이 모두 잡혀먹었다는 이솝 우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그들의 부역자들이 아직도 쉼 없이 국민을 향해 거짓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이솝 우화도 읽지 않은 모양이다. 2000년이 훨씬 넘는 옛날에 이미 깨달은 진리를 내팽개친 양치기 대통령을 떠받든 이들은 요즘 집단 울화병에 걸렸다. 웃픈 '최가박당(최순실 패밀리와 박근혜 새누리당)'의 거짓말이 언론, 검찰, 특검에 의해, 그리고 내부고발자에 의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란 화자는 이미 공신력을 잃은 지 오래다. 더는 소통 자체에 낄 수조차 없는 인물이 되었다. 그 어떤 소통 방법으로 국민과 소통하려 해도 다 부질없는 짓이 돼버렸다. 지금에 와서는 가만히 있는 것이 그나마 하책(下策) 가운데 상책(上策)이다. 기자간담회 등 그 어떤 형식을 빌려 말하더라도 하책 중 하책이 된다.

무릇 모든 개인과 조직을 이끄는 사람은 평소 주변 사람이나 국민한테서 화자의 공신력을 얻기 위해 힘써야 한다. 시쳇말로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듣는 사람들이 이를 믿고 받아들일 정도의 신뢰도를 쌓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화자의 신뢰도 측면에서 보자면 빵점의 정치인이다.

'신뢰의 정치인 박근혜'란 가짜 신화 만든 보수 언론, 아직도 신뢰하나요?

그동안 지지자들이 그를 신뢰 정치인의 아이콘처럼 인식하게 만드는데 일등 공신 노릇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보수 언론이다. 그렇다면 보수 언론은 독자와 시청자에게 사죄하고 또 사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보수 언론들이 '박근혜 죽이기'에 동참하는 변신을 택함으로써 국민의 눈과 귀를 다시 흐려놓으려는 작전을 벌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양식이 있는 언론이라면 박정희 가짜 신화에 이어 박근혜 거짓 신화 만들기에 앞장서온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제2의 박근혜' 만들기에 나선다면 그래서 국민의 눈이 다시 멀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또 다른 위기에 놓이게 될 터이다.

보수 언론의 국민 눈 흐리기는 박근혜-최순실의 헌법 유린과 국정 농단으로 그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다. 특히 이런 국민 눈 흐리기는 총선 때나 대선 때 강력하게 발동된다. 대한민국 정치·사회적 위기의 상당 부분은 부패·거짓 정치 세력과 언론 본연의 가치를 포기한 보수 언론의 합작 때문에 벌어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당나귀 귀를 당나귀 귀로 알아보는 능력, 즉 양치기 소년이 외치는 소리가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화자의 공신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길 밖에 없다. 그렇게 해야만 개인적으로 사기를 당하지 않고 위험에 빠지지 않게 된다. 또 사회적으로는 무능·부패·거짓 정치와 '무늬만' 언론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화자가 참만을 이야기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또는 그가 속한 집단이 그동안 어떤 삶과 길을 걸어왔는지를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진실의 삶을 올곧게 살아온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순간의 이득에 눈이 멀어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일삼는, 그런 짓은 결코 하지 않는다. 특정 정치 세력이나 '사이비' 언론이 누구 또는 특정 집단·조직을 폄훼할 때 화자가 과거 얼마나 공신력 있는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그들이 깎아내린 대상이 평소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를 모두 살펴 화자의 주장을 판단해야 한다.

"늑대가 온다!"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그 사회의 안전과 안녕을 보장하는 것은 제도와 함께 사람이다. 이 둘은 바늘과 실의 관계와 같다. 바늘에 실이 잘 꿰어져야 찢어진 옷을 수선할 수 있다. 사회나 공동체가 위험이나 위기에 빠지지 않으려면, 또 위험이나 위기에 빠졌을 때 재빨리 헤어나려면 안전을 보장하는 제도와 함께 이를 잘 운영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나 집단이 이를 맡아야 한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으뜸으로 여기는 사람과 집단은 안전과 생명을 보듬기 위한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데 노력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은 거짓이 아니라 참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운다. 이들은 빛이 어둠을 물리친다고 믿는다. 돈이 우선이 아니라 생명이, 사람이 먼저임을 말하고 실천한다.

지난 9년 간의 세월은 어떠했는가? 거짓보다는 진실이 세상을 지배했는가? 아니면 모든 것이 돈과 거짓으로 얼룩졌는가? 정치와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빛이 어둠을 물리친 대한민국이었는가? 재벌과 기업은 건설 현장과 작업 현장에서 기업의 이윤보다 노동자의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는가? 정부와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세월호 희생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메르스 사망자들의 죽음 앞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들의 희생을 딛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고 과연 애를 썼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예'라고 선뜻 하지 못한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거짓이 아니라 정직한 언행을 하는 사람과 집단을 택하라.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들에게 생명을 맡기고 안전을 요구하라.

우리의 생명과 안전은 절로 오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생명과 안전을 모든 것의 앞에 두고 거짓이 아니라 참을 중시하는 사람이나 집단과 함께해라. 2016년 병신년 한 해가 양치기 대통령이 "늑대가 온다!"고 외쳤던 거짓의 시기였다면 2017년 정유년 한 해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란 소리가 널리 울려 퍼지는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