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표현조차 아까운 '자기변명 57분'

'심판일' 다가온 박근혜 '최후의 몸부림'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싼 일체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언론보도를 비롯해 검찰과 특검 수사에서 확인된 사실조차 부인하는가 하면, 탄핵은 '거짓말'에 근거한 '체제 반대 세력'의 '기획'으로, 촛불 집회를 '근거 없는 루머'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하는 등 거리낌 없이 민심에 정면으로 맞섰다.

박 대통령은 이날 보수 논객 정규재 씨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 <정규재TV>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지금 너무나 많은 허황된 얘기가 돌아다니고 있고, 그 허황된 얘기가 진실이라고 하며 또 다른 엄청난 허황된 얘기를 만들어 산더미 같이 덮혀있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그런 허황한 얘기를 들으면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탄핵하기 위해 그토록 어마어마한 거짓말을 만들어내야만 했다고 한다면 그 탄핵 근거가 얼마나 취약한 건가 그런 생각을 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허황된 얘기'의 근거로 든 "향정신성 약품을 먹었다든지,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든지"라는 의혹은 항간의 미확인 소문이거나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다.

진행자 정규재 씨도 '정윤회와 밀회했나', '정유라가 박 대통령의 딸이라는 소문도 있다' 등 풍문으로만 떠도는 이야기들을 질문해 박 대통령에게 변명의 기회를 열어줬다.

이에 박 대통령은 "사실에 근거하면 깨질 일들이 이렇게 자꾸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오해와 허구와 거짓말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는가를 역으로 증명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저질스러운 거짓말이 난무하는 이게 건전한 분위기인가 하는 회의가 많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그동안 (사태가) 쭉 진행된 과정을 추적해보면 뭔가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면서 "그냥 우발적으로 된 건 아니라는 느낌은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획자가 누구인지는 "지금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다"며 밝히지 않았다.

또한 정규재 씨가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집요한 의혹 제기에 여성 비하 의식이 포함됐다고 생각하느냐'고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지자 박 대통령은 "그렇다. 여성이 아니면 그런 식으로 비하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블랙리스트 폭로 유진룡 겨냥 "개탄스럽다"

이어 박 대통령은 최순실 씨와 경제 공동체가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그건 엮어도 너무 억지로 엮은 거다. 경제공동체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니까 특검에서도 철회를 할 정도로 말 안 되는 얘기들"이라고 부인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해서도 "정책과 기밀을 알았다는 건 아예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전면 부인했다. 대통령 연설문 등이 사전에 최 씨에게 전달된 것으로 확인된 사실조차 잡아뗀 것이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최 씨가 사익을 추구했다거나 국정을 개입했다는 부분에 있어 제가 몰랐던 건 불찰"이라고 최 씨의 국정 개입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등 논리가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최 씨의 인사 개입 문제에 대해선 "인사를 할 적에는 가능한 한 많은 천거를 받아서 최고로 일을 잘할 인사를 찾게 되지 않나.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추천은 할 수 있다"면서 "추천받아도 검증을 해서 다 비교를 해본다. 누가 원한다고, 천거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아니다"고 부인했다.

다만 "(최 씨의 인사 개입이) 문화 쪽 외에는 없었다"며 최 씨의 인사 추천 경로와 관련해선 "비서관을 통해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폭로한 유진룡 전 문화부 장관에 대해선 "장관으로 재직할 때 말과 퇴임한 후의 말이 달라지는 것,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반면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해선 "뇌물죄도 아닌데 구속까지 한 건 너무 과했다"고 감쌌다.

보수단체 집회 "촛불 시위보다 두 배 넘어"

박 대통령은 주말마다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을 밝힌 촛불 민심에 대해선 "광우병 그리고 이번 사태 두 가지 모두 근거가 약했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점이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촛불 시위는 광우병 시위의 연장선, 즉 허공에 뜬 의혹과 루머에 의해 추동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는 정규재 씨의 질문을 받아 한 말이다.

반면 보수단체의 맞불 집회에 대해 박 대통령은 "촛불 시위보다 두 배도 넘을 정도로 정말 열성 갖고 많은 분들이 참여하신다고 듣고 있다"고 되레 허황된 주장을 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왜 저렇게 눈도 날리고 날씨도 추운데 계속 많이 나오시게 됐나.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해야 한다, 법치 지켜야 한다, 그런 것 때문에 여러 가지 고생 무릅쓰고 나온다고 생각할 때 가슴이 미어지는 그런 심정"이라고 감정이입을 한 듯한 언급까지 했다.

이밖에 박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주최한 '박근혜 풍자' 전시회 논란과 관련, 박 대통령은 "넘어서는 안 되는 도를 죄의식도 없이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을 보면서 지금 현재 한국 정치의 현주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분당 사태에 이어 내홍을 겪고 있는 새누리당에 대해선 "정당은 같은 신념과 가치관, 안보관, 역사관, 경제관을 공유하는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정치결사체"라며 "둥지가 튼튼해지면 대선후보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차기 대선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보수 결집' 노린 여론전

57분간 진행된 이날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직무정지 상태일지언정 '대통령'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품격조차 버리고 마치 사법처리를 앞둔 피의자 같은 변명으로만 일관했다는 평가다.

특별검사팀이 2월 초로 대면조사를 예고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도 '3월 13일 전'이라는 심판 시한을 제시한 만큼 서둘러 여론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설 연휴를 앞두고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위한 노림수도 엿보인다. 당초 검토했던 기자 간담회가 직무정지 상태인 대통령의 처신으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에 부딪혀 여의치 않아지자 보수 논객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편향성 논란에 아랑곳없이 하고 싶은 말, 지지층 구미에 맞는 말만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이날 사드 배치 문제에 관해 "제가 손발이 묶이지 않았다면 여러 가지 힘 쓸 일이 있지만 지금은 (직무가) 정지돼 있으니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하거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국정과제로 삼아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다지는데 심혈을 기울여왔다"고 언급하는 등 자신의 정책 기조를 거론한 것은 직무정지 대통령의 법적 활동 범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박경미 민주당 대변인은 "직무정지 상태인 대통령이 보수논객을 불러 자기를 방어하는 논리만 일방적으로 폈다. 명백히 헌법을 위배한 것"이라며 "법이 허용한 공식적인 변론의 장을 외면한 치졸한 언론 플레이"라고 비판했다.

김경진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오늘 최순실 씨가 '특검이 자백을 강요한다'고 주장하며 행패를 부렸는데, 박 대통령의 인터뷰도 같은 맥락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날 인터뷰는 동정 여론을 결집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것 같은데 매우 부적절한 일"이라며 "청와대는 국민 앞에 백번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